2020.10.12.戊子일
편재 태지, 정인 록, 역마살.
아무도 믿진 않겠지만, 사실 나조차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지만...
서울에서 식욕을 잃었다. 머무는 이틀을 거의 굶었다.
차있는 냉장실, 냉동실에도 손 댈 게 없었다.
끼니는 해결해야하니 냉장고를 열어보지만 남의 집 살림 뒤지는 기분이라니...
니 것 내 것 없는 라면이라도 꺼냈다가 다시 넣길 반복하다 관둔다.
도무지 손댈 게 없다.
오랜만에 속 쓰림과 허기를 경험했다.
적극적으로 뭔가 먹어야겠다는 의욕을 상실, 챙겨간 곡물가루만 두어번 타먹었다.
서울 집에 급히 간 건 하자보수 공사가 시작된 때문이었다.
며칠을 머물며 이곳 저곳 다 해결하리라 다부지게 맘 먹고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부산스럽게 사람들이 오가더니 공사는 하루 만에 끝나버렸다.
인부들이 오가고 그 흔적들을 청소하고 뻗어있느라 밥 먹을 엄두가 나지않은 탓도 있다.
다늦게 외출해서 구호식량 만두와 찐빵으로 허기를 채우고 11시 넘어 귀가했는데
일찍 잠든 후배의 잠을 깨우고 말았다. 소리안내고 씻고 움직였지만 뿌시럭대는게 신경쓰였는지
빨리 좀 자라고 짜증을 낸다. 담박에 마음이 졸려 눈치보며 내 방으로 숨었다.
이 친구나 나나 누군가와 함께 살 깜냥은 아님이 분명하다.
출근 준비하는 그녀에게 오늘 오후에 내려간다하니
그래도 제대로 밥은 한번 같이 먹어야지 하며 회사 앞으로 나오라 한다.
형식 좋아하는 친구의 예의치레인 줄 알지만 것도 거절하면 감정이 상할 것 같아
출발시각을 6시30분 막차로 미루고 핫플레이스 성수역에서 4시 경 어중간한 식사를 했다.
메뉴는 똠양쌀국수와 팟타이.
베트남과 타이 음식을 하는 곳이라 똠양꿍에 말아낸 쌀국수가 제대로 였다.
종일 비어있던 위장에 뜨겁고 맵고 시고, 진한 향신료 국물이 스며들자
잊고있던 식욕이 깨어나 문자 그대로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어느새 바닥을 긁고 있다.
오랜만에 자극적인 도시음식이 들어가니 위장이 환호를 한다.
일말의 서운함도 불편함도 오간데 없다.
이러니 어디 가서 밥맛이 없다느니 식욕이 떨어졌다느니 섣불리 말했다간 웃음거리 되기 딱 십상이다.
서울 집에서의 단 이틀은 감옥살이처럼 답답했다.
집을 나와선 간발의 차로 지하철을 놓치고, 건널목 신호를 놓치고, 내릴 역을 착각하고, 출구를 잃어버렸다.
말을 하면 꼬였고 더듬었다.
일진을 보니 戊子일. 천간에 무가 등판해서 나의 정화를 덮어버려 상관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었구나 했다.
어제 亥날엔 역시 일 처리가 지연되고 마무리가 바로 되지 않았다.
이젠 서울에서 하루를 더 머무는 일이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돌아가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급우울해진다.
하지만 오늘은 그 모두를 각설하고 집에 돌아왔다, 내 집에 왔다! 그걸로 다되었다.
나는 지금 여기 영해에 있다.
첫댓글 식욕을 잃을 정도로 서울살이가 만만찮았네요!ㅎ
몸은 영해로 귀환 하셨는데
아직 정신은 수습이 덜 되셨나봐요~ㅋ
어제는 丁亥날이었다능....ㅎ
11시에 영해 집에 와서 12시에 실성 직전인 친구와 1시간 여 통화하고
새벽 초토화된 상태에서 시작한 일의 여파인가봅니다. 피곤할땐 자는게 상책...
단 이틀의 외출이 가져온 데미지가 아직도 이어지고있네요. 무튼 감사합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ㆍㆍ
아이고배야~~~
제가 믿어드리겠습니다!!!
(안 믿는단 말보다 더 재수 몽댕이 없는말ㅋㅋ)
이 사람이...진짜라니깐. 실화ㅠ
영해사람이시군요. 이제는. . .
저희 친정엄마도 바닷가에 살아보고싶대셔서 한달 방을 얻어드렸어요.
아주 잘 살고 계십니다.
어딘가로 떠나 살아본다는게 참 좋은 시간들인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