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시프트의 한 장면 ⓒ gettyimages/멀티비츠 |
지난 26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는 버드 셀릭에 이어 롭 맨프레드(56)가 제10대 커미셔너로 취임했다. 맨프레드는 작년 8월에 열린 구단주 회의에서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 커미셔너로 선출됐다.
하지만 맨프레드는 공식적으로 부임한 첫 날부터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향후 계획을 밝힌 ESPN과의 인터뷰에서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 맨프레드의 발언은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이를 접한 일부 전문가들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날을 세웠다.
수비 시프트는 야수가 기존의 위치에서 벗어나 타구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커버하는 작전이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당겨치기 일변도의 좌타자를 대비해 2루수와 유격수가 우측으로 옮기는 것이다. 끝내기 안타를 맞게 될 위기에서는 외야수 한 명을 내야로 불러들여 '내야수 5명'을 두기도 한다.
수비 시프트는 1946년 클리블랜드 감독 겸 선수였던 루 부드로가 테드 윌리엄스를 막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야구 초창기에도 임의적으로 수비 위치를 바꾸는 것은 존재했다. 1877년 밥 퍼거슨이 당겨치는 우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2루수를 좌측으로 옮겼는데, 이것이 수비 시프트의 시초였다. 1920년대 강타자 사이 윌리엄스를 저지하기 위해서도 활용되었으며, 베이브 루스가 타석에 들어설 때도 상대 외야수들이 위치를 이동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드로-윌리엄스가 시프트의 원조로 전해지는 것은 그 당시의 시프트가 가장 정형화되었기 때문이다(윌리엄스의 유명세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연소 감독(24세)인 부드로는 윌리엄스가 때려내는 타구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굉장히 명석한 두뇌를 자랑했던 그는, 윌리엄스가 타구를 잡아당기려고 애쓰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불필요한 곳에 야수를 두는 것보다 타구가 올 법한 곳에 야수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드로는 좌익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들을 우측으로 이동하라고 지시. 일명 '부드로 시프트' 혹은 '윌리엄스 시프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난생 처음 이러한 장면을 본 윌리엄스는 주심을 향해 "저게 뭐하는 짓이죠? 저러면 안되는 거잖아요"라고 항의했지만, 주심은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부드로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부드로는 윌리엄스가 타석에 들어서면 계속 수비 시프트를 선보였다. 그리고 시즌 말미에 "수비 시프트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했을 때 윌리엄스를 37% 정도 더 잘 막았다"고 설명했다(세인트루이스 에디 다이어 감독은 여기에 착안해서 자신만의 수비 시프트를 구상, 월드시리즈에서 윌리엄스를 상대했다).
부드로 & 다이어 시프트 비교 <출처 CBS스포츠> |
물론 수비 시프트가 항상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이 작전이 제한적으로 쓰여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첨단 기술의 발전, 세이버매트릭스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수비 시프트가 점점 보편화됐다. 특히 조 매든은 수비 시프트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감독이다(매든은 "모두가 우리더러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두 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최근 5년간 수비 시프트 변화
2010 : 2464회
2011 : 2357회
2012 : 4577회
2013 : 8280회
2014 : 13296회
지난해 수비 시프트 최다 활용 순위
AL : HOU(1341) TB(824) NYY(780) BAL(705)
NL : PIT(659) MIL(576) STL(367) SF(361)
*TEX(490) 리그 10위 / LAD(208) 리그 12위
그렇다면 맨프레드는 왜 '시대 변화의 산물'로 여겨지는 수비 시프트를 규제하려고 할까. 사실 수비 시프트를 걸고 넘어진 사람은 맨프레드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톰 버두치가 수비 시프트와 관련해 어떠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문제를 삼은 요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득점력'이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의 경기당 평균 득점(4.07)은 1981년(4.00)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시즌 평균 안타 수가 8.56개 밑으로 떨어진 것도 1972년(8.19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부분만 보면 공격력 회복을 전면에 내세운 맨프레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수비 시프트를 금지함으로 인해 기대만큼 득점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빌 제임스 핸드북>에 의하면 지난해 수비 시프트로 막은 점수(SRS)는 195점이다. 그러나 정작 시프트 하나당 막은 점수는 2012-13년보다 줄어든 0.0147점에 그친다(2012년 0.0166점/2013년 0.0165점). 또한 지난시즌 총 득점에 195점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경기당 평균 득점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4.07점→4.10점). 즉 수비 시프트의 급증이 득점력에 막대한 영향은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수비 시프트 효과에 대한 판단은 각 팀들의 몫이다).
수비 시프트와 연관이 깊은 기록 중 하나가 인플레이 타구의 타율을 의미하는 BABIP다. <팬그래프>가 제공하는 BABIP를 살펴보면, 수비 시프트가 크게 늘어난 지난해 리그 BABIP(.299)는 이전 3년에 비해 되려 높았다(2011년 .295/2012-13년 .297). 이 부문 최고 권위자 존 드완에 따르면 수비 시프트가 억제할 수 있는 땅볼과 짧은 라이너 타구들의 BABIP(.262)도, 수비 시프트를 하지 않았을 때의 BABIP(.265)보다 3리 낮을 뿐이었다. 그럼 수비 시프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평가받는 좌타자들의 땅볼 BABIP는 어땠을까.
중월(빨강) & 좌측(보라) & 우측(파랑) 좌타자 땅볼 BABIP <출처 그랜트랜드> |
최근 5년 간 추이를 보면 당겨친 땅볼 타구(파랑)의 BABIP는 큰 변동이 없었다. 좌타자 수비 시프트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밀어치거나, 또는 중월로 보낸 땅볼 타구의 BABIP가 이전보다 상승했다는 사실이 특기할만하다. 실제로 좌타자들은 허를 찌르는 기습번트로 수비 시프트의 허점을 공략하고 있다(2013년 로빈슨 카노는 수비 시프트를 뚫고 번트 2루타를 만들어냈다). <인사이드엣지>는 수비 시프트 상황에서의 번트 수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2012년 40회→2013년 66회→2014년 124회). 타자들 역시 반격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수비 시프트 최다 타석 / 타율 변화 (땅볼/라이너)
1. 데이빗 오티스 : 505타석 / .250 → .201
2. 라이언 하워드 : 453타석 / .333 → .167
3. 크리스 데이비스 : 400타석 / .333 → .121
4. 브랜든 모스 : 398타석 / .091 → .236
5. 브라이언 매캔 : 394타석 / .176 → .154
6. 애덤 던 : 371타석 / .200 → .223
7. 루카스 두다 : 354타석 / .313 → .202
*출처 : 빌 제임스 핸드북
수비 시프트가 득점력 하락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점은 득점력 하락으로 이어진 주된 이유가 수비 시프트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수비 시프트가 성행한 시기를 감안하면 그 효과에 대해서도 아직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보다 오래 전부터 나타난 현상은 삼진의 증가, 볼넷의 감소, 그리고 투수들의 구속 증가다. 맨프레드가 정말 득점력을 끌어올리길 바란다면, 예전보다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을 먼저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공격적인 야구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야구'인지는 재차 생각해봐야 한다. 맨프레드는 야구가 무미건조해 질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야구의 묘미는 상대적이다. 치고 받는 난타전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1-0 승부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무작정 변화를 주는 것은, 자칫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야구의 경향은 바뀌기 마련이다. 수비 시프트의 인기도 언젠간 줄어들 것이며, 투수와 타자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는 쪽도 달라질 것이다. 이미 메이저리그는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내세울 대책이 무엇일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