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어두움'과 '밝음'을 보여주는 2곳의 전시를 봤다. 서로 연계된 전시는 아니지만, 전시들을 나열해 보고 내가 개인적으로 동선을 그렇게 꾸며 봤다. 예술의 전당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2020.6.27~10.4), 그리고 흰물결갤러리 <데스 브로피: 즐거운 인생>이다.
퀘이형제(Quay Brothers)는 스티븐 퀘이와 티머시 퀘이 쌍둥이로 1947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현재 영화감독이자 에니메이션 감독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데,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및 팀 버튼 감독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전시관 입장하는 입구도 웬지 '퀘퀘'하다.


입장하면 바로 아래의 공간이 나온다. "나는 인간이 아닌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중 나오는 문구이다. 어느날 일어났더니 벌레가 되어있던 그레고리 잠자의 대사이다. 사는 게 힘들고, 도망치고 싶고, 자기 현실이 못 견디게 추하게 느껴져 스스로 벌레가 되었을 수도 있다.
퀘이형제는 필라델피아예술대학 시절 처음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블랙 드로잉으로 표현하며 늘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40년 후 그들은 아래 작품을 제작했다. 이러한 스토리가있는 방 하나하나가 그들이 창조한 "도미토리움"이다.

<카프카의 "변신" (Kafka's "Metaorphosis")>(2012)
전시회에 보낸 작가의 편지 귀절이다. "영화 속에서 실제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영화적 공간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기회로, 시선을 천천히 옮기며 퍼핏과 데코의 물질적 형태를 온전히 관찰하고 탐구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퍼핏을 보면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머리는 엉클어지고, 옷은 더덕더덕 기우고, 눈은 퀭하고 금방 무슨 짓을 일으킬 것 같은 인간의 어두운 혹은 슬픈 내면을 보여준는 듯한 인형들이다. 그래서 일명 전시 타이들이 '인간의 무의식, 저 어딘가로 초대합니다'이다.

1986년작 <악어들의 거리>는 그들을 유명하게 해 준 대표작으로, 폴란드 출신 작가 브루노 슐츠의 1934년 단편집 <악어들의 거리>가 모티브가 되었다. 뇌가 없어서 인형들 머리 위가 푹 꺼져 있는 모습이 생각없이 일만하는 노동자들을 보는 것 같다. 패배감, 무력감 등의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도시의 인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악어의 거리 "의상실"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이것도 에니메이션 <악어들의 거리>의 장면이다. 21분짜리 에니메이션의 장면인데, 영상으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죽는다는 것은 없다. 생명이 없다는 것은 단지 알려지지 않은 삶의 형태를 숨기는 변장일 뿐이다." 브루노 슐츠 왈.

<악어의 거리 "의상실"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인형은 오묘하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왠지 인간의 영혼을 담고 있는 듯 하게 섬뜩하기도 하고, 그래서 인형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는 계속된다. 2010년작 <가면>은 고도화된 산업기술을 가졌으나 봉건적인 사회 분위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에서의 이야기를 그렸다. 개방성과 혁신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 극도의 보수성을 지닌 곳은 지금도 만연하다.

<가면 Maska>(2010)
정지되어 있는 공간(도미토리움) 형식으로 관람객에게 보여주다가, 아래와 같이 실사 에니메이션을 틀어주는 방에 들어서기도 한다.

<악어의 거리 "의상실"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악어의 거리 "의상실"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멘노파 자화상 (Self-portrait as Mennoites)>(1995)
최근 전시장은 작가들의 작품만 나열하지 않고, 뭔가 기획을 한다. 이 방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려나 한다.

쟁반 위에 구두 한 켤레가 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자 구두는 무슨 사연이 있으려나.

구두는 관 위에 있었다. 2007년작 <하인 여행의 관>으로 퀘이형제의 설치미술이다. 당시에는 관람객이 관의 뚫린 구멍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이었다고 한다. 만화경 같은 설치작품이었다. 인간은 뭔가를 엿보고 싶어한다. 그런데 요즘 보면 관종들이 관음을 압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인 여행의 관>(2007)
또 하나의 도르미토리움(방)이다. 본래 1분짜리 에니메이션으로 이루어진 '캘리그래퍼'이다. 혹시나 하여 유투브에 들어갔더니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초현실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에니메이션은 음악이 포인트이다. 음악이 시나리오라고도 한다.

<캘리그래퍼 The Calligrapher>(1991)
퀘이형제가 영향받는 사람들은 들으면 연관성이 있는 작가들이다. 아래는 페터 한트케의 언어극 <카스파> 포스터이다. 카스파 하우저는 미스터리한 실제 인물이었다. 16년간 한 평 남짓 방에서 물과 빵만으로 살았던.

그들이 영향 받는 작가는 프란츠 카프카, 브루노 슐츠, 로베르트 발저 등이 있다. 동 3명의 작가들은 공통점이 있다. 기존 질서에 대한 해체와 반항, 절망스러운 현대 사회를 불안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자들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모티브로 한 <이름 없는 작은 빗자루>의 주요 등장인물 퍼핏이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을 설화를 바탕으로 연결지어 작품을 구상했다. 그의 작품은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불안에 가깝다.

<The Unnameable Little Broom (이름 없는 작은 빗자루)>(1985)
예술의 전당을 나와서 <즐거운 인생 Happy Happy Happy!> 전시가 열리는 '흰물결갤러리'를 걸어갔다. 예술의 전당에서 반포대로를 쭉 따라1.6km 내려가면 나온다.

전시관은 1층으로 입장하면 바로 아래의 공간이 나온다. 건물 지하는 흰물결아트센터로 연극과 뮤지컬, 그리고 콘서트와 음악회가 열리는 곳이다.

데스 브로피(Des Brophy)는 영국 작가이다. 그는 16살에 영국군에 입대해 12년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인도양의 몰디브 등지에 복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관점을 키웠다.
그의 그림에는 일관적으로 흐르는 무엇인가가 있다. 세상이 그렇게 팍팍하지만은 않다는, 그래도 웃으며 함께 살자는, 소소한 곳에 행복이 있다는 그 무엇 말이다.

<영원히 둘이서>(2019) - 오른쪽 여자가 덩치도 크고, 왼쪽 남자를 감싸안는다.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을 챙기며 사는 경우가 많다.

<나무 심는 사람들>(2019)

<공을 찾아라>(2020)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서점과 데스크가 있다.

유화 이외에 수채화 작품도 있다. <Don't Worry Baby>(2018)

<그녀의 행복한 칵테일>(2020)

작품 타이틀을 한글로 썼다가, 영어로 썼다가 한다. <Singing in the Rain>(2020)


<뜨거운 태양이 좋아>(2019)

데스 브로피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을 소소하게 그려내는 작가이다. 위의 작품들은 식당 셰프들을 그렸다.
흰물결갤러리를 나오면 서초경찰서와 검찰청과 지방법원, 그리고 구름다리를 넘어가면 서리풀 공원이다.

전철역은 2호선 서초역에서 몇 분 안 걸린다.

전철역으로 걸어가는데, 우산 하나를 쓰고 있는 두 여인의 다정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분들은 햇빛으로 양산을 쓴 것이지만, 데스브로피의 사진 두 점이 연결지어 생각나서 그 아래 붙여본다. 하나는 두 여인이 우산쓰고 가는 그림, 또 하나는 우산 하나에 부부가 같이 쓰는 그림이다.


<빗 속에서 춤을>(2020)

<우산 속에서 소곤소곤>(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