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나는 천하의 중앙을 아노니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다. (혜시 10명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공손룡은 백마비마白馬非馬(백마는 말이 아니다)
불교의 선문담(禪問答)은 명가名家철학의 표절이고 리메이크이며, 저작권 침해이다.
불교를 공부하면, 선문답(zen dialogue, 禪問答)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수수께기 같은 오묘하고 야릇한 논리를 지닌 선문답을 만나면, 불교가 현실 넘어 실재 내지 진리를 지닌 구원의 도道로 착각하게 만든다.
불교는 오랫 동안 대중을 현혹시키는 선문답을 이용해왔다.
학문 연구에 열중하지 않었던 중국 승려들이 선문답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중국 고대 철학을 조금 공부하다가 중국 불교의 선문답이 춘추전국 시대에 개발된 중국 전통 논리학인 명가名家철학을 단어만 바꿔서 거의 그대로 베겨서 사용했음을 배우게 되었다.
유학과 노장자 등 중국 철학은 사유思惟에 중심을 두어 논리적
근대 중국은 서양처럼 논리학이 발달하지 못하였지만, 고대에는 서양 못지않게 논리학에 관한 문제들이 토론되었다.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였던 사람들을 (장자) 천하편에서 변자辯라고 불렀고, 사마담은 (노육가요지)에서 그러한 문제를 탐구했데 사상가들을 명가名家라는 학파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중국의 논리학인 명가철학은 중국의 정치 사회 지배 사상 이었던 유학儒學들에게 대중을 현혹시킨다고 박해를 당해서, 마치 그리스에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것 같이, 명가철학은 오래가지 못했다.
선진시대 명학은 단지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고 결코 그 이후에 빈틈없는 논리와 과학적 방법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강수의 '중국 고대철학'을 읽은 이유가 명가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였다.
아래 명가名家철학의 대표적 학자인 혜시와 공손룡의 논리학을 요약한 내용이다.
1. 혜시惠施의 합동이설合同異說
혜시(기원전 약370-310)는 송나라 사람으로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다. 장자와 교유하였다. 장자의 (천하편)에 혜시의 사상을 역물지의(사물의 함의를 분석 서술하다) 열가지인 혜시십사惠施十事라고 부른다.
1). 혜시의 10대 명제惠施十事
(1).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밖이 없는 것을 대일,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소일이라 한다. (작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큰 것도 분할되지 않으니 '하나', 즉 일이라고 한다.
(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으나 그 크키는 천리다.
(3). 하늘이 땅과 마찬가지로 낮으며, 산은 연못처럼 평평하다.
(4). 태양은 중천에 이르자마자 기울고, 사물은 생기자마자 죽어간다.
(5). 크게 같으면서도 적게 같은 것(소동이), 만물이 완전히 같으며 완전히 다른 것(대동이).
(6). 남방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7). 오늘 월나라에 갔으나 어제 온 것이다.
(8). 연환은 풀 수 있다.
(9). 나는 천하의 중앙을 아노니,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이것이다.
(10). 만물을 두루 사랑하리니, 천지는 일체다.
혜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물에 다양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또한 서로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합동이설合同異說이다. 합동이의 관점에서 보면 10번째 명제, 즉 "만물을 두루 사랑하리니, 천지는 일체다"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혜시철학의 최종 결론은 이미 만물이 다 같다면 마땅히 차별하지 아니하고 모두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란 해석과 또한 차별하지 아니하고 만물을 모두 사랑할 수 있다면 천지만물은 한 사람의 몸처럼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혜시의 십대 명제는
첫째, 사물들의 크고 작음과 높고 낮음의 차이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사물들이 끊임없이 변화한다.
셋째, 지역 또는 공간의 구분도 상대적이다.
2). 그 밖의 논변명제: 재미있는 것을 몇개 소개.
- 닭은 다리가 세 개다: 두 개의 다리와 다리를 움직이는 (정)신이 있다.
- 불은 뜨겁지 않다: 사람은 불이 뜨겁다고 하지만 불은 뜨겁다고 하지 않는다.
- 눈이 보는 것이 아니다. 빛과 두뇌의 작용이 본다.
- 노란 말과 검은 소는 셋이다. 색깔 면에서 보면 노란색과 검은색 그리고 노랗기도 하고 검기도 한 것은 셋이다. 또 형태면에서 소와 말과 소말(우마)은 셋이다.
- 한 자되는 지팡인를 날마다 그 절반을 자른다면 만세가 지나도 다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반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공손룡의 논변사상
공손룡(기원전 약325-250) 전국시대 말엽 조나라 사람으로 (한서)예문지에 따르면 그의 저작은 17편이 있었다고 하나 전해지는 것은 지물론, 견백론, 백마론, 통변론, 명실론, 적부 등 여섯편이다.
1). 명실론名實論
(1). 물物과 실實과 위位와 정正
천지의 일체 사물이 물이다. 어떤 사물이
그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실이라고 한다. 실은 반드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여 자기 자신을 충실하게 하는 속성을 가져야 한다.어떤 사물이 그가 본래 있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을 정正이라고 한다.
2). 정명正名의 기본원칙
명은 실을 반영하는 명사 또는 개념이다.
공손룡은 명과 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유호기피차'라는 정명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공손룡은 명의 정과 부정의 모순관계를 들추어냈을 뿐 아니라, 형식논리에 쓰는 모순률과 배중률과 같은 논리법칙을 활용하여 정명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3). 지물론指物論
지指는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시하다는 의미의 지指가 점차 뜻이라는 의미의 지旨와 통하여 쓰이고, 지旨는 다시 의意와 통하여 쓰이면서, 지指는 '지시하다', '뜻하다'의 의미뿐만 아니라 의미가 확대되어 개념과 사유의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
물物은 돌, 말, 산, 수-물과 같은 사물이다. 공손룡은 이 물은 지指에 의하여 생긴다. 지는 물을 지시하여 물지物指가 된다. 물지는 指가 여물與物, 즉 물과 결합한 결과이다. 지가 물과 결합하여 물지가 된 뒤라야 볼 수 있고 이름할 수 있다. 공손룡에 따르면 지는 감각대상이 아니라서 볼 수 없으나, 물과 물지는 감각할 수 있다. 지물론은 이러한 지와 물, 그리고 물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심心과 물物, 즉 사유와 존재의 문제를 논하는 글이다.
4). 견백론堅白
견백론에서는 리견백(離堅白)을 다루었다. 그는 '견', 즉 '굳음'이 '백', 즉 '흼'과 서로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변은 굳고 흰 돌(堅白石)을 가지고 진행된다. 어떤 하나의 돌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 돌은 마땅히 굳고 희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 돌은 개별자로서 굳은 유類의 사물 속에도 존재한다. 굳음과 흼은 보편자이고, 보편자는 개별자에 붙어 있다. 굳고 흰 돌의 견과 백은 모두 돌 속에 있다. 견과 백은 어떤 것에 의존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굳고 흰 돌의 경우 굳음과 흼은 돌과 분리되며, 굳음과 흼도 분리될 수 있다. 이것이 이견백설이다. 감각과 사물의 내적 연관성을 부정한다.
5). 백마론白馬
공손룡은 백마비마白馬非馬(백마는 말이 아니다)라 하여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명제를 제기하여 그것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첫째, 말馬이라는 것은 그로써 형체를 명명한 것이고, 흼白이라는 것은 그로써 색체를 명명한 것인데, 색체를 명명한 것은 형체를 명명한 것과 같지 않으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말을 찾아오라고 하면 노란 말, 검은 말 모두를 끌어다 줄 수 있다., 그러나 백마를 찾아오라고 하면 노란 말, 검은 말을 끌어다 줄 수 없다. 말이란 개념은 색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마는 색체에 대해 긍정하는 바와 부정하는 바가 있다. 색체에 대해 부정하는 바가 있는 것은 색체에 대해 부정하는 바가 없는 것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것이다. 즉, 말이라는 개념의 외연과 백마라는 개념의 외연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셋째, 말과 백이라는 보편개념을 가지고 백마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백마白馬는 마馬에 백白을 보탠 것이다. 말에 백을 보탠 것이 말이겠는가? 그러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
3. 명가철학 평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것 같이 대중을 현혹시킨다고 박해를 당해서 명가철학은 오래가지 못했다.
구경회 202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