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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관과 근심
성경본문 잠언 17: 6, 21
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21.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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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덕 목사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너희 중에 가장 귀한 것을 내게 바쳐라고 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제사를 드리라 하는 줄 알고 흠없는 제일 좋은 짐승을 잡아다가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아니라고 했읍니다.
그래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각양 귀한 보물을 거두어서 여호와께 바쳤습니다.
그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모세가 하는 말이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는 귀중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 있다.
[ 너희 자녀를 바쳐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정한 곳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시험하실 때도 재물보다 독자 이삭을 내게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가장 귀한 것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인데 우리는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라고 고백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밖았다는 것은 바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본래 자식은 시127:3절 말씀같이 [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자기 부모에게 면류관 같은 자식이 있는가 하면 근심거리가 되는 자식도 있습니다.
사무엘은 그 어머니 한나에게 다윗은 그 아비 이새에게 면류관이었으며 신약에서도 디모데는 유니게에게 면류관이었습니다.
실로 이러한 자녀들은
시127:4절 말씀같이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고
시128:3절에 어린 감람나무 같은 여호와의 주신 상급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는 부모이 근심일 분만이 아니라 집안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애물 덩어리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잠언서에서도 [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 고 하는 반면에 [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합니다.
본래 미련한 자식을 낳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2>
이 말은 부모가 잘못 키워서 그렇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자식은 부모의 면류관이 되지만 어떤 자식은 근심이 됩니다.
근심거리가 되는 자식을 성경은 미련한 자라고 말합니다.
잠17:12절 [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찌니 ] 합니다.
이 말은 자식 잘못 키우면 새끼 빼앗긴 암곰 만나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을 만난다는 말로 적용할 수 있읍니다.
성경에 보면 에서의 미련한 행동이 나중에 부모에게 뿐만이 아니라 민족의 큰 화근이 되고 압살롬의 어리섞음 때문에 다윗의 가문에 큰 화근을 불러오고 르호보암의 미련함이 결국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는 비극을 가져옵니다.
그럼 어떻해야 근심거리가 아니라 면류관인 자식으로 키울 수 있는가?
성경의 배경이 되는 유대민족은
거의 1900년 동안 나라없이 유랑하던 민족이었습니다.
2차 대전 때는 힛틀러에 의해 600만명이 학살을 당하면서도 시오니즘으로 결속되어 저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을 회복하고 지금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 것입니다.
근간 세계에서 일어난 공통점 두 가지가 있는데
1.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입니다.
공산사회주의든 민주사회주의든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메스컴을 통해 보고 듣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지만 경제는 사회주의에 가까운데 지금 공산주의는 비능률적인 생산활동이 붕괴를 초래했지만 이스라엘은 개인 소유가 없는 기부츠 체제에서도 경제를 튼튼히 세워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지금 전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청소년 문제입니다.
지난 주간에 일본에서는 17세 소년이 고속버스 탈취사건으로 온나라가 떠들석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청소년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항시 아랍과 전시체제이기 때문에 18-20세 청소년 소녀들이 낮에는 군복무하고 저녁에는 그대로 총을 메고 길거리에 돌아 다녀요.
그래도 총기사고 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정신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교육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진 교육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밤낯 외세의 침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학교가 부서지고 <3> 성벽이 무너지는 고난 속에서 교육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가정에서 교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고 나라없는 민족이 세계 석학들이 받는 노벨상을 25% 이상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은 쉐마 교육이라고 합니다.
쉐마라는 말은 신6:4절에서 시작되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즉 쉐마 이스라엘 이라는 문구에서 나온 말인데 [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세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이것이 쉐마교육입니다.
유대 탈무드를 읽다 보면
<아키바>라는 랍비가 나오는 이분은 온세계에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랍비입니다.
A.D 70년 로마 군대가 예루사렘을 에워싸고 함락하기 직전에 이제 곧 함락당할 위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통한 울부짖음과 불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때 랍비 아키바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 묘안을 창안해 내었습니다.
하인들을 시켜 그가 중병에 들었다고 소문을 내고는 그 다음날 아키바가 죽었다고 소문을 퍼뜨렸읍니다.
그리고 관속에 들어가 장례행차를 통해 성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밤에 아키바는 로마 장군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 우리는 서로 피흘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내일 아침이면 성문을 활짝 열고 전혀 항거없이 항복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마을 한 가운데 조그마한 집이 하나 있는데 그 집만은 절대로 손을 데지 말아 주십시오]
[ 그곳에 뭐가 있습니까? ]
[ 책이 있습니다.]
[ 책뿐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 좋소 ]
그날 밤에 아키바는 성 안으로 돌아와서 유대 어머니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 어머니 여러분 다 없어도 좋습니다. 다 빼앗겨도 됩니다.
단 한가지 어머님들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겨져 있고 탈무드만 우리에게 있어면 우리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이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날이 꼭 올 것입니다.]
그 이튿날 수많은 재물과 사람들이 수난을 겪었지마는 <4>
유대 어머니들의 가슴과 가슴으로 전승되어온 하나님의 말씀과 탈무드가 오늘의 이스라엘을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이 근심거리가 아니라 면류관이 되게 하느냐?
잠22:6절에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합니다.
1. 행할 길을 먼저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러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기에 가르친다는 말은 길드린다는 말입니다.
<칸트>는 [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만이 사람이 된다 ] 합니다.
마치 정원에 한그루 나무도 가꿀 때 아름다운 정원수가 되는 것과 같이 사람도 가꾸어져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려져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딤후3:15절에 [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이 말은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외조모 루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최대의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려 함이라 ] 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합니다.
왜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합니가?
사람은 5세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라면 길들여지기 힘든다는 말입니다.
예수잇 파 사람들은 [ 네 아이를 12세 까지만 우리가 맡고 그 뒤에는 누가 맡아도 상관없다 ] 라고 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선한 양심이 세속에 물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지면 절대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5> 우리 기독교 부모들이 자녀를 하나님 말씀으로 길들일려고 하는데 전적으로 바쳐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교회 부모들은 신앙은 차선이고 최선은 공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이 성장하여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의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바람이 있다면 그 옛날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꽁꽁 묶어 제단에 바치듯이 자녀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일려는 부모라는 것입니다.
옛날 아테네까지 정복했던 스파르타 어머니들은 출정하는 아들에게 [ 네 방패를 가지고 돌아오라, 그렇
지않으면 네 방패 위에 실려서 돌아온다] 이는 승전 용사가 되지 못하면 패자가 되어 죽어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한 부인은 전쟁에 나간 여덟 명의 아들이 모두 죽어 돌아왔을 때 ' 스파르타여! 나는 너 때문에 죽기 위한 팔형제를 낳았도다 '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어머니들도 [ 예수여 당신 때문에 죽을 두 자녀를 낳았습니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어머니가 있다면 그래도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신앙적으로 길들려지는데는
2. 먼저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불랙 우드>라는 고명하신 신학자가 계시는데 [ 좋은 부모란 자식에게 유산을 잘 물려줄 줄 아는 부모다 ]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재산은 자녀들에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지내봐야 알지만 돈없는 사람도 자녀에게 물려줄 귀한 유산이 있다 ]
그 유산은 3가지인데
1) 좋은 기억의 부모의 모습을 물려져야 한다.
러시아의 문호 토스토엡스키는 [ 좋은 기억, 특히 어렸을 때 가정생활에 있어서 좋은 기억처럼 장래에 감화를 주는 것은 없다 ] 고 했습니다.
반대로 나쁜 기억 쓴 기억들은 장래에 자녀들의 성격을 삐뚤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내 마음 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 >라는 내적치유에 관한 책 있지요. 읽어 보신 분들 있을 거예요.
그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53세된 여집사님 이야기인데 항상 가정생활에서 남편에게나 자식에게 불평과 화를 내며 살아왔습니다. <6>
그 화가 얼마나 심했던지 딸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부엌 칼을 갖다 들이되면서 죽인다고 했다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상담자와 만나 이야기 하는 가운데 그런 행동을 누구한테서 배웠느냐? 고 묻는데 자신도 모르게 [ 엄마요 우리 엄마요 ] 하며서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릴 때 자기가 말을 듣지 아니하면 엄마가 칼을 들이되고 [ 너 죽고 나 죽자 ] 는 말을 하곤 했는데 자기가 그렇게 싫어했던 행동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더랍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는 주님 앞에 엎드려 그날 이후로 마음에서 칼을 버리기로 결단을 내리고 보니 그렇게 마음에 평안이 넘치더라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이야기 같이 들릴지 모르지마는 좋지 못한 기억들은 자녀의 평생을 빗나가게 한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좋은 신앙의 습관을 물려져야 한다.
<뮬러 목사>는 부모의 신앙생활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여 통계를 내었는데 어릴 때 교회에 다녔지마는 성인이 되어서 부모가 신앙생활을 경건하게 하는 가정의 자녀들은 72% 어머니만 신앙생활 하는 자정의 자녀들은 15% 부모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은 6% 가 어른이 되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부모의 신앙의 영향력이 크다는 말인데 뮬러 목사는 결론적으로 자녀에게 주는 신앙의 영향력은 주일학교 교사나 목사보다
대부분의 영향력이 부모의 신앙의 영향력이라고 합니다.
3) 고귀한 생의 목표를 물려져야 한다 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우리가 누릴 복이 있고 우리가 감당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에 헌신되어져 살아가는 모습 우리의 자녀들은 가슴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고상한 생의 목표를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의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두고 갈 계획입니까?
제산 못 불려줘도 좋은 신앙의 습관과 생의 고상한 목표를 물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7>
3. 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자녀들을 이해하고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마세요.
엡6:4절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노엽게 하면 부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어떤 좋은 말을 해도 마이너스 된 감정 때문에 그 말이 바로 듣기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 바른 말을 해도 자녀들이 삐뚤게 나아갑니다.
혹 우리 가운데 자녀들이 삐뚤게 나간다고 생각되거든 먼저 자녀를 꾸중할려고 하지 말고 관계부터 회복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보모에 대해 어릴 때 그 품, 그 너그러움, 역시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능적입니다.
<칼론>이라는 심리학자가 실험을 했는데 굶주린 쥐를 두고 반대 편에는 물을 떠 놓고 중간에 전기가 통하는 장치를 해 두었는데 쥐는 1분 동안에 20회나 물있는 곳으로 갔으며 먹이를 두었더니 18회, 암컷을 두었더니 13회, 어미를 두었더니 22회를 통과하더랍니다.
갈증보다 굶주림보다 이성보다 어머니가 더 그립다는 결과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에게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압살롬은 인물도 준수하고 다윗을 이어 왕이될 인물이었읍니다만 이복 형제 간에 살인으로 아버지의 미움을 사서 멀리 귀양가게 됩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심복 요압 장군을 통하여 간청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 하지만 2년 동안이나 성안에 머물게 하면서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만나 주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그리워 얼마나 만나고 싶어 했지만 그 2년이 압살롬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것입니다.
결국 압살롬이 반역을 하게 되니 다윗은 성을 버리고 피난가게 되고 압살롬 역시 전쟁중 상수리 나무에 머리가 걸려 칼에 맞아 죽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자녀들에 대해서 우리는 먼저 이해를 할려고 해야 합니다.
절데 욱박지르거나 고함치지 마세요. 노엽게 하지 마세요.
그러면 대화가 끊겨져 버립니다.
대화가 단절된 부모 자식 간에 절대 올바른 자식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청소년에 관하여 글을 쓰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 <8> 한 집 안에 살고 있어면서도 우리의 자녀들은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세대에 문맹자가 있다면 아마 대화가 안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N세대 즉 Net generation 컴퓨터 세대입니다.
저들은 외출에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일을 확인하고 게임을 하며 취미활동이나 이성교제도 통신으로 합니다.
그리고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다 다릅니다.
심지어 언어도 달라서 휴대폰 문자 서비스 어른들은 모릅니다.
우리는 유니폼에 익숙하지만 N세대들에겐 유니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근간에 유행어처럼 생겨난 말 퓨전이란 말 모든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안 따라간다 하면서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까지는 어른들의 체제와 말씀에 따르는 것이 예의였지마는 신세대들은 튀는 스타일을 좋아 합니다.
이건 완전히 한 집에 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저들의 Life style을 이해해야만 대화가 됩니다.
대화가 되어야만 감정은행에 프러스가 되고 감정은행에 프러스가 되어야만 교육도 되어집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근심거리가 아니라 면류관이 되기 위해서
1. 먼저 이해하고 대화가 되어져야 합니다.
2. 좋은 기억들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3. 하나님 말씀으로 잘 길들려져야 한다는 것
꼭 마음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