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津八詠 (8. 南浦漕船:남포에 모인 세곡 운반선)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 達城. 자: 자원(子元)·강중(剛中). 호: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시호: 문충(文忠).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으며,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경국대전》,《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했으며, 또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을 국역했다. 학문이 매우 넓어 천문·지리·의약·복서·성명·풍수에까지 관통하였다. 대구 귀암서원에 제향되었다.
帆穡織織簇如馬 범색직직족여마
租賦南方較舊多 조부남방교구다
獨喜靑山漕不得 독희청산조부득
年年長屬野人家 년년장속야인가
돛단배들이 빽빽이 모여 달리는 말떼처럼 가득하다.
남쪽 지방에서 거두는 세곡과 조세는 예전보다 더욱 많아졌구나.
다만 기쁜 것은 청산은 조운선으로 실어 갈 수 없으니
해마다 변함없이 시골 백성의 것이 되어 남아 있구나.
帆(범) : 돛.
穡(색) : 배를 뜻하는 것으로 쓰인 帆檣(범장) 또는 돛단배의 의미로 이해된다.
織織(직직) : 촘촘하게 늘어서 있는 모양. 簇(촉) : 빽빽하게 모이다.
如馬(여마) : 말떼처럼 많고 빠른 모습. 租賦(조부) : 조세와 공물, 세곡.
較(교) : 비교하다, 더욱. 漕(조) : 조운하다. 세곡을 배로 운반하다.
漕不得(조부득) : 실어 갈 수 없다. 長屬(장속) : 오래도록, 영원히 그 소유가 되다.
「통진팔영」의 마지막 작품인 이 시는 앞선 일곱 편에서 노래한 통진의 아름다운 자연과 명승을 마무리하면서, 경제와 민생이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시는 남포에 조운선이 빼곡히 들어와 국가의 세곡을 실어 나르는 번성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결구에서 뜻을 한층 깊게 한다. 세곡은 해마다 나라로 실려 가지만, 푸른 산만은 누구도 운반할 수 없으며 끝내 그곳 백성들의 곁에 남는다고 노래한다.
결구의 이러한 반전은 서거정 특유의 유머와 철학적 여운을 보여 주며, 「통진팔영」 전체를 자연에 대한 찬미와 인간 사회에 대한 성찰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영원성과 인간 삶의 근본적 안식처를 예찬하는 동시에, 국가의 수탈과는 무관하게 남아 있는 자연의 가치를 은근히 드러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담담한 어조 속에 풍자와 여유를 함께 담아낸 결말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