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가 재개봉하는군요.
우리 어렸을 땐 그래도 가끔 손편지를 주고받곤 했었는데요.
이 영화 보면서 아련한 옛 추억에 잠겼던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작년 얘긴데요.
도서관에서 새로운 책을 빌려왔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주로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책을 읽는데 책을 펼치다보면 이 책을 거쳐간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밑줄친 부분, 때론 간략한 메모들이 적혀있기도 하구요.
한 권의 책에 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고 거기에 그 사람들의 감성들도 스쳐지나가게 되는 것이죠.
이 책엔 조금 색다른 게 실려왔더군요.
이름과 나이, 학번, 전공까지 그 사람의 신상을 증명해주는 문서가 책갈피에 얌전히 묻혀 있었습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고 책을 덮으면서 어떤 흔적을
가슴에 남기게 됐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딩 시절 학교도서관에서 책 맨 뒷장에 꽂혀있던 대출카드 생각이 나더군요.
그때는 지금과 같은 전산시스템이 아니고 대출카드에 빌려간 사람들의 이름이 기입되서 누가 이 책을 빌려봤는지,
언제 대출해서 언제 반납했는지 그 이력을 대출자가 알 수 있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나름 재밌는 일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는 한 학년에 남자 12반, 여자 3반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남녀비율의 학교에 건물 자체가 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였던 우리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의 수업공간인 동관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비유하며 동경하곤 했었습니다만ㅎㅎ 그래봤자 뭐 그림에 떡일 뿐이고 더군다나 그쪽 일에 쑥맥이었던 저로선
마주쳐봤자 제대로 말 한 번 걸어보지도 못했었구요.
그러다가 기회가 왔습니다^^ 학교에서 몇몇 학생들을 특별관리한다는 미명하에 남학생과 여학생들을 함께
도서관에서 자율학습을 시키기로 했고 저도 그 명단에 들어가게 되서 여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생기게 된 거.
같이 공부하면서 여학생들 얼굴도 훔쳐보고, 친구들한테 물어봐서 여학생들 이름도 알게 되고...
그러다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들도 빌려보게 됐는데 대출카드에 같이 공부하던 여학생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이름도 기억나네요^^ 박O희
그렇잖아도 그 여학생이 교회에서 했던 공연도 보러 갔었고, 그래서 더욱 관심이 있었는데, 제가 감동받은 책을 그녀도 보고 있었다는데에 확~끌리더군요.
(그 책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었네요^^)
바보같이 몇 달을 끙끙 앓으며 기회를 엿보다가 반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친구를 통해 손편지를 건네 제 마음을 전했고 며칠 뒤 편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마음만은 고마워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민망한지 친구랑 막 웃으면서 학교 언덕을 뛰어내려가더군요ㅎㅎ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하고 바보같은 행동이었고, 그 여학생의 쪽지도 어이없을 정도로 범생이같은 대답이었는데
조금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웃으면서 떠올리는 추억이 됐네요^^
옛 추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러브레터'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지더군요.
곧바로 다운받아서 지금까지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웠던 기억도, 미숙했던 내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추억이 됩니다.
혹시 러브레터와 관련해서, 혹은 도서관이나 대출카드에 얽힌 추억들 없으신가요?
시간 되시는 분들끼리 러브레터 보면서 옛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써 놓고 주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계셨군요^^
하긴 내 맘을 보여주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제이슨 고백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힘든 일이죠. 그래도 어느 쪽이든 좀 더 확실하게 대처하는 게 좋은 건 아닌지...
그냥 잠깐 생각해보고 갑니다^^
@제이슨 지금은 왜요?^^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여러가지 제약이 있겠지만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마세요~
ㅎㅎㅎ즐건추억이 있으시네요.대출카드기억납니다ㅋ
러브레터영화가관객의 학창때 추억으로 돌아가게함과 첫사랑기억을 떠올리게하고, 본인이 첫사랑대상인줄도 몰랐던사실을 깨닫고 한사람을 떠올리는 등의 요소가 묘하게 학창시절로 돌아가게해서 명작영화가 아닌가싶어요~^^글 재밌게 읽었습니당.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잘 기억하는데 날 좋아해준 사람은 끝내 모르기도 하고 나중에 알게 되기도 하고...후자의 경우가 어떨 땐 더 애틋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영화가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지루한 글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나는 "백년의 고독"책이 눈에 들어옴. 한번 다시 봐야지 생각중이었는데~ / 문득 드는 생각인데 다다는 연애 편지 잘 썼을거야~ ^^
내가 연애편지를 잘 썼으면 지금 이렇게 방바닥 긁고 있겠어?ㅎㅎ
백년의 고독 누나도 인상싶게 본 것 같더라. 후반부에선 마치 광기같은 필력이 느껴지는 게ㄷㄷㄷ
'소설'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작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