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만 봤다면 변산반도의 반만 본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산반도하면 격포의 채석강과 변산반도 곳곳에 자리한 해수욕장을 생각한다. 변산반도의 해안가를 따라 돌며 서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변산반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채석강과 적벽강은 중국의 역사적인 명소와 비견될 정도로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변산・고사포・격포・상록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해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변산마실길 또한 변산반도가 주는 선물이다.
위도
내변산
하지만 변산반도에서 바다만 봤다면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반밖에 보지 못한 것과 같다. 변산반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천년고찰 내소사와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전나무숲이 나온다. 내소사에서 관음봉을 넘어가면 최고 높이가 해발 500m 정도밖에 안 되는 변산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 웅장한 계곡이 등장한다. 변산이 품고 있는 봉래구곡과 와룡소계곡은 여름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들에게 청아한 물소리와 시원함을 선사한다. 봉래구곡을 걷다보면 만나는 직소폭포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 중 하나로 인정받을 만하다. 폭포가 만들어낸 용소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으며 선녀가 왔다 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의 빛깔도 곱다. ‘내변산’이라 불리는 변산반도의 내륙 지방은 부안에 왔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장소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국립공원 이야기 23 - 부안 (扶安)
부안은 전라북도 서해안에 위치한 군으로, 동북쪽으로 김제시, 동남쪽으로 정읍시, 남쪽으로 고창군과 접해있다. 행정구역인 부안군이라는 이름보다 변산반도라는 이름이 더 알려졌을 정도로 변산반도가 부안에서 가지는 상징성은 크다. 부안 영토의 30% 이상이 변산반도가 서남쪽에 있으며, 북동쪽에는 드넓은 평야가 있어 농업이 발달하였다. 위도를 포함한 서해안의 여러 섬들도 부안에 속해 있어, 부안은 ‘산들바다의 고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변산반도 덕분에 전라북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곰소항・격포항 등의 어항 (漁港) 또한 많다.
부안의 옛지도
부안은 신라 경덕왕 때 현재 옆동네 정읍의 고부군에 속해 있었다. 부안이라는 이름이 생긴 건 1414년 조선 태종 14년으로 보안현(保安縣)과 부령현(扶寧縣)을 합하여 부안현(扶安縣)이 되었다가 고종 때 부안군으로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부안은 고부군의 백산면, 거림면, 덕림면을 편입하여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1943년에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승격되어 1개읍 9개면을 갖추게 된다. 위도는 1914년에 영광군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에 다시 위도면으로 부안군에 환원된다. 이후 계화면과 진서면이 추가되어 현재 1개읍 12개면을 갖춘 행정구역이 되었다.
변산마실길
변산반도가 유명하다고 부안군에 관광업이 발달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변산반도 일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개발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휘황찬란한 호텔이 들어설 수 없다. 게다가 새만금방조제가 들어서 예전에 명성을 떨쳤던 변산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면적이 점차 줄어드는 실정이다. 고사포・격포・모항・상록・위도 등의 해수욕장이 있지만 해수욕장만 놓고 보면 태안반도가 더 낫기 때문에 수도권의 사람들은 굳이 먼 변산반도까지 오지 않는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이루는 변산면과 진서면
부안군의 주력 산업은 농업과 수산업이다. 부안군의 백산면 일대는 김제시 부량면・죽산면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계화도 간척지에서 생산한 쌀은 저농약 재배로 유명하다. 어업은 곰소・격포・위도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에는 새만금 갯벌에서 바지락, 백합, 죽합 등을 캘 수 있었지만 물길이 막힌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곰소 염전은 신안과 더불어 한국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풍요로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농어촌을 기피하는 사람들로 인해 부안군의 인구는 점차 줄어들어 현재 51,800명으로 집계된다.
위도에서 내변산까지
격포는 외변산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격포해수욕장을 비롯해 채석강과 적벽강이 가까이 있어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이 층층이 쌓인 듯한 기암절벽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임에도 격포는 아름다웠다. 격포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는 비로 인해 젖어 있었음에도 왜 변산반도 제일의 해수욕장이라고 불리는 지 알게 만들었다. 우리가 격포에 갔을 때 운이 좋게도 썰물 때라 채석강과 적벽강의 절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격포에서 할 수 있는 건 이게 끝이 아니다. 서해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인 위도에 가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격포항이기 때문이다.
위도로 향하는 길
격포항에서 위도로 가는 여객선은 하루 여섯 번 왕래한다. 격포에서 위도로 향하는 첫 배는 오전 7시 55분에 출발하며, 위도에서 격포로 오는 마지막 배는 오후 5시 5분에 출발한다. 여객선을 타고 50분 정도 기다리면 위도에 도착할 수 있다. 남해의 섬들을 여행할 때 타고 가는 여객선에선 수많은 섬들이 바다 위에 점점이 놓인 걸 볼 수 있지만, 위도로 가는 길엔 비슷한 풍경을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인천 앞바다의 수질이 그리 깨끗하지 못한 것과 달리 변위도로 가는 바닷길은 똑같은 서해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맑다.
위도 해수욕장
위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내리면 위도를 한 바퀴 도는 버스에 오를 수 있다. 버스를 타면 위도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놓여진 기암괴석을 감상할 수 있다. 위도 서쪽은 굴곡이 심한 해안을 따라 위도・깊은금・미영금 등의 해수욕장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은 상대적으로 가파른 바위가 있어 사람 한 명 없는 도로를 따라 조용한 분위기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위도에 자연 풍광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해 바다 외딴 섬 위도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위도띠뱃놀이가 아직도 보존되어 열리고 있다. 위도띠뱃놀이는 대리마을에서 매년 1월에 열리며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이다. 띠뱃놀이는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할 때 띠배를 띄워 보내기 때문에 띠뱃놀이라 부르게 되었고,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운 집인 원당에서 굿을 하기 때문에 원당제라고 한다. 여름에 위도를 찾았기 때문에 아쉽게 위도띠뱃놀이를 볼 수는 없었고, 겨울에 다시 한 번 위도를 찾아 우리 선조들이 오랜 시간동안 지켜온 문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썰물이 한창인 위도의 풍경
위도에서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밖에 없었기 때문에 위도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서해에 있는 섬답게 위도 또한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 우리가 위도를 찾았을 때는 썰물이 절정에 다다른 때라 바다에 몸을 담그기 위해선 최소 100m 이상 걸어야 했다. 그럼에도 위도 해수욕장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건 규모도 규모지만 사람없이 한적한 풍경을 간직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했던 친구 또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다면 다시 위도에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소사 전나무 숲
격포항에 다시 도착한 뒤 점심으로 바지락칼국수를 먹은 뒤 내변산으로 향했다. 함게 한 친구는 일정 때문에 먼저 내려갈 수밖에 없었기에 혼자 택시를 타고 내소사로 향했다. 내소사는 입구부터 화려하다. 내변산에 찾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소사 전나무숲의 아름다움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듯 했다. 월정사 전나무숲만큼 규모가 크지 않지만, 내소사의 전나무숲 또한 여름 화창한 햇볕 아래 초록빛을 뽐내고 있었다. 내소사 전나무숲을 걷는 것만으로 내소사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창살
내소사에는 숱한 화재 속에서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킨 대웅보전이 있다. 내소사의 대웅보전은 다른 절들과 달리 화려한 단청이 없다. 대웅보전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단청이 이미 지워져 천연 나무 그대로의 색이 드러난다. 월출산 무위사 극락전과 형태는 달라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감동을 더한다. 대웅보전은 가까이서 볼 때도 경탄을 자아낸다. 내소사의 창살은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창살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창살의 꽃문양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선조들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서 느낀 감동을 내소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저 멀리 고창까지 볼 수 있는 관음봉
내소사의 감동을 뒤로 하고 관음봉으로 향했다. 관음봉의 높이는 대략 350m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곰소염전을 포함한 변산반도 남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아랫동네인 고창의 해안가는 점점 간척지로 개간되고 있어 땅을 갖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해 갯벌을 보존하자는 외침과 달리 서해의 해안선은 간척지로 인해 점점 단조로워지고 있다.
봉래구곡
관음봉에서 재백이고개로 내려가면 봉래구곡을 만날 수 있다. 내변산은 500m의 낮은 높이에도 불구하고 부안 군민들에게 소중한 물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 변산반도의 풍부한 물을 그냥 흘러보내기 아까워 부안댐이 건설되어 변산반도 한가운데 거대한 호수가 생겨버렸다. 농사와 식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덕유산 국립공원에 스키리조트가 생긴 것 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직소폭포
봉래구곡을 따라 1km 정도 걸으면 직소폭포가 나온다. 직소폭포는 30m 암벽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내리는 폭포로 산의 높이를 생각하면 만날 거라고 기대하기 힘든 폭포다. 직소폭포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지고 있었음에도 폭포가 내는 거대한 소리와 영롱한 빛깔의 계곡이 어루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위도와 내변산의 풍경을 모두 본 것은 좋았지만 두 곳 중 하나를 선택해 깊게 보는 것이 더 나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한켠에 남는다.
다시 찾아가고픈 변산반도
변산반도는 언제고 꼭 다시 찾아가보고 싶은 국립공원이다. 내변산과 외변산, 위도까지 모두 볼 수 있었지만, 마치 해외여행을 간 것처럼 모든 곳을 다 둘러보려는 욕심이 컸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변산마실길을 따라 변산반도를 한 바퀴 둘러보고 화창한 날 직소폭포에 발을 담그며 폭포가 내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특히 위도는 겨울에 꼭 방문해 수백년의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위도띠뱃놀이를 만나보고자 한다. 이런 바람이 언제 이뤄질 지는 모르지만 변산반도는 언제나 내 마음 속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