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칭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표준 모형에 존재하는 페르미온과 보손의 수가 같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우리 우주에 초대칭성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입자가 더 많아야 한다.
실험 물리학자들이 지금까지 발견한 입자보다 최소 두 배는 더 있어야 한다.
표준 모형의 모든 페르미온은 초대칭짝인 보손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힘을 매개하는 게이지 보손 또한 초대칭짝을 가져야만 한다.
초대칭 우주에서 쿼크와 경입자의 초대칭짝은 발견된 적이 없는 새로운 보손이다.
물리학자들은 초대칭짝을 ‘스쿼크(squark)’와 ‘슬렙톤(slepton)’이라고 부른다.
페르미온의 초대칭짝은 이름 앞에 ‘S’가 붙는 것을 빼면 페르미온과 같다.
전자는 셀렉트론(selectron), 톱 쿼크는 스톱 쿼크(stop quark)를 초대칭짝으로 갖는다.
모든 페르미온은 그에 대응하는 스페르미온(sfermion), 즉 초대칭짝이 되는 보손을 갖는다.
초대칭짝을 이루는 두 입자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페르미온과 초대칭짝을 이루는 보손은 페르미온과 서로 같은 질량과 전하를 가지며 상호 작용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전자의 전하가 -1이면 셀렉트론의 전하도 -1이다.
중성미자가 약력으로 상호 작용한다면 스뉴트리노도 마찬가지다.
초대칭 우주에서는 보손도 초대칭짝을 갖는다.
표준 모형의 보손은 모두 힘을 매개하는 입자로 광자, 전기 전하를 띤 W보손들, Z보손, 글루온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스핀값이 1이다.
초대칭성의 명명법은 보손의 초대칭짝으로 새로 도입된 페르미온에 이노(-ino)라는 꼬리표를 달아준다.
따라서 게이지 입자의 초대칭짝은 ‘게이지노(guagino)’, 글루온 입자의 초대칭짝은 ‘글루이노(gluino)’, 힉스 입자의
초대칭짝은 ‘힉시노(Higgsino)’가 된다.
초대칭짝을 이루는 보손과 마찬가지로, 초대칭짝을 이루는 이 페르미온들도 자신의 짝인 보손들과 같은 전하, 같은
상호 작용 그리고 초대칭성이 정확하다면 같은 질량을 갖는다.
초대칭성과 계층성 문제
표준 모형에서 계층성 문제는 힉스 입자가 왜 그처럼 가벼운가 하는 것이다.
가상 입자가 힉스 입자의 질량에 주는 큰 양자 기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힉스 입자가 가벼울 수 있을까? 큰 양자
기여는 표준 모형이 조작에 가까운 엄청난 미세 조정을 거쳐야만 제대로 작동함을 의미한다.
초대칭성을 도입하여 표준 모형을 확장하면 유리하다.
입자와 그 초대칭짝 양쪽으로 부터 양자 기여가 있다고 하면, 힉스 입자의 질량에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양자 기여가
초대칭성에 의해 상쇄되고, 그에 따라 힉스 입자의 질량이 그토록 작은 것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만드는 원인이 제거
된다.
초대칭성 이론에서 보손의 상호 작용과 페르미온의 상호 작용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초대칭성 이론에서는 입자의 질량에 대한 양자 기여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초대칭성 이론에서는 표준 모형에 존재하는 가상 입자만이 힉스 입자의 질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가상 입자의 초대칭짝도 힉스 입자의 질량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초대칭성의 놀라운 특성으로 인해 이 두 효과가 더해져사 항상 0이 된다.
가상 페르미온과 가상 보손이 만들어 내는 각각의 양자 기여는 매우 크지만, 더해지면 결국 정확히 상쇄된다.
페르미온의 양자 기여는 음수이기 때문에 보손의 양자 효과를 정확히 없애 준다.
초대칭성을 고려하지 않는 이론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엄청나게 큰 조작 과정을 통해 양자 기여를 축소하지 않으면, 힉스
입자의 질량에 미치는 거대한 양자 기여가 저에너지 상태의 약전자기 대칭성 깨짐을 망가뜨리고 만다.
하지만 초대칭성을 고려한 표준 모형에서는 앞의 다이어그램에서 본 것처럼 안정성을 흔드는 양자 효과가 최종적으로
상쇄된다.
힉스 입자의 고전적인 질량이 작다면 양자 기여를 포함한 진짜 힉스 입자의 질량도 분명 작을 것이다.
초대칭성은 표준 모형의 불안정한 기초를 유연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표준 모형에서 이루어지는 미세 조정을 심을 아래로 해서 연필을 세우는 일에 비유한다면, 초대칭성은 연필을 똑바로
서 있게 해 주는 철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는 계층성 문제를 이민국 직원이 월권 행위를 하면서 너무 많은 서류를 지연시키는 행위에 빗댄다면, 초대칭짝은
이민국 직원에게 제재를 가해 대부분의 서류를 통과시키도록 만드는 민권 변호사와 같다.
가상 입자가 유발하는 양자 기여가 그 초대칭짝이 유발하는 양자 기여에 의해 0이 되기 때문에, 초대칭성 이론에서는
가상 입자가 유발하는 양자 효과에도 불구하고 작은 입자가 배제되지 않는다.
초대칭성 이론에서는 가상 입자의 양자 기여를 고려해도 힉스 입자처럼 질량이 작은 입자들이 여전히 가벼운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깨진 초대칭성
초대칭성은 분명, 가상 입자가 힉스 입자의 질량에 주는 양자 기여를 제거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초대칭성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우리 세계가 명백히 초대칭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아는 입자들에 질량과 전하량이 같은 초대칭짝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발견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포티노(photino, 광자의 초대칭짝)나 셀렉트론(전자의 초대칭짝)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에 초대칭성이 존재하지만 정확한 대칭성을 이루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게 타당할 것이다.
약전자기 대칭성이 국소적인 것처럼 초대칭성도 깨져야만 한다.
이론적으로 입자와 그 초대칭짝의 질량이 달라서 초대칭성이 깨질 가능성이 있다.
즉 작은 초대칭성 깨짐 효과(small supersymmetry-breaking effects)이다.
입자와 그 초대칭짝의 질량 차이는 초대칭성이 깨진 정도에 따라 커진다.
초대칭성이 약간만 깨졌다면 그 차이가 작을 것이고, 초대칭성이 심각하게 깨졌다면 그 차이가 커질 것이다.
사실 입자와 그 초대칭짝의 질량 차이는 바로 초대칭성이 얼마나 깨졌는지를 기술하는 한 방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초대칭성 깨짐 모형에서 입자보다는 그 초대칭짝이 더 무겁다.
이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인데, 실험 결과에 부합하려면 표준 모형의 입자보다 그 입자의 초대칭짝이 더 무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초대칭짝들이 무겁기 때문에 이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질량이 더 큰 입자는 더 높은 에너지에서 만들어 지기 때문에, 초대칭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가속기가 그처럼 질량이
큰 초대칭짝을 만들 만큼 충분한 에너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초대칭짝이 고에너지 실험에서 검출되지 않기 위해 가져야만 하는 최소한의 질량값은, 초대칭짝의 전하량과 상호
작용 세기에 따라 결정된다.
상호 작용 세기가 강한 입자일수록 좀 더 쉽게 발견될 것이다.
따라서 관측되지 않으려면 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입자들은 약하게 상호 작용하는 입자들보다 무거워야 한다.
현재 실험 수준에서 초대칭성 깨짐 모형들은, 만약 초대칭성이 존재하고 초대칭짝들이 존재한다면, 초대칭짝들이
최소한 수백 기가전자볼트 이상의 질량을 가져야만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야만 이제껏 관측되지 않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쿼크처럼 강력을 통해 상호 작용해야 하는 초대칭짝은 다른 초대칭짝보다 훨씬 무거워서 최소한 수천 기가 전자
볼트 정도의 질량을 가져야 한다.
깨진 초대칭성과 힉스 입자의 질량
초대칭성 이론에서 힉스 입자의 질량에 대한 양자기여는 서로 상쇄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 초대칭성이 있다면 깨진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도 앞에서 살펴 보았다.
초 대칭성이 깨어져 있는 모형에서 표준 모형의 입자와 그 초대칭짝의 질량이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힉스 입자 질량에
대한 양자 기여는 초대칭성이 깨지지 않았을 때처럼 완벽하게 상쇄되지 않는다.
그래서 초대칭성이 깨지면 가상 입자가 만드는 양자 기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힉스 입자의 질량에 미치는 양자 기여가 그리 크지 않다면 표준 모형은 미세 조정 같은 조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
초대칭성이 깨졌다고 해도 그 효과가 작은 한, 표준 모형은 가벼운 힉스 입자를 가질 수 있다.
약간 깨진 초대칭성이라고 해도 가상의 에너지를 띤 입자가 만들어 내는 플랑크 규모 정도의 엄청난 양자 기여를
사라지게 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매우 작은 초대칭성 깨짐만 있어도 억지스러운 상쇄 조작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다.
초대칭성이 깨지면서 힉스 입자의 질량은 양자 기여를 받는데, 그 양자 기여의 정도는 결코 가상 입자와 그 초대칭짝의
질량 차이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가상 입자와 그 초대칭짝 사이의 질량 차이는 약력 규모 질량 정도가 되어야만 한다.
그럴 경우 힉스 입자의 질량에 미치는 양자 기여 또한 약력 규모 정도가 되는데, 이는 힉스 입자의 질량으로는 딱 맞다.
초대칭짝의 질량이 약력 규모와 비슷하다면, 힉스 입자 질량에 미치는 양자 기여는 그다지 크지 않다.
초대칭성이 없는 이론에서는 힉스 입자 질량에 미치는 양자 기여가 10¹6 정도로 큰 까닭에 힉스 입자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억지스러운 조작을 해야 했다.
반면 수백 기자전자볼트 정도의 질량차로 초대칭성이 깨진 세계에서는 힉스 입자의 질량에 대한 양자 효과 엄청나게
크지 않다.
현재의 초대칭성 이론에 따르면 1테라전자볼트 정도의 에너지 영역을 탐색하는 입자 가속기에서 힉스 입자는 물론이고
표준 모형 입자의 초대칭짝이 다수 발견된 될 것이다.
슬렙톤, 위노, 지노, 포티노는 물론이고 글루이노, 스쿼크도 보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입자들은 짝을 이루는 표준 모형의 입자와 같은 전하를 갖지만 더 무거울 것이다.
충분한 에너지에서 충돌 실험을 행한다면 이 입자들을 놓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대칭성(supersymmetry)”의 발견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초대칭성 이론이 등장하기 전 물리학자들은 공간과 시간의 대칭성을 모두 안다고 생각했다.
시공간 대칭성은 익숙한 개념이다.
1905년 상대성 이론이 탄생하자 시공간의 대칭 변환은 속도를 바꾸는 대칭성까지 포함되도록 확장되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시공간 대칭 변환의 마지막 항목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또 다른 시공간 대칭성이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967년 두 물리학자, 제프리 만둘라(Jeffrey Mandula)와 시드니 콜먼은 시공간과 관련된 대칭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이 직관을 체계화했다.
‘초대칭성’은 보손과 페르미온을 상호 교환하는 기묘한 대칭 변환과 관련된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현재 초대칭성을 포함한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주변 세계에서 초대칭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대칭성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 가설에
불과하다.
물리학자들이 초대칭성이 자연에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다음 편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초끈이다.
초대칭성에 기반한 초끈 이론은 표준 모형의 입자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는 단 하나의 끈 이론이다.
초대칭성을 포함하지 않는 끈 이론이 우리 우주를 기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초대칭성 이론들이 계층성 문제를 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초대칭성이 약력 규모 질량과 플랑크 질량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큰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계층성 문제를
유발하는 힉스 입자 질량에 미치는 막대한 양자 기여를 상쇄시켜 준다.
계층성 문제는 골치 아픈 난제인데, 이를 해결하려는 제안 중 이론적인 검증과 실험적인 검증을 모두 통과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분 차원이론들이 그 해결 대안으로 떠오르기 전에는 초대칭성 이론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페르미온과 보손, 있을 것 같지 않은 조합
초대칭 세계에서 우리가 아는 입자들은 모두 초대칭 변환에 의해 상호 교환될 수 있는 ‘초대칭짝(superpatner or
supersymmetric partner)’을 갖는다.
초대칭 변환을 통해 페르미온은 보손 짝으로, 보손은 페르미온 짝으로 변환될 수 있다.
페르미온과 보손은 스핀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두 종류의 입자이다.
페르미온이 정숫값의 반에 해당하는 스핀(1/2, 3/2,…)을 갖는 반면 보손은 정수 스핀(0, 1, 2…)을 갖는다.
정숫값의 스핀이 보통 물체가 공간 내에서 자전할 때 갖는 스핀이라면, 정숫값의 반인 스핀은 양자 역학에서만 볼 수
있다.
초대칭성 이론에서 페르미온은 모두 보손 짝으로 변환될 수 있고, 보손은 모두 페르미온 짝으로 변환될 수 있다.
입자들의 이러한 성질을 이론적으로 기술한 것이 초대칭성이다.
보손과 페르미온을 상호 교환하는 초대칭 변환을 하고 입자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운동 방저식을 이리저리 만지고
나도, 방정식은 최종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복잡한 계산을 거쳐 초대칭 변환을 하고 난 방정식이 내놓는 예측이나 변환 전의 원래 방정식이 내놓는 변환이나
똑같은 것이다.
얼필 보기에 초대칭성은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원래 대칭 변환을 했을 때 바뀌지 않는 것은 계다.
하지만 초대칭 변환은 분명히 서로 다른 입자인 페르미온과 보손을 바꾸어 놓는다.
대칭성이 그처럼 서로 다른 것을 서로 뒤섞으리라고는 생각지 않겠지만, 몇몇 물리학자 그룹이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1970년대, 유럽과 러시아의 물리학자들이 대칭 변환을 통해 보손과 페르미온을 상호 교환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교환
전후에 물리학 법칙이 동일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초대칭성은 우리가 지금껏 생각해 온 대칭성과는 다소 다르다.
상호 교환되는 대상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손과 페르미온의 수가 같을 경우에는 이 초대칭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비유를 들어 보자.
다양한 크기의 빨간색 구슬과 초록색 구슬이 같은 수만큼 있다고 상상해 보자.
두 사람이 게임을 한다.
당산은 빨간색 구슬을 친구는 초록색 구슬을 가진다.
두 종류의 구슬이 정확히 짝을 이루고 있다면, 어느 색을 선택하든 별다른 이점이 없다.
하지만 어떤 크기에서 빨간색 구슬과 초록색 구슬의 수가 다르다면 공평한 게임이 될 수 없다.
그 경우 어떤 색의 구슬을 선택하는가가 중요해지고, 만일 구슬의 색을 서로 바꾼다면 게임의 진행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대칭성이 존재하려면 빨간색 구슬과 초록색 구슬이 같은 수만큼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크기의 빨간색
구슬과 초록색 구슬이 같은 수 수만큼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손과 페르미온이 정확히 짝을 이룰 때에만 초대칭성이 성립한다.
이때 보손과 페르미온 입자의 수는 같아야 한다.
또한 짝을 이루는 구슬의 크기가 같아야 하는 것처럼, 짝을 이룬 페르미온과 보손은 질량과 전하량이 같아야 하며
이들의 상호 작용은 동일한 변수로 기술되어야 한다.
즉 각 입자는 자신과 유사한 속성을 갖는 초대칭짝을 갖는다.
보손이 강한 상호 작용을 한다면 그 짝도 그래야 한다.
몇몇 입자 사이에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면, 그 입자들의 초대칭짝 사이에서도 그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물리학자들이 초대칭성 발견을 흥미롭게 받아들인 것은, 그것이 만약 존재한다면, 거의 한 세기 만에 발견되는 새로운
시공간 대칭성이기 때문이었다.
초대칭성에 ‘초(super)’라는 접두사가 붙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초대칭성이 서로 다른 종류의 스핀을 갖는 입자를 상호 교환한다는 점을 알면 다음과 같은 관련성을 충분히 유도할 수
있다.
스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보손과 페르미온은 공간에서 회전할 때 서로 다르게 변환되며, 초대칭변환은 이러한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초중력 이론 & 초끈 이론
프랑스 태생 물리학자 피에르 라몽은 1971년에 처음으로 초대칭성 이론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4차원이 아닌, 시간 차원 하나와 공간 차원 하나로 구성된 2차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라몽의 목표는 끈 이론에 페르미온을 포함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방법적인 문제 때문에 처음의 끈 이론은 보손만을 다루었는데, 우리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페르미온을 포함시켜야
했다.
라몽은 ‘페르미온 끈 이론(fermionic string theory)’로 발전 시켰고, 이것은 서방 세계에 등장한 최초의 끈 이론이었다.
당시에는 4차원 양자장 이론이 끈 이론보다 훨씬 확고한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4차원 초대칭성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초대칭성이 시공간 구조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2차원을 4차원으로 일반화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1973년 독일의 물리학자 율리우스 베스(Julius Wess)와 이탈리아 태생의 물리학자 브루노 주미노(Bruno Zumino)는 4차원
초대칭성 이론을 만들었다.
이 선구자들이 4차원 초대칭성 이론을 만들어 내자 많은 물리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1973년 베스-주미노 모형
에는 표준 모형 입자가 모두 다 포함되지 않았다.
4차원 초대칭성 이론에 힘을 전달하는 게이지 보손을 포함시킬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세르조 페라라(Sergio Ferrara)와 주미노가 1974년에 이 난제를 해결했다.
페라라-주미노 이론 덕분에 물리학자들은 초대칭성 이론에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을 포함시키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중력은 초대칭성 이론에서 제외된 채 있었다.
이때 남은 문제는 초대칭성 이론이 남은 하나의 힘을 포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1976년 세 명의 물리학자, 페라라, 댄 프리드먼(Dan Freedman) 그리고 페터 반 뉘벤후이젠(Peter van Nieuwenhuizen)은
중력과 상대성 이론을 포함하는 복잡한 초대칭성 이론인 ‘초중력(supergravity)’ 이론을 구축하고 이 문제를 해결했다.
초중력 이론이 구축되어 가는 동안, 끈 이론 또한 독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끈 이론에서 핵심적인 발전 중 하나는 페르디난도 글로치(Ferdinando Gloizzi), 조엘 셰르크(Joel Scherk)와 데이비드
올리브(David Olive)가 느뵈와 슈바르츠, 라몽이 만든 페르미온 끈 이론을 이용해 안정적인 끈 이론을 발견했다.
페르미온 끈 이론은 이전의 이론에는 없으나 초중력 이론에만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입자를 갖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새로운 입자는 중력자(graviton)의 초대칭짝인 그래비티노(gravitino)와 동일한 성질을 가졌다고 추정되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바로 그래비티노였음이 밝혀 졌다.
마침 그때쯤 초중력 이론이 발견된 덕분에 물리학자들은 두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요소인 이 입자를 연구한
결과, 곧 페르미온 끈 이론에 초대칭성이 존재함을 밝혀냈다.
이 결과 초끈 이론이 탄생했다.
우리는 여러 입자의 성질이 모두 동일하다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비슷한 힘을 느끼는 입자는
그 성질도 어느 정도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를 들면, 같은 힘을 느끼는 입자들은 질량이 비슷하다고 예상하는 식이다.
입자 물리학자들은 타당한 과학적 논리에 따라 대통일 이론 같은 하나의 이론 안에 존재하는 입자들은 질량이 비슷
하리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대통일 이론에서 입자들의 질량은 너무나 다르다.
그 차이가 10조 배나 된다.
대통일 이론에서 약전자기 대칭성을 깨는 힉스 입자는 약력 규모 정도의 ‘가벼운’ 입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힉스 입자가 강한 상호 작용을 하는 다른 입자와 짝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 강한 상호 작용을 하는 새로운 입자는 대통일 규모 정도의 질량을 갖는 엄청나게 무거운 입자여야 한다.
즉 대통일 힘 대칭성(GUT force symmetry)으로 연결된 두 입자의 질량차가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대통일 이론에서 대칭성으로 연관된 두 입자들은 서로 다르다고 해도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이는 약력과 강력이 고에너지에서 서로 교환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통일 이론의 배경이 되는 생각이다.
즉 모든 힘은 궁극적으로 같아야 한다.
따라서 강력과 약력이 통일되면 힉스 입자를 포함해 약력으로 상호 작용하는 모든 입자들은 강력을 느끼는 입자와
짝을 이뤄야 할 뿐만 아니라, 원래의 힉스 입자가 하는 상호 작용과 비슷한 상호 작용을 해야 한다.
하지만 힉스 입자와 연관되는, 이 강력을 느끼는 새로운 입자는 커다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강력 전하를 띤 힉스 관련 입자는 쿼크나 경입자와 동시에 상호 작용하여 양성자 붕괴를 일으킬 수 있다.
이 입자가 존재할 경우, 대통일 이론의 예측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양성자 붕괴가 일어날 것이다.
급속한 붕괴를 막으려면 강력 전하를 띤 힉스 관련 입자는 굉장히 무거워야 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양성자 수명의 한곗값을 고려한다면 강력 전하를 띤 힉스 입자의 짝이 되는 입자는, 자연에
존재한다면, 대통일 이론 규모 질량과 비슷한 값인 약 1000조 기가전자 볼트의 질량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약력 게이지 보손이 실험에서 측정한 정도의 질량을 가지려면, 약력 전하를 띤 힉스 입자의 질량이 250
기가전자볼트 정도로 가벼워야 함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실험값의 제한으로 인해 힉스 입자의 질량은 강력 전하를 띤 힉스 관련 입자와는 굉장히 달라야 한다.
대통일 이론에서 약력 전하를 띤 힉스 입자와 질량은 약력 힉스 입자보다 훨씬 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는 우리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100조 배에 이르는 두 입자의 엄청난 질량 차이는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약력 힉스 입자와 강력 전하를 띤 힉스 관련 입자가 통일장 이론에서 비슷한 상호 작용을 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
에 더욱 설명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통일장 이론에서 한 입자는 무겁게, 다른 입자는 가볍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엄청나게 큰 보정 계수를
집어넣는 것이다.
무척 조심스럽게 숫자를 골라내야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 숫자를 13자리까지 정확하게 뽑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성자가 붕괴하거나 약력 게이지 보손의 질량이 너무 커진다.
입자 물리학자들은 이 필수적인 조작을 ‘미세 조정(fine-tuning)’이라고 부른다.
미세 조정은 원하는 값을 정확히 얻을 수 있도록 변수들을 조절하는 것을 일컫는다.
‘tuming’ 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이 과정이 마치 피아노를 조율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유효 자릿수 13자리까지 수백 헤르츠의 진동수를 정확하게 맞추려면 그 소리를 100억 초(1000년)동안
들어야만 한다.
미세 조정에 대한 다른 비유로 예를 들면, 큰 회사에서 한 사람은 지출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은 수입을 관리한다고 하자.
두 사람은 서로 의사 교환을 할 수 없지만, 연말에 수입과 지출의 차이를 1달러 이하로 맞추지 못하면 회사가 망한다고
해 보자.
가벼운 힉스 입자를 포함하는 대통일 이론들은 대부분 이런 미세 조정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가장 단순한 대통일 이론에서 힉스 입자의 질량이 충분히 작으려면 무리한 조작을 해야만 한다.
대통일 이론 모형은 다른 좋은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4차원 시공간에서 힘을 통일 하려는 대다수 모형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이다.
게다가 계층성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 근거 설명은 하지 않고 단순히 한 입자는 가볍고 다른 입자는 굉장히 무겁다고
가정해도, ‘양자 역학적 기여(quantum contribution)’ 또는 간단히 ‘양자 기여’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 양자 기여를 고전적인 질량에 더해야만 힉스 입자가 현실 세계에 갖기로 되어 있는 참된 물리적 질량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양자 기여는 보통 힉스 입자의 질량인 수백 기가전자볼트보다 훨씬 더 크다.
힉스 입자 질량에 대한 양자 기여
입자는 빈 공간을 그냥 통과할 수 없다.
가상 입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입자의 원래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우리는 항상 어떤 물리량이든 가능한 모든 경로에서 오는 효과를 더해야 한다.
이러한 가상 입자들 때문에 힘의 세기가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이와 비슷한 양자 기여가 입자의 질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힘의 세기와 달리 힉스 입자의 질량의 경우에는 가상 입자의 효과가 너무 크게 나타나서 실험이 요구하는
값과 큰 차이를 보인다.
힉스 입자가 질량이 대통일 이론 규모 정도 되는 무거운 입자들과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힉스 입자들이 취하는 경로들
중 일부는 무거운 가상 입자와 반입자를 토해내는 ‘진공(vacuum bubble)’을 필요로 한다.
그 경로를 지나는 동안 힉스 입자는 잠시 동안 이 입자들로 변하게 된다.
진공에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무거운 입자들은 힉스 입자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 입자들이 커다란 양자 기여를 저지른 범인들이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힉스 입자가 실제로 갖는 질량을 결정하려면 가상 입자가 없는 단순한 경로에 무거운 가상 입자
들을 포함하는 경로를 더해야 한다.
문제는 무거운 가상 입자를 포함하는 경로들이, 힉스 입자의 질량을 애초 원한 값보다 10¹³배나 큰 대통일 이론의
무거운 입자 질량만큼이나 크게 한다는 것이다.
가상의 무거운 입자들이 야기하는 이 엄청난 크기의 양자 기여들은 모두 힉스 입자의 고전적인 값에 더해져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이론이 되려면, 약력 게이지 보손의 질량이 약 250기가전자볼트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개의 대통일 이론의 질량 효과가 10¹³배만큼이나 크더라도 이 엄청난 크기의 값을 모두 더
하면 이들 중 일부는 양수, 일부는 음수여서 최종적인 답은 대략 250기가 전자볼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물리학을 도입하지 않고 힉스 입자의 커다란 질량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힉스 입자의 고전적인
질량이 힉스 입자 질량에 미치는 커다란 양자 기여를 정확히 상쇄할 수 있는 값을 갖는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질량을 결정한느 변수들은 각각의 기여가 막대하더라도 그 기여를 모두 더하면 작은 값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미세 조정이다.
미세 조정이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 세계에서는 극히 일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미세 조정은 엄청난 억지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무척 정확하기를 요구한다.
13자리에 모두 정확한 값이 아니면 말도 안되는 잘못된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뉴턴 중력 상수가 1퍼센트 정도 다른 값을 갖더라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
반면 대통일 이론에서는 변수가 조금만 변해도 정성적이든 정량적이든 예측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만약 이 변수가 허용된 값 말고 다른 값을 갖는다면 그 변수가 어떤 값을 갖든 대통일 이론 규모 질량과 약력 규모
질량 사이의 계층성 문제는 사라지고, 그것 때문에 존재할 수 잇는 우주의 구조나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변수가 1퍼센트만 달라지면, 힉스 입자의 질량은 엄청나게 커진다.
약력 게이지 보손의 질량은 물론, 그밖의 다른 입자의 질량도 훨씬 커지고 그에 따라 표준 모형은 현실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