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나들이
로고스서원의 희망의 인문학 이야기 67
일시 : 2019년 7월 26일
장소 : 새빛센터
1.
오늘은 서점 가는 날. 홍콩반점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푸지게 먹었다. 처음 보는 아이가 둘이다. 내 건너편에는 우람한 체격의 ‘송’이다. 탕수육 大의 절반 이상을 혼자 먹어치웠다. 듣자하니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아이인데, 센터장님 말씀으로는 고아란다. 아이고. 두 테이블 건너편 끝 자리에 앉은 아이는 다시 이곳에 왔단다. 새빛에 있는 것이 마음 잡기 좋아서 왔단다.
2.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젤 먼저 간 곳은 만화 코너. 모두들 거기서 웅성거리며 웃고 있다. 30분 시간을 주었고, 1인당 5천원을 로고스서원이 지원해주었는데, 오늘은 8천원이다. 두 권 산 아이도 있고, 조금 가격대 높은 것을 한 권 산 아이도 있다. 서점 나오면서 기념으로 한 컷.
3.
이번에는 설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과 설빙은 센터에서 사고, 우리는 책값만 부담했다. 다음에는 간식도 좀 챙겨야겠다.
돌아가면서 왜 그 책을 샀는지 한 마디 하라고 했다.
‘준’이는 소설,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집에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있단다. 해서, 셜록 홈즈 한 권과 괴도 뤼팽에 관한 책을 골랐다.
‘찬’이는 「사람 소리 하나」를 골랐다. 사람 소리는 각기 다른데 왜 같다, 하나다 라고 했는지가 궁금해서 집었단다. 또 한 권은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작품이라서 책도 읽고 싶었다 한다.
‘승’이는 「블레이드 헌터1」이다. 잘 모르는 책이라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를 찾아 다른 나라로 가는 설정이 흥미로워 샀다. 본인 이야기인가? 다음은 「오시리스 살인사건」이다. 약간 섬뜩한 것, 추리소설 류를 좋아한단다.
‘무’는 이게 뭐야?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를 갖고 왔다. 와우~ 살면서 유토피아라는 가상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책으로는 읽지 못해서 읽고 싶었단다. 그래, 그래 파이팅이다!
‘허’는 「맛 없으면 신고하세요」라는 요리법 책이다. 하하하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결혼을 한다면,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라 준비하려고 샀단다. 서점에서 그 책을 갖고 와서 사도 되느냐고 묻길래, 원하면 하라고 했다.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목사님께 음식 만들어서 대접하겠다고 한다. 기특한 놈. 마치고 나오면서 재료가 없으면 어떡하지, 라며 혼잣마러럼 걱정을 하니까 센터장님이 내가 재료 사줄게, 란다. 캬~
‘송’이는 강풀의 만화 「이웃 사람」을 샀다. 영화화 되었고, 마동탁이 주연을 맡았단다. 강풀 작가를 좋아한단다. 왜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땡긴단다. 내가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자꾸 물었더니 따뜻함이 맘에 든단다. 마, 나도 너가 맘에 든다. 하하하
4.
다음 주 과제는 자기가 산 책을 읽고 글쓰기이다.
방학이라 주중에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 데리고 영화 한 편 보고, 그리고 「허스토리」를 보고 글쓰고 김문숙관장님 뵈러 가야겠다.
들어가니 잘 생긴 녀석이 눈에 확 들어온다. 노랑색으로 염색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약간 귀염성이 있어 보이는 친구다. 17살이란다. 고정욱작가의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를 읽고 글을 썼는데, 제목이 “어머 우리 재석이가 사라져버렸네”다. 처음 쓰는 글이라는데, 한페이지를 빡빡하게 채웠다. 한 호흡이 길긴 해도, 전체 내용을 잘 요약했고, 자기만의 생각과 언어로 요약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첫 날이라 맨 마지막에 발표했다. 박수를 뜨겁게 쳐주었다.
2.
첫 번째는 ‘훈’이의 글이다. 「미움받을 용기」로 글을 썼다. 제목은 ‘선택의 용기’이다. 책 전체를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요약하더니 중요한 포인트를 탁 집어서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네 말대로 너는 많이 바뀌었고, 퇴소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바뀐 삶을 살렴. 속으로 살짝 기도한다.
다음은 ‘허’다. 재석이란 비슷한 덩치와 화끈한 성격의 친구다. 독후감으로 다음과 같은 멋진 문장을 남겼다. “이 나이 때엔 싸움 잘하면 권력 있고 잘 나가는 것처럼 어깨가 막 펴진다.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철이 들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먹이 때로는 지는 법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지금 이 시대엔 싸움이 아니라 머리, 또는 돈, 권력, 인맥이 최고인 것 같다.”
‘주먹이 때로는 지는 법’이라는 문장을 놓고 잠시 토론을 벌였다. 때로 지는 법이냐? 항상 지는 법이냐?
한 둘은 잠시 쪽에, 대다수는 항상이라고 했다. 그래, 그래. 주먹으로 문제 해결하지 마라. ‘우’의 말마따나 ‘말’로 대화하고 싸우고 이겨야지. 그치?
‘찬’이다. 조금 늦게 왔다. 문장은 깔끔하다. 요약의 맨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재석이는 점차 성실한 아이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건 자기 이야기다. 많이 변했다.
‘명’이는 아이들이 대개 빠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처음 부분을 디테일하게 요약하다가 나중에는 서둘러 마치거나, 일부분을 너무 부각시키고 다른 중요한 내용은 건너 띄곤 한다. 허나, ‘명’이는 전체 스토리 중 어느 일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골고루 포함시켰다. 느낀 점이 없어서 다소 아쉽지만, 요약을 잘 한 것만으로도 좋다, 좋아.
‘우’는 다음 주에 퇴소한다. 1년 정도 만났다. 키도 크고 잘 생겼다. 얼굴의 여드름도 많이 줄었다. 크면 모델하고 싶다는 녀석인데,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자신에게 와 닿았던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했고, 지금 보다 예전에는 훨씬 심했을 것 같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준’이다. 준이는 자서전 3번째 이야기를 썼다. 실은 저번에 썼던 글이 간략해서 서너 부분을 짚어주며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쓰라는 숙제를 내 주었다. 학교는 자주 빠지고 형들이랑 어울려 놀러 다니기는 했지만 그리 문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형들의 전화를 받고 가기 싫은 곳을 마지 못해 따라갔다가 자신도 폭력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제 딴에는 별 일 아니다 싶었는데, 맞은 아이가 코뼈가 부러진 것이다. 그래서 위탁에 갔다고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다. 후회와 반성의 말과 함께 최근에 노력하고 있단다. 주변 아이들도 맞장구쳐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형들을 안 만나고 학교도 잘 다녔다면 내가 어떤 생활을 했을지 궁금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땠을까, 라고 물었더니, 공부는 잘 못해도 그냥 평범하게 학교 다니며 놀았을 거란다. 이런 데 안 오고 말이다.
3.
‘훈’이는 1년 1개월을 여기에 있었다. ‘우’도 비슷하다. 둘 다 정든 친구다. 다음 주 월요일 경에 퇴소란다. 가슴이 괜히 시큰하다. 마지막에 기념으로 사진 찍고, 안아주었다. “잘 살아라, 여기 다시 오지 마라, 그리고 꼭 보자, 밥 살게.” 내 레퍼토리다.
퇴소 소감을 글로 쓰라고 했다. ‘훈’이가 쓴 것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목사님을 만나서 평생 읽지도 않은 책을 읽게 되었고, 책을 통해 많은 지식을 쌓게 되었습니다.”
‘우’는 “1년 동안 함께 목사님을 만나며 값진 배움을 하였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 뵐게용.”
그래, 내가 더 즐거웠고 고마웠지. 읽은 것이 그 사람이라고 한단다. 읽은 대로, 글쓴 대로 잘 살아라. 벌써 보고 싶다. 잘 가렴^^
4.
마치고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를 맛나게 먹고 두 녀석과 기념 사진 찍고 돌아왔다. 이따금 사진 보며 너희 생각하고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