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9일 성탄절 후 일곱째 주일예배
성경: 빌3:4-11절(신321)
제목: 바울의 간증(복음적 세계관)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의 간증을 들으면, 주로 무슨 내용을 들어왔나요?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자신에게 일어났던 신비한 경험들의 간증을 들어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나’라는 일인칭을 사용하여 간증을 하는데, 자신에게만 일어났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일반적 경험을 간증합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과 후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생각의 변화(회심)’를 상업적인 용어인 ‘유익(이익)’과 ‘해(손실)’의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손익계산서의 ‘대차대조표’, 또는 ‘양팔 저울’의 비유를 사용하여 간증합니다. 그가 소유하게 된 ‘그리스도’를 현금을 주고 받은 ‘실물 거래’의 관점에서 그 자신에게 일어난 ‘가치의 변화(복음적 세계관)’을 간증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인 바울의 간증을 통하여 그리스도(복음)를 통한 우리의 생각의 변화(회심, 복음적 세계관)를 점검하여 확증하기를 원합니다.
1.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전의 자신을 먼저 소개합니다(4-6).
4절입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그러나’로 번역된 ‘카이페르’는 ‘비록 ~ 일지라도’라는 뜻의 접속사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는 분사구문으로 “그런데도 나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육체에 의하면 누구보다 ‘더욱 그러하다’고 단언하면서 신뢰(자랑)할 수 있는 육체의 조건들을 열거합니다(5-6).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먼저 개종하여 할례를 받은 이방인과 달리 ‘팔일 만에 할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족속’, 이스라엘 중에서 존경을 받은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부모에게 태어나 히브리어 언어(전통)를 사용하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그의 선천적인 조건들입니다.
이제 그의 개인적 선택과 노력의 결과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 유대교의 관점에서 교회를 박해하는 일이 하나님(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생각하였던 ‘열심으로는 교회의 박해’, 젊은 부자 관원(눅18:21)과 같이 율법의 외면적인 규례를 완벽하게 준수하여왔다는 의미에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어떤 율법주의자들 보다 더욱 신뢰(자랑)할 수 있는 그의 자랑스러운 육체의 조건들을 먼저 소개하였습니다.
2.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자신의 가치의 변화(회심)를 간증합니다(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때문에)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여기서 ‘그리스도를 위하여’(7)와 ‘그를 위하여’(8)는 ‘전치사 구(디아+목적격)’이기에 ‘그리스도 때문에’로 번역되어야 하며, ‘여긴다(헤구마이)’는 ‘생각하다, 숙고하다’라는 의미로서 신중한 판단과 숙고함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그에게 일어난 가치의 변화를 세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내게 유익하던 무엇이든지’(7), ‘모든 것’(8a, 8b)과 ‘그리스도 때문에’(7, 8b), ‘내 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의 가장 고상함 때문에’(8a)와 ‘해’(7, 8a), ‘잃어버리고(손실) 배설물’(8b)과 현재완료형의 ‘여겨 왔다’(7), 현재형의 ‘여긴다’(8a, 8b)가 각각 세 번 반복됩니다.
첫째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 여겨 왔을뿐더러”(7)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바울이 과거에 자신에게 ‘유익(이익)하던 것들(복수형)’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해(손실)’로 여겨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과거에 유익한 것들(5-6), 특히 ‘율법의 (외적) 의로는 흠이 없는 것’이 현재도 좋은 것임에도 포기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고 보니 과거의 그것들이 다 자신에게 ‘해(손실)’이었기에, ‘해’로 생각하여 왔다, 즉 과거의 유익한 것이 아닌 자신에게 과거의 ‘해(손실)’를 ‘해(손실)’로 여기 왔다는 것입니다.
눅18:24-2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성도 여러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8a)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7절의 ‘내게 유익한 것들’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 확대하며, ‘여긴다(헤구마이)’(8a, 8b)는 7절의 ‘여겨 왔다’의 현재 완료와 달리 과거와 같이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생각한다는 ‘격언적 현재’이며, 7절의 ‘그리스도 때문에’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의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로 더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의 가장 고상함’(8)에서 ‘내 주’와 ‘그리스도 예수’는 동격이기에 ‘지식(그노시스)’은 체험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가 어떻게 바울의 주가 되었을까요?
바울(우리)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 즉 그의 복음을 통하여입니다(2:6-11).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복음의 지식(진리)이 가장 고상하기, 즉 가장 가치가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해(손실)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과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셋째는 “내가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8b)입니다. 여기서도 그리스도 때문에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손해보았고(에제이오덴)’, 심지어 ‘배설물’로 계속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고 그것들이 배설물로 생각하기에 오히려 아주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8b)이 진리라면, 진실로 우리 인생을 배설물에 건설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3. 바울은 그의 가치 변화의 목적이나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8c-11).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여기서도 바울은 그의 가치 변화(회심)의 주제를 계속합니다. 7-8절에서 일어난 사실을 주로 말하였지만, 여기서는 그것, 또는 복음의 목적(결과)을 설명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8c-9a)입니다.
이것은 목적(결과)을 의미하는 ‘히나’ 가정법 구문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얻어 소유하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 즉 ‘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리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목적이요, 결과(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8c-9)은 ‘이신칭의’의 결과입니다(9b).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여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은 방법(수단)의 전치사인 ‘다아’+‘소유격(믿음)’이기에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입니다.
이것(9b)은 현재 분사구문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을 설명합니다. 즉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가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이신칭의’는 단지 하나님의 법적(언약적)인 칭의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을 결과하는 것입니다.
고전1:30절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둘째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들)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9b-10a)입니다. 여기 ‘알고자 하여(투 그노나이)’는 목적의 부정과거 부정사로서 ‘경험을 통하여 알기 위하여’입니다.
바울이 알려고 하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그의 역사적이나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 지식입니다.
그러기에 그 다음은 ‘그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들의 참여함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동전의 양면과같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들의 참여함’이 하나의 ‘정관사(텐)’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과 그의 고난들의 참여함을 아는 것은 각각 다른 체험적인 지식이 아니라 동일한 체험의 지식의 다른 측면입니다.
여기서 ‘참여함(코이노니안)’은 ‘공동 소유와 나눔’을 의미하는 ‘성도의 교제(사귐)’을 의미합니다(요일1:3).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그의 부활의 능력과 그의 고난들의 참여함으로 알고자 하는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적으로(롬5:12-18) 죄와 세상과 율법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롬6:2, 갈2:19, 6:14), 하나님에 대하여(갈2:19-20) 부활하였다는 의미를 경험을 통하여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롬6:4-11).
롬6:4절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와 같이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10a)은 우리의 현재 부활, 즉 새 생명을 경험을 통하여 아는 것입니다(갈1;19).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믿음으로 항상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10b-11). 여기서 분사구문인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11a)에서 ‘그의 죽으심’은 은 ‘그의 고난들’(10a)을 가리키어 ‘본받아(쉼모르피제스타이)’는 현재 분사로서 ‘그의 고난에 참예함’(10a)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죽음과 부활을 그와 함께 소유하며 나눈다(교제 또는 사귐)는 것입니다.
롬6:5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러나 가정법 구문인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11b)는 바울의 현재 부활(새 생명)의 경험(10a)이 아니라 그의 미래 부활의 소망을 의미합니다(고전15:42-44, 계20:4-15).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바울의 간증, 즉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가 그에게 일으킨 그의 생각의 변화(회심, 복음적 세계관)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구원 능력입니다. 즉 복음과 성령님을 통하여 그의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양팔 저울과 같이 우리의 오른손 위에 그리스도를 올려놓으시고, 우리의 왼손 위에 세상의 모든 것을 올려놓으시면, 어떠할까요? 바울의 것과 같다면,우리의 회심은 진정한 것이며,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알고 진실로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