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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8일 수목원 가는 길 / 역방향 (단오공원 - 성산)... (09:45)
단오공원 端午公園
세계 무형 유산 걸작 단오제의 상징 공간으로 조성한 시민 공원.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되면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무형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에 강릉시는 단오제의 세계 무형 유산 걸작의 상징성을 담아내고
평소에는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녹지 공원으로,
단오제기간 중에는 축제, 휴게, 놀이, 문화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단오 문화관 앞 구(舊) 노암 공설 운동장 공터를 단오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총 8,290㎡ 부지에 잔디 광장 3,300㎡, 도심 숲, 벤치와 쉼터, 산책로, 이벤트 광장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강릉의 대표 수종인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
20여 종의 교목과 관목을 심어 자연 생태 학습장을 조성하였다.
단오공원은 단오제의 주요 행사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평소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 선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수시로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국장님 아니 이사님 Opening 인사 및 구간지기 소개... (09:58)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江陵端午祭傳授敎育觀)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 하나인 강릉 단오제를
전수하고 공연하기 위한 교육 시설 겸 문화 예술 시설이다.
강릉 단오제를 위해 강릉시에서 건립하여 운영 중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공연동과 교육관 등의 시설로 구성된다.
2004년 2월 19일: 강릉단오문화관 개관
2017년 7월 4일: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으로 명칭 변경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은 강릉 단오제에 관련된 공연이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지역 행사와 뮤지컬 등도 활발하게 개최된다
15 구간지기 스카이블루님 & assistant 칭런님
수목원 가는 길...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러 힘차게 출발한다...(10:07)
남대천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마루금은 다가오는 봄을 아직 배척(排斥)하고...
신복사지 도착...(10:26)
江陵神福寺址
강원도 강릉시 범일로 664번 길 22(내곡동 403-2번지) 일원의
나지막한 구릉 산기슭에 있는 고려시대 신복사의 절터이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관찬사서 및 불교 사찰 관련 문헌에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창건 역사 및 폐사 시기 등 그 내력을 살필 수 없다.
다만 강릉읍지인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1933)에 신라 문성왕 때
명주 사굴산문(闍堀山門)을 개창한 범일선사(梵日禪師, 810~889)가
굴산사와 함께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신복사지는 오래전에 절 이름이 '심복사(尋福寺)' 또는 '신복사(神伏寺)'로 알려져 왔으나
일제강점기인 1936년과 1937년 '신복(神福)'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명문기와편이 발견되어 '신복사(神福寺)'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고려시대 전기의 뛰어난 석조미술품으로 평가되는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제87호]이 남아 있다.
신복사지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1989년 강릉시에서 국가지정 석조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한
주변 보호책 및 배수시설 설치를 위한 터파기 공사를 시행하던 중
건물지 유구 일부와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1990년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부분적인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강릉신복사지는 지금까지 두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금당지와 동회랑지, 서회랑지가 배치된 고려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1탑1금당 병렬식의 가람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신복사지는 9세기 무렵 범일의 창건설과 관련,
출토유물 양상으로 볼때 창건시기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고려시대 초기 10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며,
폐사시기는 나말여초까지 법맥을 이어오다 조선 중기 무렵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절터에서 몇 점의 '神福寺' 명문기와가 출토됨으로써 사찰명은 신복사로 정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따라서 강릉신복사지는 강릉굴산사지, 한송사지, 오대산 월정사 등과 더불어
오대산 불교문화권의 불교사상과 문화의 수용과 전개, 변천 과정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사굴산문의 전개양상과 위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 중의 하나이다.
신복사지 석불좌상, 삼층석탑 사이...
저 뒤에 손 두 개는 누구?
추억의 수학여행 단체 사진...
샘물교회 앞에서 잠시 휴식...(10:51)
남매님
올만에 선유심님 모습도 보인다
허브, 나그네님 부부
눈의 무게에 못 이겨 휘어진 대나무 숲을 지나간다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봄...
“봄이 오면 티파사에는 신들이 강림해서 수런거린다.
태양과 향쑥 내음 속에서, 은빛 갑옷을 두른 바다에서, 천연의 푸른 하늘에서.”
알베르 카뮈의 산문집 ‘결혼·여름’의 첫 문장이다.
실존주의 철학자에게도 봄은 이토록 찬란하다.
고즈넉한 장현 저수지 풍경
장현저수지 長峴貯水池
장현저수지(長峴貯水地)는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로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 있는데
저수지 주위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장현저수지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왕산면 도마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밑에서 흘러
구정리와 여찬리를 지나 온 물이다. 이 물은 저수지를 지나 신석동, 월호평동으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현저수지는 관개 개선과 지목 변환 목적으로 1941년 11월에 착공하여 1947년 9월에 완공하였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제방이 40m가량 붕괴되어 돌과 흙으로 다시 쌓았다.
2002년 12월 모두 71억 1400만 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저수지 복구공사가 시작됐고,
2004년 12월 지금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둑을 쌓은 형식은 필댐[죤형]이며, 제방 길이는 206, 제방 높이는 16.06, 저수지 체적은 15만 9347㎥이다.
장현저수지의 총저수량은 219만 7100㎥이며, 유역 면적은 1,152ha, 관개 면적은 406.4ha,
홍수 면적은 48.8ha, 만수 면적은 43.6ha이다.
여찬리에 들어서서...(11:30)
구정면사무소 앞에서 각자 흩어져 식사 후.. 수목원에서 오후 1:30분에 모이기로 한다....(11:35)
여찬리(余贊里)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하는 행정리.
예전에 개오동나무가 많이 있어서 봉황이 날아와 놀았다 하여 봉양리(鳳陽里)라고 하다가 여찬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여찬리는 원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1916년에 말밋골, 새끼미,
남이리면의 장현리 일부를 합하여 하구정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에 하구정면이 구정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55년 9월 1일에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에 통합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여찬리 가운데로는 구정천이 장현 저수지로 흘러들어 가고, 남쪽에는 산 능선이 지나면서 동쪽으로 넓은 들을 끼고 있다.
여찬리의 남쪽에는 왕고개가 있고, 안쪽에는 구정리가 있다.
아래쪽에는 장현 저수지가 있고 북쪽에는 자주아리들이 펼쳐진다.
구정면사무소, 농협 지소, 구정 파출소, 우체국 등의 관공서가 모여 있는 면 소재지이다.
2015년 7월에 개관한 엄마꿈박물관[마마세계저울박물관]이 있다.
엄마 꿈 박물관은 저울과 저울에 대한 자료 4,0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대한민국에 유일의 저울박물관이다.
그 밖에 조선시대 도자기류 등도 소장하고 있다. 2017년 마을 농산물판매장이 준공되었다.
마을 내에 원주-강릉 간 복선전철이 지나간다.
매년 설날 마을회관에서 청년회 등의 주관으로 합동 도배식을 열고 있다.
봉양촌 鳳陽村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여찬리에 있는 자연 마을.
봉양촌은 봉황이 개오동나무에 튼 둥지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새끼를 키우며 울었다고 하는 ‘봉명조양(鳳鳴朝陽)’의 글귀에서 따온 이름이다.
[자연환경]
봉양촌 가운데로는 구정천이 흐르는데, 예전에 구정천 주변에는 개오동나무가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마을 북쪽에는 자조아리의 넓은 들이 펼쳐지고, 남쪽에는 왕고개가, 동쪽에는 장현저수지가, 서쪽에는 구정리가 있다.
마을은 구정 8경 가운데 하나인 ‘봉양오월(鳳陽梧月)’에 해당된다.
[위치와 교통]
구정천을 따라 서쪽으로 들어가면 구정리가 되고, 구정천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장현저수지가 된다.
남쪽에 있는 왕고개를 넘으면 학산리가 되고, 북쪽으로 가면 내곡동 자조아리가 된다.
매식(買食)할 돈이 없어 야외에서 그냥 대충 먹고 있는 노숙자들...
저쪽은 장칼국수를 만들어 먹는 중...(좀 사는 노숙자들이다)
식사 후 수목원으로...(12:52)
마지막 겨울 풍경이지 싶다...
수목원 입구...(13:10)
江陵─香樹木園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 소재한 공립수목원.
강릉시에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을 자랑하는 칠성산 자락에 있는 금강소나무 원시림을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며 숲과 하나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강릉솔향수목원을 설립하였다.
강릉솔향수목원이 조성된 지역은 예로부터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명명된 용소골인데,
이곳은 천연 숲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자랑하는 곳이다.
규모는 약 78만 5000㎡이며 1,127종 22만 본의 식물로 조성되어 있다.
특히 ‘천년숲속 만남의 장’이라는 주제로 대표 수종인 금강소나무를 잘 가꾸고 있다.
2006년 8월에 강릉시에서 수목원조성 대상지를 선정하고 계획을 수립하였다.
2007년 2월에 강원도의 현지 실사를 거쳐 2007년 5월 29일에
수목원 조성 사전타당성 심사에서 산림청의 승인이 이루어졌다.
2008년 6월 9일 강원도고시 제2008-137호에 따라 수목원조성계획이 승인을 받았다.
2008년 9월 29일에 사업 착공이 시작되었으며, 2011년 11월 30일에 사업 준공이 이루어졌다.
2011년 12월 1일에 임시 개장을 하였으며, 2013년 10월 30일에 정식 개원을 하였다.
강릉솔향수목원은 입구에서부터 물소리, 꽃향기, 솔향기 등을 접할 수 있다.
관목원, 난대식물원, 비비추원, 사계정원, 수국원, 암석원, 약용식물원, 염료식물원, 원추리원,
창포원, 천년 숨결 치유의 길, 철쭉원, 하늘정원 등 23개의 다양한 주제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강나무와 때죽나무 군락으로 조성된 숲 생태 관찰로, 천년의 기다림이 있는 천년 숨결 치유의 길,
금강소나무를 품고 있는 솔숲광장, 다양한 야생화를 주제로 한 비비추원 · 원추리원 ·
약용식물원 · 염료식물원 등의 전시원을 갖추고 있다.
또한 하이데크를 조성하여 수목의 하층부, 중층부, 상층부의 나뭇잎 ·
나뭇가지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숲길 생태관찰로는 휠체어, 유모차 등이 접근하기 쉽게 경사로를 10% 내로 조성하였다.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독립기초를 이용하였고,
현장의 채취석과 바위 등을 사용하여 친환경적으로 조성하였다.
또 시민과 방문객을 위한 숲체험 학습과 산림욕을 제공하고 있다.
'꽃길만 걷자'.... 걷자... 걷자...
그러고 보니 나도 명색이 걷자인데... 오늘 눈길과 진흙탕만 걸었다
눈싸움 준비 중...(눈을 자그마치 15개? 나 뭉쳐 놓고 먹이를 기다린다)
낭만주객과 수정님에게 공격... 잽싸게 반격하는 수정님...
15개를 계속해서 던지니 당황하는 낭만주객... 테라 승!
수목원을 지나 본격적으로 눈 길을 걷기 시작한다...(13:46)
눈이 쌓여 있을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쌓여 있었다.
러셀을 하다 보니 깊은 곳은 무릎까지 빠졌다.
씩씩하게 앞에서 걸어오는 블루님...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의자를 펴고 주저앉은 이상한 아자씨...
앉아 있는 아자씨에게 눈 속에 돌멩이를 넣어 던지는 살벌한 블루님...
눈 속에 주저앉아 잠시 동심(童心)으로...
봄을 기다리는 나무...
하루하루가 멀다 하고...
그 하루가 까마득히 더 멀 때가 있다.
봄을 기다리는 계절의 언저리...
아마도 요즘 같을 때가 아닐까 싶다.
백설기를 잘라 놓은 듯... 눈을 치운 도로와 그냥 눈으로 덮여 있는 높이의 차이...
좌망두골로 내려서면서...(14:17)
좌망 (坐望)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에 있는 자연 마을.
좌망두(坐望洞)는 마을의 생김새가 마치 토끼가 동쪽에서 떠오른 달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또, 자망두(自望洞)라고도 하는데, 이는 스스로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마을이란 뜻이나,
좌망두와 자망두의 발음이 비슷하여 생긴 이름이다.
좌망두는 새재(산북리와 왕산면 도마리 새재마을 사이에 있는 고개)에서 내려온 줄기와
칠봉산(산북리와 구정면 제비리 사이에 있는 산) 줄기 사이에 있다.
좌망두에서 버들고개(산북리와 구정면 제비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넘으면 제비리가 되고,
새재를 넘으면 왕산면 도마리 새재마을이 되고, 내를 따라 내려가면 성산면 구산리가 된다.
좌망두는 칠봉산과 새재에서 내려온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다.
선화님 보리밭 사이를 지나간다...
허브님
새치미님
미수기님과 복자매님
테라씨와 지영씨...
테라씨의 눈 던지는 투구 폼을 보라.... 사람 하나 잡겠다 싶다...
산북리(山北里)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하는 행정리.
성산면 면소재지인 구산리와 접해 있으며 구정면·왕산면의 경계 지역에 있다.
동쪽으로는 구정면 제비리, 서쪽으로는 오봉리, 남쪽으로는 왕산면 도마리, 북쪽으로는 구산리와 접해 있다.
강릉 시내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35번 국도와 인접해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산북리’라는 명칭은 칠봉산 서남쪽 낙맥과 새재[왕산면 도마리와 경계] 북쪽 낙맥에 있어서,
새재 북쪽 낙맥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산뒤’가 변해 ‘산두’가 되고, 이것을 한자로 ‘산북(山北)’이라 쓴 데서 유래하였다.
원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1916년 나맬, 버당말[坪村], 자포골[自飽洞],
좌망두(坐望頭)를 합하여 산북리라 하고 하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7년 면제 개혁 때 상구정면이 왕산면으로, 하구정면이 구정면으로 개편될 때 구정면에 속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명주군 구정면으로 개편되었다.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1983년 1월 10일 공포]로 명주군 구정면 산북리는 성산면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명주군은 강릉시에 통합되었다.
주로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 경관이 수려하며, 전원생활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산북리에는 좌망동, 음짓말, 양짓말, 자포동이 있는데, 음짓말에는 경모재가 있고, 그 뒤 산줄기에 함헌의 묘가 있다.
경모재는 칠봉(七峯) 함헌(咸軒)을 제향하기 위한 재사(齋舍)로
강릉함씨 칠봉댁(七峰宅) 종중에서는 매년 음력 9월 묘소와 재사에서 제향한다.
음짓말과 양짓말 입구에 서낭당이 있고, 그 옆에 갓바위가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졌다.
서낭당은 당집은 없고, 서낭목 주위에 돌담을 쌓아 제단을 마련하였다.
성황지신·토지지신·여역지신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 초정일에 고청제를 지낸다.
음짓말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좌망두가 있고, 좌망두를 지나 골로 들어가면 약물골이 있다.
강릉시 식수원인 오봉저수지가 있고, 귀농·귀촌 인구 유치를 위해 부지 약 2만6,704㎡ 면적의 전원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눈과 한 몸이 된 새치미님
옆에 누운 선화님
만화에서 코난이 달리 다 벽에 박혀 버리 듯... 헉~ 이 분들은 공중에서 떨어져 눈에 박혀 버렸다...
오봉댐 밑을 지나간다...(15:32)
강릉댐(오봉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는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조성된 저수지.
현 한국 농촌 공사인 구 한국 농업 기반 공사에서 조성한
농업용수 개발 사업의 저수지로서 구 명주군 성산면에 있었으나,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된 시설이다.
영동 고속국도가 1975년에 개통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식량 증산과 관련한 사업이 영동 지역에서도 펼쳐지게 되었다.
당시 한국 농업 기반 공사가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오봉 저수지를 건설케 된 것은,
지역적 특성 때문인데 영동 지역은 대관령을 중심으로 하는 높은 태백산맥이 동편에 있어,
산에서 바다까지의 수로가 짧고 기울기가 급한 편이다.
이러한 자연 조건으로 강수된 물이 바다로 빠르게 빠져나가
관내에 농업용 용수가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공급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큰물을 저수하기 위한 사업이 추진케 되었다.
착공은 1977년 8월 25일이었으며, 6년간의 공사 끝에 1983년 10월 30일에 준공되었다.
건설 당시 구 명주군 성산면 오봉리에 있어 오봉 저수지로 불렸으며,
1995년 강릉시에 통합되면서 강릉댐이라 불리고 있다.
준공 이후 가뭄 때에는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었고,
홍수 때에는 물을 가두어 하류 지역의 피해를 막아 주었다.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는 하루 877㎜의 폭우를 쏟아 부었으며,
이로 인하여 장현 저수지와 동막 저수지가 붕괴되었다.
무려 1,400만 톤의 물을 저장한 강릉댐도 50m 높이의 제방을 겨우 20㎝를 남긴 지점까지 물이 차올라
많은 시민들이 대피하는 상황까지 갔으나 다행히 비가 그쳐 붕괴의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이후 강릉댐의 안전 보강을 논의하면서 둑을 높이고 수문을 늘리는 보강 공사를 하였다.
관리 기관은 한국 농어촌 공사이다. 록필댐으로 지어졌으며,
다른 댐과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으나 홍수 조절 기능이 없는 상태이다.
농업용 용수를 빼기 위한 방수로와 상수용 취수를 위한 시설이 있다.
유역 면적 10,900㎡, 준공 면적 480㎡, 유로 연장 10㎞, 제정 폭 5m, 제당 높이 50.63m, 길이 271m,
표고 121m, 총저수량 14,453,000톤, 방수로 230m, 방수로 바닥 평균 폭 32m이다.
태백이나 정선에서 임계를 지나 강릉시로 들어오는 35번 국도로 성산에 다 이르러
왕산 대기리로 갈라지는 지역에 있으며, 구 영동 고속국도 대관령 구간 시작 지점에서 좌측 골짜기에 있다.
오봉 서원을 당겨본다...
오봉서원五峰書院
공자(孔子), 주자(朱子), 송시열(宋時烈)과 함헌(咸軒)을 제향하는 서원.
1777년(정조 1)에 어촌 심언광의 후손인 심상현(沈尙顯)이 어촌이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주자의 영정을 계기로 하남영당을 중건하고 서원을 창건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인(士人) 김형진(金衡鎭)은 그 영정(影幀)이 진상(眞像)이 아니라고 하면서
명륜당에서 재회(齋會)를 열어 반대한 후 권학준(權漢準), 김미(金侎), 박한소(朴漢紹)를
경원장(京院長)에게 보내어 그 진위를 판명케 하였다.
그 때의 경원장은 송덕상(宋德相)이었고 향원장(鄕院長)은 이택징(李澤徵)이었다.
그 뒤에 태학에서 충주 운곡(雲谷)에 소장된 주부자의 영정을 하남재(河南齋)에 옮겨 오니
이 때 김형진은 단독으로 상소를 올렸다.
도백(道伯) 김희(金熹)가 강릉부사 이진규(李晋圭), 춘천부사(春川府使) 이방영(李邦榮),
간성군수(杆城郡守) 조한진(趙漢鎭)을 조사관으로 파견하여 조사한 결과 진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조령(朝令)에 의하여 영당은 훼철되었고, 주자의 영정은 오봉서원에 옮겨지게 되었다.
한편 1806년(순조 6)에 송시열의 서원배향이 논의되다가 당시 당론에 합당하지 않는다 하여 거절되었다.
그러나 순조 13년 권한룡(權漢龍)이 연천(漣川) 임장서원(臨漳書院)의 예를 제시하며 송시열의 위패를 오봉서원에 봉안했다.
이에 김학두(金學斗), 조석헌(曺錫憲) 등 팔유생(八儒生)들이 적극 반대하였다.
반대 유생들은 구류나 귀향의 조처가 처해졌으며, 지역 노론계의 의지대로 우암 송시열의 추배는 실현되었다.
[건립경위]
오봉서원은 칠봉(七峰) 함헌(咸軒)이 1552년 중국 남경(南京)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공자의 영정과 행단도(杏亶圖) 1폭을 가지고 돌아와
1556년(명종 11) 향촌 사림인 최운우(崔雲遇) 등과 협의하고
당시 강릉부사 홍춘년(洪春年)과 강원도관찰사 윤인서(尹仁恕)에게 건의하여 세운 서원이다.
[명칭유래]
오봉서원은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 지명이 중국 구산 즉 공자가 살았다는 곳과 같다 하여 이곳에 서원을 짓게 되었다 한다.
[변천]
1556년(명종 11)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건립되어 1782년(정조 6)에는 주자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1831년(순조 32)에는 우암 송시열의 영정도 함께 봉안하였다.
1882년(고종 19)에 칠봉 함헌의 공을 기리고 칠봉사를 재건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 이후인 1882년(고종 19)에 서원 곁에 칠봉사라는 사우를 짓고 칠봉 함헌을 모셨는데,
이 경우는 서원훼철 후 향중사림의 공론으로 지어졌다기 보다는
오봉서원 건립을 주도했던 함헌의 후손들에 의해 추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오봉서원의 경우 배향인물의 추이에 의하면 초기에는 향중 공론에 의해 유지되었으나
서원 훼철령 이후에는 공론화된 서원으로서의 면모는 상실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함헌의 후손들이 주도하면서 지역 사림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나
그 성격이 교학적 기능을 우선시 했던 예전의 기능에서 벗어나 성현과 선조에 대한 향사만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1902년 오봉서원에 설단(設壇)을 설치하고 매년 가을 상정일(上丁日)에 다례를 행하였고,
1914년에는 집성사를 중건하였으며, 1916년 석단과 문장을 다시 짓고 묘정비를 중건하였다.
1928년 집성사 우측에 칠봉사를 중건하고 우측 담장 옆에 강당도 건립하였다.
오봉서원은 강원도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졌으며, 강릉 지역 사림들의 발의와 지방장관들의 협조로 건립되어졌다.
그리고 비사액 서원임에도 불구하고 숙종 7년(1681)에 위토 3결과 모속인 20명을
국가로부터 하사받아 사액서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수로(水路)를 따라 걸어간다
성산 중심지가 내려다 보인다
성산면 (城山面)
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법정면.
강릉시의 중서부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구정면, 서쪽으로는 평창군 대관령면,
남쪽으로는 왕산면, 북쪽으로는 사천면과 접해 있다.
고속도로와 국도가 통과하고 대관령이 있는 강릉시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지이다.
보현산성이 있어서 ‘성산’이라 하였다.
성산면은 1894년 행정 구역으로 획정되었으며, 1895년 23부제 실시에 따라 강릉부에 편입되었고,
1896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강원도 강릉군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본래 강릉군 지역으로 건금, 위촌, 구산, 송암, 관음, 서원, 제민원의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에 송암, 위촌, 구산, 금산, 오봉, 관음, 어흘, 보광의 8개 리를 개편 관할하였다.
1955년 9월 1일에는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됨에 따라 명주군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 읍면 행정 구역 조정에 따라 구정면 산북리가 성산면에 편입되어 현재 9개의 리로 이루어져 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에 따라 강릉시에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산면의 서쪽에는 대관령의 험준한 산이 남북으로 뻗어 영서 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관령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골을 이루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대관령 옛길은 2010년 11월 15일 역사성과 경관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가 명승 제74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는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대관령자연휴양림이 위치하고 있어 연중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한편 영동 지역 최초의 치유의 숲인 ‘대관령 치유의 숲’이
2016년 8월 19일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산림 일원에 조성되어 개장되었다.
강릉시의 상수원인 오봉저수지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
저수지를 가기 직전 성산초등학교 앞 도로 좌우의 성산면 먹자골목은 대구머리찜 맛집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성산면 지역의 대관령에서 동북쪽으로 뻗어 내린 성산주령에는
예로부터 명당자리가 많아 보광리, 송암리, 위촌리에 묘가 많이 있다.
따라서 성산주령에 묏자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그 집안 가문의 세를 측정했다고 한다.
관내에는 보현사, 오봉 서원, 보광리 석조 여래상, 관음리 오층 석탑, 대관령 국사 성황당, 대관령 박물관,
명주군왕릉, 대공산성, 명주산성, 임경당, 상임경당 등의 문화 유적과 명승지가 산재되어 있다.
마지막 휴식...(15:53)
실땅님.. 아니다 이젠 국땅님이다....
고독한 하이에나...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 좀 아는 그닥 반갑지는 않은 사람들...
성산 초등학교 앞에 도착해 오늘 발걸음을 마무리한다....(16:10)
수목원 길에 비도 눈도 안 내리고... 태양이 보였다.
이것은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일이었다.
바우님들 !
이제 겨울과 이별할 때입니다.
마지막 겨울 풍경과 함께 행복하셨습니까?
겨울 눈이 투명하게 춤추네 너무 평화로운 오후 초라한 얼굴로 나는 기다리고 있네 너는 얼은 발걸음을 멈추네 살을 파고드는 바람 차가운 소리로 난 시린 손을 흔들며 인사해 안녕 떠난다며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로 슬프게해 안녕 떠난다는 조용히 눈을감고 너를 보내줄게 겨울 눈이 투명하게 춤추네 너무 평화로운 오후 초라한 얼굴로 난 시린 눈을 감추며 이별해 안녕 떠난다며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로 슬프게 해 안녕 떠난다면 조용히 눈을 감아줄게 나를 너무 아프게 만드네 영원히 묻어 둘게 겨울위에 겨울, 이별 - 이소라 5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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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우 님 오늘수고많아서요ㅡ
영월님 이신가요?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겨울 풍경과 함께 행복하셨습니까?
*그 질문의 대답;눈길에서 빠져나오기가 싫었어요~
너무 너무 즐거워서요~^^
여느날보다 더 기다렸던 걷자님의 후기
러셀하고 사진 담으시고 더 분주하고 힘드셨을 걷자님
너무 너무 감사해요~
오래 오래 기억될 추억을
남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나,테라씨와 지영씨 사진은
너무 좋아요~^^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요즘의 계절..
있을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생각 보다 제법 쌓여 있던 눈...
겨울 이별과 함께 ...
눈 길을 일렬로 걸어 오는 바우님들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함께한 발 걸음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겨울 풍경과 함께 행복하셨습니까?
물어 보시나 마나
대답은 물론입니다 !!!
월매나 좋던지요,,,^^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진도 감사합니다~
걷자님 ^^👍💕🩷
허브님 가시는 앞 길에 눈을 깔아 놓느라 무쟈게 힘들었습니다.
행복하셨다니...그러셨다니 참 다행이지 싶습니다.
눈 속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
허브님의 색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한 해 15구간 정기걷기는 한 번도 맑은 날이 없었기에, 긴장하며 맞이한 올해 첫 15구간 정기걷기..
게다가 바우길 역사상 처음 거꾸로 걸어보는 15구간..
결과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하루였습니다. 눈내린 겨울의 모습도 몸소 느껴보았고..
이번에 함께 걸었던 많은 바우님들의 공통된 얘기.. 거꾸로 걷는 것이 훨씬 더 좋아요. 주변에 매식을 위한 맛집도 많고, 도시락팀을 위한 식사 장소도 좋았고..
앞으로 15구간은 가급적 단오문화관 출발, 성산면주민센타 도착하는 방향으로 걷자고 사무국에 건의해야겠어요. 여기도 걷자?
걷자님, 고스란히 추억 남겨주시어 정말 감사해요.
모르긴 해도 은근 하늘만 바라 보았을 칭런 구간 지기님....
하늘도 좋았고 눈 길도 좋았고....그리고, 역 방향도 좋았습니다.
2025년에는 수목원 길이 계속해서 꽃길만 돼 길...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아침에 칭런님과함께 오신 걷자님을 뵈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아무도 밟지않은 눈밭을 뛰어다니시며 러셀도 해주시고 멋진 사진들까지 좋은 추억을 담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바우님들과 함께한 마지막 겨울 걷기.
저역시 너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
구름님....주차장에서 깜짝 만남...저 역시 반가웠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번이 마지막 겨울 걷기가 아닐 듯 합니다
생쥐님 구간 점검 사진을 보니 안반데기를 걸어야 마지막 겨울 걷기 인 듯..
동해서 올라와 함께 하는 시간....수고하셨습니다.
올해는 눈 다운 눈을 못보고 겨울이 끝난 줄 알았는데
새하얀 눈밭을 걷고 눈 위에
털썩 누워도 보고.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소중한 하루를 기억할 수 있게
기록 남겨주신 걷자님, 고맙습니다~
눈 속에 확 떠밀어 주신 것도요~
새침스런 새치미님이 눈 속에 눕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어디서 저런 용감함이....^^
새치미님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눈 길을 걷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걷자님 글에서 배우고, 이소라 노래 감성 느끼고 가요.
흔히 쓰지 않는, "마루금"이란 낱말을 눈여겨 봤네요.
아름답지만 힘든 눈길을 러셀 해 주셔서 비교적 쉽게 지날 수 있었어요. 푹푹 빠지는 눈길에서는 후미가 더 좋더라는...
성산면사무소 건너편 눈길을 지루하게 걸으며 지쳐갈 때,
뒤따라 오던 바우님에게 훈수 두시는 걷자님 목소리 :
눈길에서는 발을 들어서 옮기지 말고, 신발로 눈을 치면서 그냥 나아가야 쉽다고. 눈 발자국 따라 다리를 번쩍 들어 옮기니까 더 힘들다고...
다들 아셨쥬?
눈 길을 걸으면서 문득. 이소라의 '겨울 이별' 이 생각났었습니다.
마루금이란 말은 산행 시 자주 사용합니다
안부, 능선, 마루금...비슷한 말 들입니다.
자유글 2313번에 제가 예전에 올렸던 '산행시 사용하는 용어' 글이 있습니다.
한번 찾아 읽어 보시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두 분이 함께 걸으시는 모습...참 보기 좋다는...^^
처음으로 가는
역방향 수목원 가는길..
우리가 몰랐던 강릉의 또다른 매력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어요.
오전에 도심을 벗어나
대나무숲길과 오후의 눈 쌓인
소나무 🌲 숲길을 걷는 여유
그래서 저는
강릉에 삽니다^~
앞 서고~ 뒤 서고 하면서
분주하게 걷는 블루님의 책임감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은근 강인한 모습의 블루님께 박수를...
눈 돌리면 자연이 눈 앞에...
그런 강릉이 좋아 저도 강릉에 살려고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저도 그래서 강릉에 왔고
강릉을 사랑하는 시민이 되었지요~^^
저는 강릉이 너무 좋아요~^^😍
@허~브 (강릉/운영자) 강릉시에서 강릉을 너무나 사랑하는
허브님 가정에 특별상을 주어야 하는데...^^
강릉수목원 가는길에
분명 봄은 왔지만
산 중턱에 남아있는 눈은
아직 떠나기 싫은 가 봅니다.
퍽퍽 빠지는 눈 길과 진흙길로
신발은 이미 양말까지
물이 스며 들었지만,
이 또한 바우길 걷기의
추억 속 한 장면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겠지요~
눈 길을 헤쳐가며 사진을 담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
절기로는 분명 봄이지만 우린 봄을 걸었는지....겨울을 걸었는지...
이런 계절에 눈 길을 걸을 때는 등산화가 정말 중요합니다.
대화는 없어도...
령관네와 함께 하는 발 걸음 보기만 하여도 언제나 즐겁습니다.
걸었던 길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들을 이렇게 잘 정리해 주시니 너무 좋네요~ 금산리가 고향이다 보니 이 구간에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저도 사진과 소감을 언제 한 번 털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득, 옛 추억을 소환해 주는 장소를 지나 갈 때....
그 기쁨과 아련함이란...
언제 사진과 소감을 털겠다는 말에 격하게 환영합니다.
(03:10 ...잠 못 이루는 지영씨...앞으로는 조금만 일찍 잠드시길...^^)
@걷자(서울/강릉) ㅎ 네~~^__^
봐도봐도 좋은사람들 좋은길 입니다. 그날도 역시나 멋진걷기에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앞에서 길까지 내어 주시느라 더 수고많으셨습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밀가 국땅님..
가는 겨울을 함께 한 발 걸음...
모두의 행복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