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빼앗아 간 두 가지 병 / 송덕희
아흔네 살 엄마는 흰 벽을 향해 누워있다. 시시때때로 도우미가 일으키고 앉힌다. 재료를 갈아서 만든 음식을 떠먹인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요양원 신세를 진 지 올해로 8년째다. 입원 초기에는 밤마다 현관 앞에서 문 열어 달라고 쭈그려 있었다. 신발을 들고 고향에 가겠다고 조르는 통에 애를 먹었다. 낯선 공간에 갇혀 지내는 생활은 형벌과 같다. 살이 빠지고 기억력도 날로 떨어지더니 급기야 자식을 몰라본다. 그나마 좋아하던 트로트 리듬과 가사는 가장 늦게 잊었다. 이제 돌아가실 일만 남은 엄마를 보면 가슴이 저리다.
우리네 어머니의 일생은 소설책 한 권도 부족하다는 말은 옳다. 지난한 삶을 어찌 다 쓸 수 있겠는가. 서른아홉 살,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다섯 남매를 키웠다. 뼈가 빠지도록 농사일하며 시골에 살았다. 50대 후반부터 우리 아이들을 돌보며 10년을 같이 지냈다.
그 무렵, 엄마에게 고치지 못할 큰 병이 찾아왔다. 당뇨였다. ‘아무 증상도 없이 찾아온 더러운 병’이라며 혀를 찼다. 새벽같이 일어나 소변에 거품이 일어나는 걸 살피고 기분 나빠했다. 당이 빠져서 달큼하다며 맛을 보기도 한다. 밖에서 많이 걷고 음식을 조심해도 집안 내력이라 못 고칠 거란다. 이모들이 그 병을 앓고 있다. 자포자기했다. 매일 꼬박꼬박 약을 먹는 일을 부담스러워했다.
또 하나의 고질병은 약장수들이 진을 친 판매장을 드나드는 것이다. 노인을 상대로 즐길 거리를 보여주고, 여러 종류의 물건과 약을 파는 곳이다. 거기만 가면 기운이 난다. 먹을 걸 주고 함께 놀아준다. 매장에 있는 흙 침대, 전기 안마기, 화장품, 주방용품 등을 마음껏 써 볼 수 있다. 젊은 남자들이 ‘우리 어머니, 참 곱네!' 하며 애교를 부리고 살뜰하게 보살핀다. 툴툴거리는 자식보다 낫다. 노인들 끼리끼리 말벗을 삼는다. 오락 시간에는 가수 주현미나 현철의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다.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엄마는 거의 매일 갔다. 화장지, 빨랫비누, 치약, 칫솔 등 질이 형편없는 물건을 받아 온다. 미끼상품인 줄 모르고 공짜라며 고마워한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직원들 눈치를 본다. 받기만 해서 미안하니까, 남들이 사니까 고가품을 하나둘 산다. 차차 백만 원, 이백만 원으로 씀씀이가 커진다. 새로 나온 초음파 치료기를 들인다. 녹용 진액과 알약을 보따리째 가져온다. 당뇨에 좋고, 두루두루 ‘만병통치약’이란 믿음이 확고하다. 효능이 있다던 안마기나 전기장판은 금방 고장 나서 못 쓴다. 약은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먹다가, 심드렁해서 쌓아둔다. 또 새로운 걸 사는 통에 용돈이 남아나지 않는다. ‘인증이 안된 건강 보조 식품이나 기기를 파는 사기꾼이다. 노인들 지갑을 열게 하는 상술을 부린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그 돈으로 좋은 음식이나 사 먹으면 좋으련만. ‘후줄근한 행색으로 그곳을 다니는 심리는 무얼까? 욕구불만을 그곳에서 채울까?’ 이해가 안 됐다. 끊임없이 말렸지만, 갈등만 빚을 뿐 고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이 다 크자 아들이 있는 경기도로 갔다. 그곳에도 약장수는 있다. 비싼 옥 매트와 모시로 만든 수의 등 갖가지를 사다 쟁였다. 여든다섯 살에 경찰서로부터 연락이 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엄마가 해거름에 등산로 입구로 걸어가는 걸 보고 누군가 신고를 했다. 그것도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당뇨 수치가 치솟아서 측정기로 잴 수 없다.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은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왜 그 지경이 되었는지 알아보니, 3개월간 당뇨 약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횡설수설한다. 집을 못 찾고 헤맸다. 섬망 증세가 온 거란다. 그제야 ‘나쁜 약장사 놈들이 사기를 쳤다.’고 한숨을 쉬었다. 별 효과 없는 당뇨 약은 끊고, 자기들이 권하는 대로 먹어야 낫는다고 했다. 제발 판매장에 가지 말라는 자식들 소리는 귓등으로 흘리더니, 그들이 홀린 말은 곧이곧대로 믿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았다, 후회한다.’고 가느다랗게 말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결국 엄마는 약장수에게 끊임없이 돈을 바치더니 건강까지 잃고 말았다. 억장이 무너졌다.
혈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도 몸은 급격하게 쇠약해졌다. 일어서고, 화장실 가는 일이 어렵다. 말도 어눌하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결국 요양원으로 갔다. 이후로 건강한 엄마를 다시 보지 못했다. 고생만 하다 말년에 호강도 못 하고 그걸로 끝이었다.
지난 추석에는 검은 머리가 몇 올 나고 볼에 살이 더 붙었다. 며칠 잘 드신 덕분이란다. 눈을 마주 보며 삭정이 같은 손을 잡는다. 살아있는 사람의 그것이라 말하기 어렵다. 휠체어에 앉히고 무릎에 담요를 덮어 주다, 무심코 다리를 보았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다. 피부는 양파 속껍질처럼 투명하고 얇다. 그 속으로 뼈만 보인다. 근육과 살은 다 빠졌다. 삭정이 같은 앙상한 몸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빨리 돌아가시는 게 좋겠다는 몹쓸 생각이 든다. 이렇게라도 살아 있어서 고맙다고 여기면서도.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첫댓글 어머니의 고생과 당뇨 그리고 요양원, 바라보는 선생님이 마음둘 곳 없겠네요.
위로합니다..
어르신들이 의지할 곳 없으니 그런 곳에 정붙이고 다닌다는 말 들었어요.
마음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