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주청의사랑방이야기
✿매화촌 이 진사
마누라 덕 부자 된 젓갈장수
마 서방
서당 짓고 훈장에 이 진사 모시는데 …
마 서방은 삼대째 새우젓장수다.
저잣거리에 있는 젓갈도매상에서 새우젓·멸치젓·황새기(황석어)젓·굴젓을 떼서 나무통에 담아 바소쿠리 대신 나무판자를 깔고 그 위에 젓갈통 네개를 가지런히 놓고 그 지게를 지고 산 넘고 강 건너 이 골짝 저 산골 마을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마 서방은 일자무식이다.
겨울·봄·여름 젓갈을 이집 저집 외상으로 깔아놓고 가을이 되면 젓갈값을 곡식으로 받는다.
마 서방은 치부책도 없지만 몇월 며칠 저녁나절 임 서방댁에 멸치젓 한 사발 외상으로 줬다는 걸 머릿속에 꿰고 있다.
너무나 정확해서 시빗거리가 없다.
그러나 매화촌은 달랐다.
매화촌이란 이름은 매화가 만발해서 매화촌이라 불리기보다는 선비가 많아서 매화촌이 되었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高潔)·지조(志操)·인고(忍苦)라 선비들은 저마다 마당에, 뒤뜰에 매화나무를 심어 자신이 매화인양 고결한 척했다.
하지만 새우젓 장수 마 서방의 눈에는 매화나무가 길섶 개똥밭의 가시나무로 보인다.
가을에 매화촌에만 들어가면 말다툼이다.
“진사어른, 정월 열 이튿날 저녁나절 멸치젓 두종지, 사월 이렛날 그날은 비가 왔지요.
새우젓 한사발, 유월 초닷새 황새기젓 반사발.”
염소 수염을 쓰다듬던 이 진사가 벼락고함을 치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친다.
“이 사람이 생사람을 잡네! 이 치부책을 봐! 황새기젓은 사 먹은 적이 없어!”
싸우다 싸우다 결국 마 서방이 지고 만다.
매화촌에서는 두집 건너 싸움이다.
‘이놈의 마을에는 두번 다시 들어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해를 넘긴 외상값이 하도 많이 깔려 있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그 마을에 가려면 도솔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그 고개에는 여섯해 전에 먼저 이승을 하직한 마누라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오가다 봉분에 누워 한숨 자고 나면 매화촌에서 싸웠던 분이 다 풀린다.
그날도 매화촌에서 이 진사와 싸우고 동구 밖 주막에서 탁배기를 마신 후 마누라 무덤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마누라가 나타났다.
벌떡 일어나 마누라가 가르쳐준 곰바위 뒤로 내려갔더니 새빨간 열매, 산삼밭이 나왔다
백년근 산삼 36뿌리를 팔아 부자가 된 마 서방은 집 앞 텃밭에 서당을 지었다.
까막눈이 한이 돼 너무 가난해서 서당에 못 가는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하겠다고 거금을 들여 번듯한 서당을 지었다.
열두칸 기와집 서당 상량식 하는 날 서당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다.
갓장수·방물장수·소금장수·건어물장수·채장수…. 외장꾼들도 모였다.
돼지 한마리, 닭 열마리를 잡자 외장꾼들이 돈을 모아 막걸리 한독을 걸렀다.
술이 오르자 매화촌 이 진사가 안주에 올랐다.
이 진사에게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갓장수는 이 진사가 하도 트집을 잡아 그 앞에서 갓을 찢어버렸고,
건어물장수는 간고등어 두손을 팔았는데 한손밖에 사지 않았다고 우겨 결국 지고 말았고, 독장수는 독값을 못 받았다.
이튿날 마 서방이 매화촌 이 진사를 찾아갔다.
“소문을 들었네.
서당을 그렇게 거창하게 지었다며?”
“아니어도 그 일로 왔습니다.
진사님을 훈장님으로 모시고 싶어서요.”
이 진사가 깜짝 놀라면서도 “내 연봉은 비싸네” 하자 마 서방이 “서당에 딸린 방이 있고요,
세끼 식사는 해드리고 연봉은 삼백냥이고요” 하고 대답했다.
이 진사가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훈장의 수입은 학동들의 들쭉날쭉 쌀 됫박으로 받는데 장에 내다 팔아봤자 백냥 안팎이다.
이 진사는 쾌히 수락하고 보따리 하나를 들고 서당으로 왔다.
“하늘천 따지 검을현…” 서당에서 울려 퍼지는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마 서방은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마 서방이 혼자 살 때는 대충 찾아 먹었지만 훈장님을 모셔 온 터라 곱상한 찬모를 데려다 놓았다.
어느 날 마 서방이 이 진사에게 “훈장님, 이 마을 저 마을 외상값을 수금하고 오겠습니다.
한 삼사일 걸릴 겁니다” 하자 “걱정 말고 다녀오게” 하며 안심시켰다.
마 서방이 찬모 홍천댁에게 “훈장님 밥상이 소홀하지 않도록 신경 쓰게나” 하고 당부했다.
나흘 만에 마 서방이 집으로 돌아왔더니 찬모가 눈을 찡긋하고 훈장님은 보이지 않았다.
동헌 앞마당에 구경꾼이 인산인해다.
엉덩이를 까발리고 형틀에 묶인 훈장님.
매화촌 이 진사는 곤장 단 세대를 맞더니 “사또 나으리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아이고 나 죽는다” 하고 소리쳤다.
동헌에 앉은 사또가 고함쳤다.
“매화촌 촌장과 이 진사 아들 내외는 보증을 서겠는가?”
“네∼” 세 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똥냄새가 진동했다.
찬모를 겁탈한 이 진사가 형틀에서 곤장 세대를 맞으며 똥오줌을 쌌기 때문이다.
구경꾼들이 코를 틀어막았다.
이 진사 아들로부터 오백냥을 받은 서당 찬모는 마 서방에게 큰절을 하고 서당아이들에게 지필묵 사주라고 백냥을 쾌척한 후 배를 타고 사라졌다.
서당 찬모는 이웃고을 주막 주위를 맴도는 들병이다.
마 서방과 갓장수 그리고 독장수의 합작음모에 이 진사가 똑바로 걸려들어 돈 잃고 망신살이 뻗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