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토요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295-373)
사도9,31-42 요한6,60ㄴ-69
우리를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시는 주님
-영이며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
새벽 독서의 기도, 다음 시편 구절이 은혜로웠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자비하심을, 중생에게 베푸신 그 기적들을
애타는 영혼을 흐뭇하게 하시고, 굶주린 영혼을 복으로 채우셨도다”-ㅊ
어제의 유쾌한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수녀원에서 고백성사드린후 원장수녀님과 이야기 나누는 도중 부원장 수녀님이 휴가 간다기에
잘 됐더 싶어 강복을 드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의 축복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요세파 수녀님과 가족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마침 차량봉사하신 두 분 수녀님께 드릴 선물이 없을까 생각하던중
기발한 축복 생각이 떠올라 강복을 드리니 흡사 제가 강복 받은 듯 참 뿌듯했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루카, 토비아 수녀님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며칠전 인상적인 기사를 영적으로 해석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코로나 환자 40%는 확진자가 증상 전 전파”기사를 읽는 순간,
“우리 수도자처럼 주님 축복의 확진자는 증상이 없어도 존재 자체로 알게 모르게
이웃에게 축복의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성 아타나시오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그 험난한 4세기 5차례의 유배중에 ‘주님의 용사勇士’로서 맹활약을 하며
78세 장수하신 모습을 통해 새삼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임을 실감합니다.
성인은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비롯하여 많은 성서 주석, 시편 주해등을 남겼고,
대 바실리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와 함께
동방의 4대 교부중 한분입니다.
특히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해 정통교리를 수호한 성인의 업적을 존 헨리 뉴만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거룩한 진리를 세상에 전해 온 사도들의 후예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도구였다.
참으로 아리우스 이단을 대항해 저술한 그의 뛰어난 저술과 연설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용기와 희망, 회개의 표지가 되는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성인들입니다.
성인의 이런 위대한 업적들은 결코 안일한 환경에서가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이뤄진 일임을 깨닫습니다. 부
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은 여전히 오늘도 베드로의 후계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통해서
또 우리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어제 노동자 성 요셉 기념미사를 봉헌하신 교황님의 강론 서두 말씀입니다.
“오늘 노동자들에게 봉헌된 날, 우리는 노동자 성 요셉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우리 모두 노동자들 모두에게 일이 주어지고 정당한 임금이 주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들 모두가 ‘노동의 존엄’과 ‘휴식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참 아름답고 감동적인 공감이 가는 강론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된 교황님의 삶임을 입증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은총의 부활시기에 우리 대한민국에도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허상이 드러난 서방 선진국들과 달리 방역 선진국으로 떠오른 한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총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뉴욕의 호프라 대학교 세계적 경제지리학자 장 폴 로드리게의 말입니다.
“한국은 저임금을 활용해 생필품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반도체와 조선사업, 자동차등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기술 경쟁력을 갖췄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글로벌화가 계속된다.
한국은 기술력뿐 아니라 투명성도 갖춘 나라다.
투명성과 신뢰는 한국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얻은 자산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글로벌 기업이 아주 선호하는 나라가 됐다.”
얼마나 고무적인 객관적 평가입니까?
투명성과 신뢰,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진실하고 성실하고 절실하게 살아갈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은 복음의 열 두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고 물으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영과 생명이 충만한 삶이며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다음 시몬 베드로의 응답은 그대로 오늘 우리 모두의 응답이자 신앙고백이 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을 두고 갈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영과 생명을 주시는 분은 파스카의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를 깨달을 때 시편 화답송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
그대로 미사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베드로를 통해 구원의 기적을 행하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은
오늘의 우리를 통해서도 구원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베드로를 통해 중풍병자 애네아스를 고치시고 죽은 도르카스를 살리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애네아스가 도르카스가 상징하는 바 우리들입니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타비타를 살리시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베드로는 우는 이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신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시자 타비타는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부활한 애네아스, 타비타입니다.
불러 주라 있는 이름입니다.
사랑을 가득 담아 정다이 ‘이름’을 불러주는 자체가 구원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치유받은 애네아스, 또 다시 살아난 타비타, 모두 베드로처럼
부활하신 ‘주님의 일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합니다.
이와 연관되어 교황님의 강론중 생각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증거와 기도는 함께 간다(Witness and prayer go together).
증거와 기도없이 여러분들은 사도적인 강론을 할 수 없다.
아무리 강론이 아름다워도 아버지의 도움의 활동 없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끌어들일 수 없다.”
즉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열어 기적을 일으키게 하고, 기도에 이어 기적의 증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 예수님께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베드로를 통해서도 그대로 입증되는 진리입니다.
베드로의 기도와 기적의 증거에 이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통해 중풍병자 애네아스를 고쳐 주시고 죽은 타비타를 살리신
똑같은 부활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 영과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시며, 우리의 영적 중풍병을 고쳐 주시고,
무기력한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십니다. 아멘.
첫댓글 부활하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영육간의 중풍병을 고쳐주시고 낫게 해주세요.사랑이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