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수도권 새도시 중 서울 강남 못잖게 교육열이 높다는 지역의 이른바 ‘명문’ 중학교에서 최악의 경험, 아니 최고의 가르침을 얻었다.
재량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반을 지원한 아이들을 만나 말로만 듣던 교실 붕괴를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인사를 나누기 전부터 아이들의 절반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채 고개를 들 줄 모르고, 나머지 절반은 끼리끼리 숙덕거리거나 정신없이 돌아치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난장판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야말로 ‘개판’으로 치달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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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은 그나마 상태가 좋은 편이에요.” (사육장 앞에서.김별아)
교실은 안녕하십니까?
혹 최근 학교 교실을 지나치다 한 번 보신 분 있으세요?
9월 23일자 한겨레신문 '김별아'씨의 '사육장 앞에서'라는 글을 읽다가 퇴임하던 2007년에 썻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햇수로 5년이 지난 지금 교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글을 썼던 2007년 교실과 지금의 교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합니다.
2007년의 교실 모습입니다. 그것도 실업계도 아닌.. 인문계 교실이...
언젠가 전교조가 ‘교육시장을 개방하면 교원이라는 직업이 3D업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일이 있다. 교육시장을 개방하기도 전인 지금은 어떤가? 수업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복도를 지나가다 보면 이해 못 할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선생님은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뒤에 앉은 아이 몇몇은 부지런히(?) 장난을 하고 있다.
짝꿍과 마주 보고 앉아 무슨 얘길 열심히(?) 속닥거리고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아예 책상 밑에 휴대폰을 꺼내놓고 문자를 주고받고 있다. 어떤 아이는 아예 복도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실업계도 아닌 인문계 1~2학년 교실이 이렇다. 몇몇 학생은 아예 복도로 쫓겨나 교실에서 벗어난 걸 좋아하는 모습이다.
2학기가 시작될 무렵 3학년 교실을 들여다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창문 가 분단에 앉은 아이들은 아예 엎드려 자거나 소설책을 읽고 있다. 알고 보니 수시 합격자다. 문제풀이를 하고 있는 수업을 들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등교를 시켜놓고 다른 프로그램이 없으니 따로 자리를 마련해 대학생들(?)끼리 모아 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운전면허 시험 문제집을 꺼내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수시합격생이 아니라도 선생님은 문제풀이를 하고 있는 데 몇몇 학생은 엎드려 자고 있고 어떤 학생은 수학문제집을 풀고 어떤 학생은 영어문제집을 풀이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지리문제집을 또 어떤 학생은 정치문제집을 풀고 있어 실제로 선생님과 수업에 동참하는 학생은 대여섯 명도 채 안 된다. 남의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저렇게 내버려두고 수업을 진행하다니 참 무능한 교사'라고 욕할 것이다. 물론 수업을 좀 더 재미있게 자료를 많이 준비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성의 있게 진행하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은 아예 진도에 따라가지 못해 수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연수를 가보면 느끼는 일이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을 듣고 앉아 있는 만큼 고역이 없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보면 어떤가?
문제를 풀다 교실을 둘러보면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걸 왕따라 하는 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교사의 목소리가 공부에 방해돼 귀마개까지 하고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고 꾸중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함과 자괴감에 수업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다.
정말 실력이 없고 무능해서 수업을 거부당한다면 교원평가 전에 사표라도 내야할 일이지만 그게 아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각양각색이다. 그래도 비교적 공부를 잘한다 하는 학생들은 자기 계획에 따라 수준에 맞는 문제집을 풀이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학생은 학원에서 다 풀어 본 문제를 선생님이 풀고 있으니 다시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정도라면 허탈감이라도 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제자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겠다는데 자존심이 상해도 참아야지. 뿐만 아니라 공부를 안 해도 원서만 내면 갈 수 있는 대학이 얼마든지 있는데 구태여 골치 아픈 공부를 할 이유가 없다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이유만 아니다.
7차교육과정에서는 수준별이니 선택이니 해서 자신이 선택한 과목만 시험을 치면 그만이다. 사회과목의 경우 전체 11과목 중 두 과목이나 네 과목만 선택해서 시험을 치면 대학에 갈 수 있다. 결국 선택 받지 못한 교사만 왕따 당하고 몇몇 학생만 붙잡고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교육부나 교육청이 모를 리 없다. 겉으로는 '문제집을 들고 들어가 풀이를 해주면 안 된다'는 원칙만 되풀이 할 뿐 수능이 끝나면 일류대학 합격자 수로 명문학교를 가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후의 승리자가 최선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교육은 없고 문제집을 풀이하는 교실. 이런 교실에 자질미달교사를 가려 축출하겠다는 교육부가 더 밉고 괘심하다.
교실이 이 지경이 된 건 순전히 교육부의 책임이다. 시험점수 몇 점으로 사람가치를 서열 매기는 시험 준비로 학교는 날이 갈수록 지쳐가고 있다. 보다 더 짜증스럽고 화나는 일은 이런 현실을 두고 학교 평가까지 한다는 소식이다. 평소 하지 않던 보여주기 위한 수업을 보여주는 쇼를 평가해 서열을 매기고 우수학교에 지원금을 차등화하고 있다. 교육은 없고 문제풀이만 하는 학교로 교사까지 왕따 당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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