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이겼다. 탐욕이 진리를 이겼다. 그러나 신학과 실천이 분리되는 것은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스 혹은 노, 둘 중 하나이다. 바알이든지 여호와든지, 한 편을 선택해야 한다. 물타기는 있을 수 없다. 본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랄랄라)방언에 대해 반대한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고린도전서 12-14장을 읽어보면 전체 문맥은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12장에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방언을 은사목록 맨 뒤에 놓는다(고전12: 10, 28)
고린도전서 14:6, 13:8을 보면 방언을 계시, 지식, 예언과 같은 분류로 놓고 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 13:8)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3:9-10)
13장 9-10절의 예언은 문맥상 분명히 8절의 은사들이다. 이 세 가지들(예언,방언,지식)을 모두 예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버린다. 그런데 이 예언은 말씀의 은사이다(기도의 은사가 아니다). 그리고 이 은사가 온전한 것이 올 때는 폐할 것이다. 즉 온전한 말씀이 오면 이러한 예언들이 폐할 것이다. 그 온전한 말씀은 66권의 성경으로 성취되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계속해서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고 있다. 비교하는 자체가 같은 계열이라는 말이다. 방언은 알아 들을 수 없는 계시, 예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계시이므로 예언이 교회에 유익을 끼친다는 것이 주요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왜 바울은 전면적으로 방언을 금지하지 않았는가?(고전14:39) 당시 이방종교에서도 방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거짓 방언이 고린도교회에 들어왔는데, 그럼에도 바울이 전면 폐지 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진짜 계시로서 방언(language)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옛언약과 새언약의 중첩시기이므로 계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던 시대였다. 방언을 금지하면 그가 은사를 멸시한다는 반대파를 고려하여 전면 부정은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체 문맥은 방언에 대해 부정적이다(해석할 때 항상 소문맥보다 전체 문맥이 중요하다. 이것은 해석의 기본이다).
이런 내용들로 볼 때, 고린도전서 14장이 말씀하고 있는 방언이란 1) 예언과 비견될 수 있는 분명한 말씀은사이다. 2)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므로 예언보다 못하다. 따라서 결론은 방언은 기도 은사가 아니라 말씀 은사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사도행전 2장이든, 고린도전서에서도 명확히 통역이 되었던 언어이다(고전14:27). 방언이 오늘날처럼 개인 기도 수단 이라면 굳이 왜 통역하라고 하는가(고전13:7)
그러나 현대의 방언은 통역이 전혀되지 않는 언어가 아니라 단순 음절의 반복이다. 방언은 기도가 아니라 계시의 방편이었다.
여기까지는 동의하고도, 그 당시의 방언과 현대의 방언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성령께서 말씀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와의 다른 방언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방언은 language이고 현대의 방언은 하나님과 비밀리 말하는 천사의 말(고전13:1)이라고 한다. 이 무슨 궤변인가? 13장에서 천사의 말이라고 한 것은 과장법에 불과하다.
네가 “천사의 말(강조)”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이지, 네가 말하는 방언이 천사의 말이란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문학의 기본이다. 따라서 현대의 소위 랄랄라 방언은 천사의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랄랄라 방언을 용인할 수 없다. 랄랄라 방언을 용인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방 종교를 기독교로 끌여 들이는 것이다. 바울 당시에는 계시가 계속 주어졌기 때문에 금지시키지 않았다.
방언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다른 서신서에도 ‘방언을 하라’고 강조했을 것이 아닌가? 어느 서신서에도 방언을 강조하지 않는다. 은사주의/오순절주의에서 “오늘날에도 성경을 통하지 않고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란 개념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지만 종국적으로 특별 계시의 물타기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마음속에서 들리는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성경을 읽어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 하기 보다는 기도를 해서 내면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이려 하게 된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방언을 용인하는 순간 말씀보다 체험을 위에 두고, 특별 계시에 물타기가 들어가며, 거짓 영들에게 우리의 영혼을 개방하는 것이다.
방언을 추구하는 것은 신비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말씀이 최고의 신비이다. 말씀은 곧 그리스도를 말하니 그리스도가 최고의 비밀이다. 더 이상 무슨 비밀이 필요한가? 66권의 말씀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주셨다.
그런데 왜 자꾸 더하려고 하는가? 왜 자꾸 기만하는가? 왜 자꾸 자신은 영적인 것처럼 위장하는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방언 없이 신앙생활 잘해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20세기에 들어 난리인가?
말세라 그런 것인가? 갑자기 신령해 지기라도 했는가? 그렇게 신령해서 한국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인가?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미혹이다.
모든 종교에 방언은 있다. 모든 종교가 교리는 달라도 방언 만큼은 같다. 무당도 방언을 한다. 최근 종교통합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모두 방언으로 접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 신이 도대체 누구인가? 여호와인가? 바알인가?
방언을 신학적으로 틀리지만 실천적으로 좋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기도를 깊게 하고 오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 기도를 오래한다는 사상 자체가 이미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종교 사상이다).
그러나 자신만 그렇지 타인은 어떤가? 나는 그 방언 기도 때문에 기도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부교역자라 말도 못하겠고 참고 있을 뿐이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들은 어떠한가?
랄랄라, 코카콜라를 듣고 미쳤다고 하지 않겠는가? 조롱하지 않겠는가?(고전14:23). 오늘날 랄랄라 방언은 더 이상 공동체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폐지되어야 한다. 유하게 말해서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강력하게 말할 때가 되었다.
본인은 기적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짜 기적을 믿는다. 아직도 성경이 번역되지 않은 미전도지역에서 하나님께서 방언으로 역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역되는 방언이다. 랄랄라 방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방언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맞다면 성경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진짜 방언(통역되는)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 짝퉁 랄랄라 방언을 부정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 대부분은 랄랄라 방언으로로 보이며, 이는 실로 안타깝다.
솔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의 방언이 랄랄라 방언인지! 명백히 통역될 수 있는 language인지! 이미 하나님은 알고 있다. 사단은 늘 거짓을 유포한다. 늘 없는 것을 있게 만든다. 그러니 진실하자! 기만하지 말자!
위에서 내려 오는 것은 진짜다. 내가 학습한 것은 가짜다.
첫댓글 현재훈님의 글을 퍼 왔습니다
퍼 온게 자랑입니까?
알량 꼴량한 지식으로 정확한 영분별이 가능해요?
100% 의심스러운 자~^^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방언기도를 하면 예수님이 뒷전이다?
오히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방언할수밖에 없는데 왜 뒷전으로 갑니까
무슨 말이 되는 말씀을 하셔야 어느정도 인정이라도 해 드리지요 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성경은 "가"라고 얘기하는데 "가"
라고 받아들여야 정상이죠
"나"라고 자기 생각으로 정해놓고 "나"라고 우기면
다른영 다른복음이 되는거에요
억지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끌어다 맞추면 안되는거에요
@슈와아이나리 게시글의 내용이 이해가 됩니까
방언교의 일반적인 상태를 얘기하는겁니다
님은 스스로 점검하시면 되는것이구요
@날개 슈와이나리 이 분은 긴가민가하여 3년동안 방언을 끊은적이 있다 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말씀을 기준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 곧 깨우침이 있을것이니 너무 몰아대진 마세요
사모함같은 경우는 구제불능이나 이 분은 구제 가능성이 많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랄랄라 방언은 선악과와 같다고 얘기했지요
성경의 방언에 대해 깊은 이해를 못하고 겉으로 신령한것 같다는것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해서 따먹는 사람이 많은거에요
성경은 따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했지만 소홀히 여긴거죠
여자들은 느낌에 치중하는 감정적인것이 본능이라 많이들 따먹게 되죠
랄랄랄라 하는 것은 대부분이 여자들이 하고
라랄라라 하는 남자들은 이같은 여자의 심리를 이용해서 돈을 갈취하려는 것이구요
교주가된 라랄라 집단의 여자우두머리도 돈버는게 목적이고요
신사도류의 미국인들은 경호원들에 호화 저택에 자가용 비행기에 그 사치스러움이 말도 못해요
한국의 내로라 하는 방언교주들치고 세상법에 걸려
@관찰자 쇠고랑 차는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죠
결국에 본모습이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