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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조선왕조의궤 프랑스에서 영구 귀환
며칠전 2011. 3. 17 KBS “역사 스페셜”에서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 함대에 의해 약탈된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圖書)가 145년만의 귀환한다는 것을 보고 감격하여 방송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세월이 흘러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그러다 1975년 당시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司書)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처음 세상에 알려지면서 반환운동이 일어났다.

강화도는 유사시 천도(遷都)를 하기 위하여 외성(外城)과 내성(內城)이 갖추어진 행궁(行宮)이었다.
프랑스는 9명의 선교사(宣敎師)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박해에 의해 순교하였다.
그후 이것을 빌미로 강화도를 침범하여 외규장각에 있는 총 4000여권의 도서중 340권을 탈취하고 나머지는 불태웠다.
당시 프랑스 함대 함장이 강화도에서 탈취한 외규장각도서를 프랑스 국왕에게 바쳐서 지금까지 보관하여왔다.
이후 1993년 김영삼 대통령때 프랑스 정부에서 처음으로 반환을 약속하면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 1권만 반환하였다.
그 후로도 18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반환 약속을 어겨 왔다가 올해 3월말 반환을 하기로 한 것이다.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은
조선 왕조 제 22대 임금 정조(正祖)의 후궁이자 순조(純祖)의 생모인 유빈 박씨(綏嬪 朴氏, 1770년~1822년)의 묘를 양주(楊州) 달마동(達摩洞)으로 하기 옮기기(遷奉:천봉) 위해 묘자리(園所:원소)를 준비한 과정을 기록한 그림과 내용이다.
약탈된 유물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일까?
프랑스 현지에서는 반환이 결정된 지금까지도 반환에 대한 찬반의견들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반환을 앞두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는 그 동안 국내 언론에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의궤를 보관하고 있는 프랑스국립박물관에서 한국 취재진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프랑스 언론, 최초로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부터 받은 디지털화된 사진파일을 토대로 외규장각 의궤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하였다.
제작진은 병인양요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그림으로 남김 프랑스 종군화가 주베르의 후손을 만난다.

병인양요에 참가했던 프랑스 해군장교 주베르는 병인양요 당시의 침략과정을 스케치로 남겼고, 그 후 본국으로 돌아간 주베르는 한 여행잡지에 병인양요를 통해 경험한 조선에 관한 글을 실었다.
주베르가 남긴 글은 훗날,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 돼 있음을 밝혀내는데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되기도 했다. 제작진은 프랑스 취재 도중, 수소문 끝에 어렵게 앙리 주베르의 후손인 증손자, 베르탕 주베르를 만날 수 있었다. 뜻밖에도 주베르는 당시 조선의 문화수준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의궤의 백미(白眉), 어람용(御覽用) 의궤(儀軌)!
의궤(儀軌)란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여러가지 주요한 의례의 행사의 내용 전모를 그림과 기록으로 정리한 책이다.
조선왕조의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의궤는 국왕이 보는 어람용(御覽用) 의궤(儀軌)의 사고(史庫)와 관련부서 보관용인 분상용(分上用일반용) 의궤로 나뉘는데, 프랑스에 가 있는 외규장각 의궤의 경우 대부분이 어람용 의궤들이다.

어람용의궤는 표지부터가 다르다. 비단으로 장정을 했고 화려한 문양의 놋쇠 물림에 국화 모양의 정을 박았으며 종이도 밀도가 높은 최고급 초주지(草注紙)로 두께와 밀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당대 최고의 인쇄, 제본, 장정 기술이 동원된 어람용 의궤의 가치에 대해 알아본다.
조선왕조의궤외 나머지 유물의 행방은 어디에 있을까?
★병인양요 때 약탈된 것으로 추정되는 깃발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천하여지도

기록에 따르면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유물은 의궤를 비롯해서 족자, 옥책, 갑옷, 지도 등 모두 359점이다. 하지만 이번에 반환되는 유물은 의궤 297책이 전부이다.
나머지 유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머지 유물 중 하나는 현재 영국에 가 있다.
현존하는 의궤 중 최고라 꼽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는 현재 영국국립도서관에 소장 중이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이란 중요 절기나 국가·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연회에서 옷감을 바치는 잔치를 이른다.
프랑스인이 약탈해간 유물이 어떻게 영국까지 흘러가게 된 것일까?
또한 약탈 유물 중 하나이자, 국보급 지도로 꼽히는 “천하여지도(天下輿地圖)”는 재불학자인 이진명 교수에 의해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천하여지도(天下輿地圖)는 1594년 “왕반(王伴)”이란 중국인이 제작한 지도이며, 조선인이 17세기초 이를 참고 삼아 한반도 부분은 크게 그리고 일본은 작게 그리는 등 수정하여 완성한 5색 컬러 대형판(가로190Cm세로 180Cm)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반환협상에서 천하여지도는 제외됐다.
그리고 옥책, 갑옷 등은 어디에 가 있는지, 그 행방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의궤에 가려져 있었던 나머지 약탈유물들의 행방과 가치를 반드시 조명하여 반드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명실공히 5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선진국이 라면 그동안 훼손되고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드시 찾는데 국민의 큰 관심이 있어야 하기에 이 지료를 소개 한다.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