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경향신문 제24면 오피니언 코너에는 '기묘사화의 역사적 진실'이란 제목의 글이 떴다.
첫 시작은 이랬다.
'중종 14년 11월 15일 밤, 갑자기 대궐안이 시끄러웠다. ...'
... ...
'중종 14년 11월 16일, 중종 14년 11월 18일, 중종 14년 12월 9일'이 이어졌다.
본문에서는 '중종 14년'이 몇 차례 나온다.
서기로는 언제일까?
신문독자를 위해서 서기로 연대를 표시했더라면 ....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 쓴 사람한테 '너, 정말로 유식하냐?'라고 묻고 싶다.
나는 '중종 14년'이 서기로 계산하면 그게 언제인지를 전혀 짐작도 못한다.
조선조 27대 왕 가운데 하나인 <중종> 이름은 알고 있지만 중종이 서기 몇년부터 왕이 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정말로 내가 무식한 놈인지, 경향신문에 글 쓴 이가 정말로 유식한 사람인지를 모르겠다.
도대체 중종 14년이 서기로는 언제냐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서기 1519년'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게 또 있었다.
지난 6월부터 말썽을 부리던 컴퓨터가 지난 11월 하순에는 아예 먹통이 되었기에, 나는 컴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별 수 없이 낡은 책이나 꺼내서 읽거나 오래된 족보 하나를 꺼내서 내 조상들의 태어나고, 죽은 연도와 날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60갑자'로 기록되었다. 예컨대 '무자년 12월 5일 졸'이라는 식이다.
나는 60갑자를 따질 재간이 없었다.
옛 호적에 나오는 아래 연대의 문구에도 나는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든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단기 00년'
'개국 00년'
'광무 00년'
'경응 00년'
'대정 00년'
'소화 00년'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경응, 대정, 소화'등은 일제시대 일본왕들의 이름으로만 짐작한다.
컴퓨터가 고장이 났으니 이들의 명칭이 서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내 짐작으로 따지자니 정말로 헷갈려서 숱하게 틀렸다.
며칠 전 큰아들이 쓰던 컴퓨터를 나한테 준 이래로 컴이 작동했기에 위 '60갑자'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서기'로 재계산했다. 그제서야 내 주름살이 펴지기 시작했다. 내 조상들이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짐작할 수 있기에.
내가 가진 개인의 족보에는 온통 한자투성이다.
내가 오래 전에 시골 면사무소 호적계에 부탁해서 발급받은 옛호적... 원본을 복사한 문서가 무척이나 흐리다. 당시의 면사무소의 복사기가 후졌는지 복사된 상태가 아주 불량해서...
2020년인 지금도 나는 한자로 된 호적을 제대로 읽을 재간이 없었다. 낡은 종이를 눈 가까이에 대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한자로 된 글짜를 읽자니... 솔직히 말하면 'c8... 욕이나 퍼부었으면 싶다.'
나는 1956년에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한다)에서 '가갸거겨 나냐너녀 ...'의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수십 년이 지난 2020년 12월 지금도 한글로 된 글을 읽고, 나도 한글로 글을 쓴다.
나한테는 그 어려운 '한자'보다는 '한글'이 훨씬 쉽고 좋다.
또한 '60갑자'로 년도를 따지는 것보다는 '서기'로 따지는 게 훨씬 편하다.
'60'갑자는 '60년'마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예컨대 '무자년'이라고 하면 ' ...1869년, 1949년, 2009년'이다.
도대체 서기로는 어느 해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할 수 없다.
내가 족보에 수록된 조상들의 돌아가신 년도를 따지려면 헷갈린다.
젊었을 때 돌아가셨다면 '60갑자'의 연도를 따질 수 있으나, 만약에 당사자가 오래 살았다면, 두 개의 연도가 나올 터.
나는 오늘 아침밥을 먹으면서 아내한테 말했다.
'내일 제사 차례상에는 밥이나 떠올려. 사과 배조차도 올리지 말어.'
내일은 할아버지의 제사날이다. 1962년 12월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초상을 나는 기억한다.
내 중학교 1학년 겨울철.
정말로 요란벅쩍한 장례였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충남 회덕면 읍내리 계족산에 무덤을 썼다.
지금은 대전 대덕구로 지명이 바꿨다.
장례가 끝난 뒤 혼백은 서해안 우리집 안사랑방에 모셨다. 수십 개의 울굿불긋한 만장기가 서렸고, 아침과 저녁마다 새롭게 밥을 지어서 높은 탁상 위에 진설하고는 어머니는 '아이고~ '을 읊었다. 처량한 곡조...
매달 보름이나 그믐이면 또 거창한 제삿상이 차려졌고... 대전에서 아버지가 오셨고...
수십 년이 지난 뒤인 지금 손자인 내가 제사를 지내는 제주가 되었다.
58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사는 내일.
내가 뚜렷하게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제사인데도 나는 그저 '밥이나 한 그릇 올려놔'라고 아내한테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대전으로 전학 가서, 할아버지의 방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돌아시던 날의 장면도 내 기억에는 생생하다. 이런 할아버지의 제사라도 나는 이제는 달리 생각한다.
제사는 어쩌면 내다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이기에.
아내는 같은 지역인 송파구 잠실에서 사는 큰아들한테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내게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끼리라도 모이는 것을 꺼려한다는 뜻이다. 나한테 하나뿐인 손녀, 손자는 미취학의 유치원생들이다.
이 아이들의 건강안전이 우선이기에.
내 아들한테는 '증조부'이고, 나한테는 할아버지이다. 아들과 나는 또 세대-차이가 난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일 뿐이다.
앞으로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없애고, 축소해야겠다.
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전혀 모르는 내 아내이다. 시할아버지의 제사가 뭐 그리 대단할까?
제사 준비를 해야 하는 손주며느리인 내 아내한테는... 그냥 다 없앴으면 하는 옛 제례문화이다.
제사는 유교문화이고, 유교 또한 하나의 종교이다.
나한테는 아무런 종교도 없다.
내가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돌아가신 조상들의 영혼을 기린다는 것보다는 후손인 내가 그 분들을 잠깐이라도 생각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영혼이 어디 있어? 무슨 증거라도 있어?'
사이비 종교인(무속인)과 유교를 숭상하는 것들이나 만들어낸 허구의 짓(형식, 돈벌이)이다. 나한테는...
나는 쌍둥이형제였다. 형인 나보다 체구가 훨씬 컸던 동생은 만20살을 넘기던 해에 뱀에 물려서 죽었다.
내 조상 신(영혼)들이 있었으면 그렇게 비참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수십 년째 이어진다.
나는 고개를 흔든다.
결언한다.
년도를 기록할 때에는 그냥 '서기'로 쓰자.
어려운 한자보다는 쓰기 쉬운 '한글'로 글 쓰자.
그리고 제사(제례)문화도 없애고, 축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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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카페에는
'2500년 전 유교 사상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화두!'
중국 사람인 공자의 생애에 대한 '영상 이미지 사진과 글'이 하나 올랐다.
나는 아랫처럼 댓글 달았다. 미움이나 받을 게다.
오늘 퍼서 여기에도 올린다. 나한테는 하나의 글감이기에.
읽다가는 그만 두었습니다.
음성도 들리지 않는 내 컴에서...
<유교>라는 단어에서... 2,500년 전의 사람인 공자(이름은 공구, 중국 산뚱지역의 사람)의 이야기가 진짜일까요? 아니면 허구일까요?
조선조 이 못난 것들이나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고개를 조아렸겠지요.
2,500년 전에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없습니까?
내가 날마다 밥 먹는 식탁 유리판 밑에서는 세계지도가 있지요. 밥을 떠먹으면서 세계지도를 들여다 봅니다.
태평양, 아프리카... 지역에는 온통 서양의 땅들이 있습니다. 태평양에는 프랑스, 영국, 네덜... 미국 등의 해외영토가 잔뜩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먼 거리에 있는 해외영토.
중국, 한국은 해외영토가 있습니까?
찌질이들이라서 오로지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왕조에 대한 윤리만 읊조렸으니까... 해외영토가 하나도 없지요.
이 카페에서도 아직도 <공맹>을 읊조리는 사람이 더러 있대요.
나한테는 낄낄...내 책상 위에 내 조상의 족보를 올려다놓고는 그들의 행적을 엿봅니다.
못난 조상이네요. 공자왈 맹자왈 한 분들이 아니기에...
2,500년 전 그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