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0일(토)
* 시작 기도
주님...
과연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신 주님은 그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을 향하여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죄를 적용하여 예수님을 핍박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졌음을 알게 하기 위하여 그 말씀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유대인을 비롯한 세상의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고 확증할 수도 없는 일 곧 죄를 사하는 일을 더 쉽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무엇이 쉽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 진짜 그의 죄를 사해 주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고자 죄를 사하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종도 역시 주님의 권능을 오해하여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여겼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말로는 주의 십자가로 나의 죄를 대속하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관념적이고 지식적인 차원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창세전 언약에 의하여 여기까지 도우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은혜 앞에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이 하루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3:14-25
제목 : 언약 때문에, 창세전 언약 때문에.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15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17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20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 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22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4 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 나의 묵상
한 나라의 흥망성쇠의 역사나 개인의 인생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결정된다.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다(출 3:13).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히브리어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로써 ‘나는 ~ 이다’ 또는 ‘나는 나다’라는 뜻이다.
이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규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의 그 무엇에도 제한받지 않으시며 받으실 수도 없으시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은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나는 ~ 이다’처럼 가운데가 비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단어에는 항상 히브리어 ‘하야’동사가 사용된다.
하야동사는 ‘존재 생성 활동’의 3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며, 생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건을 일으키고 그 사건을 위하여 사람을 세워서 일하신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면서 뒷짐만 지고 가만히 앉아계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손과 땅을 언약하셨다.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도 하시고, 모압의 도적 떼들이 쳐들어온다거나, 아람과의 전쟁을 일으키시면서 사건을 만드시고 이 사건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또한 엘리사와 같은 사람을 세워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일을 생성하시고 또한 가만히 앉아계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일하시며 활동하신다.
따라서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또한 순종할 수 있다.
요아스나 그의 부친 여호아하스나 모두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일평생 거기서 떠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곧바로 진멸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이었다.
(왕하 13: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지만, 그래도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 때 하나님 또한 그들을 돌보지 않으신다.
(히 8: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그러나 아주 멸하지 않으시며 회복의 길,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다.
아담이 범죄 하였을 때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셨고, 가인이 아벨을 죽여 범죄 하였을 때 그에게 표를 주어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다.
세상을 홍수로 멸하시지만 노아의 가족을 세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고 바벨의 혼잡한 범죄로 그들의 언어를 흩으시고 심판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을 불러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는 요아스를 바로 심판하실 수 있으나 엘리사를 통하여 구원의 길, 회복의 길을 제공하셔서 유예기간을 주시는 것이다.
여호아하스 역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언약으로 인하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시고 참으신다.
나는 이미 진멸 받아 마땅한 자이다.
나 역시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악을 행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나를 죄에서 구원하셨다.
이는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으며(요 5:26), 또한 그 아들에게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어 영생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딛 1:2).
아들은 이 영생을 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다.
그러나 영생을 주러 오시기 전에 아담은 범죄하여 아버지의 품에서 떠난 자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 아담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그에게 친히 찾아가셔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고 또한 구원자로 여인의 후손을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다.
때가 되어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고(갈 4:4), 오늘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셨으며 또한 그를 믿으므로 영생을 주셨다.
이제 나는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이다.
때로는 넘어져 범죄하기도 하지만, 즉시로 그 죄를 자백하므로 미쁘시고 의로우신 주님의 사하심과 정결케 하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산다.
나의 소망이 땅에 있지 않고 만물 위에 있으며, 창세전 그 세계가 내가 가야 할 바로 그 나라이기에 나의 눈은 항상 그 곳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나는 오늘도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그 분이 계시는 그 곳으로 나아가 그 분과 함께 거하는 영광을 누린다.
이 자리가 바로 영생의 자리요 영광이 임하는 자리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께서 오늘도 나를 돌보시며 나 또한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육신의 소욕이 나를 넘어뜨리려 할 때, 나는 주님의 피 묻은 손을 붙잡습니다.
내 영혼이 범죄하여 더러워졌을 때, 나는 그리스도의 옷으로 덧입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여 넘어지오나, 언약에 신실하신 아버지께 오늘도 아들을 힘입어 나아가오니 이 종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과 언약적 의를 이루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 원하오니 주여, 이 종의 손을 붙잡아 주소서.
내 영혼 주를 닮아 주의 형상으로 살아가오니 이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은혜가 아니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오니 주의 품안에 품으소서.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을 오늘도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