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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1급 로또론(論)'이 나왔다. 행정자치부 1급 12명 중 11명이 명예퇴직하거나 사표를 내고 해양수산부도 1급 3명이 사표를 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공무원은 1급이 되면 일단 다 한 거죠. 로또 복권도 그렇고…"라고 했다. "1급은 로또와 같아 자기 운이나 시대 흐름에 맞지 않으면 집에 가서 건강도 회복하고 배우자와 놀러 다닐 필요도 있다"고 했다. 그해 1급 40%, 77명이 사표를 내 평균 연령이 52세에서 50세 10개월로 낮아졌고 행시 기수는 14~17회에서 17~20회로 넘어갔다.
▶1급은 관료사회의 꽃으로 불린다. 정무직인 장·차관과 달리 내부승진으로 오를 수 있는 최상위 직급이다. 실장이나 청장, 차관보 직함을 갖는다. 1급까지 25~30년이 걸리고 한 기수에서 보통 20%쯤에게 차지가 온다. 연봉제로 8000여 만원을 받고, 퇴직하면 월 300만원 정도 연금을 받는다. 재직기간은 1~2년. 차관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물러난다. 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김종대씨처럼 YS정권부터 DJ정권 초까지 6년 6개월을 장수한 이도 있다.
▶재작년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도입되면서 1급 공무원도 형사사건으로 기소되거나 1년 이상 무보직인 경우를 제외하곤 60세까지 신분보장을 해주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론 일괄사표를 내게 하거나 후배나 동기를 승진시키면 알아서 퇴직해야 한다. 조용히 물러나야 산하기관이나 대학 등에 뒷자리가 보장된다
▶정권교체기마다 큰 폭의 1급 인사가 있었다. 이번에도 교육부 1급 7명에 이어 국세청 1급 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지난 정권에서 중용됐던 사람들을 정리하는 수순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 정부 정책을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거나 위기대처 능력이 떨어진 다른 부처들도 물갈이가 거론된다. 1급은 중앙부처와 청와대 합쳐 291명이다. 1급이 타깃이 되는 것은 공직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공무원들의 고삐를 죄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1급들은 1970년대 후반 들어온 행시 21회부터 25회까지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국장급으로 승진해 대들보 역할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갈 때 날짜변경선을 지나면 손목시계 바늘을 움직이듯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공무원들에게 '의식의 시곗바늘'을 바꾸라고 요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공무원들더러 영혼을 아예 빼놓으라고 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
입력 : 2008.12.18 22:59 / 수정 : 2008.12.1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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