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
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카이스트 이병태 명예교수를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정부는 그를
IT
경영 전략의 대가이자 규제 개혁의 적임자로 치켜세우며,
이번 인사가
‘실용’과
‘사회
통합’을
위한 결단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분노에 가깝다.
전문성이라는 포장지로 덮기에는 그가 과거에 쏟아냈던 발언들의
무게가 너무도 편향적이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이병태 교수는
그동안 경제학자의 신중한 합리성과 균형 감각을 보여주기보다,
특정 진영의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적 투사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왔다.
학문적 분석보다는 선명한 진영 논리를 앞세운 발언이
반복되면서,
공적 담론을 책임지는 지식인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자초해 왔다.
“친일은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라며
반일 정서를 비정상으로 규정한 그의 발언은,
역사적 상처를 공유하는 다수 국민의 정서를 노골적으로
거스르는 인식이다.
이는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식민지 경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가볍게 전복하려는
뉴라이트적 역사관의 노골적 드러남에 가깝다.
더욱이 세월호
참사 추모를
“천박함의
상징”이라
폄훼하고,
청년 세대의 절망이 응축된
‘헬조선’이라는
절규에 “빈정대지
마라”고
훈계하듯 반응한 태도는 공감 능력의 결핍을 넘어 냉소적 오만에 가깝다.
사회적 약자의 고통과 집단적 비극을 대하는 방식에서조차
최소한의 절제와 성찰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공적 책임을 논하기 이전에 지식인의 기본 윤리부터 되묻게
한다.
이러한 인사가 장관급을 넘어 사실상
‘총리급’
예우를 받는 위원회의 수장격으로 기용된 것은,
현 정부의 인재 등용 기준이 과연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지 강한 의문이 든다
.이번
논란이 더욱 폭발적인 이유는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반에 흐르는 뉴라이트적 역사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언주 의원의 과거 독재 미화 강연이 재점화되며 역사 왜곡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뉴라이트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인물을 중용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뉴라이트
사관의 제도권 안착”이라는
노골적인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정부는
비명계와 기업인을 아우르는
‘통합형
인사’라고
강변하지만,
진정한 통합은 과거의 혐오와 왜곡된 사관에 대한 통렬한 성찰
위에서만 가능하다.
홍익표 정무수석이
“해명이
이뤄진다면 사회통합 차원에서 봐달라”고
읍소하고,
이 부위원장 본인이
“자유주의자
시각에서 절박함에 매몰되었다”며
사과했지만,
이는 공직 인선을 앞두고 흔히 나타나는
‘면피성
사과’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규제 개혁은
단순히 법조문을 고치는 작업이 아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합리적 조정을 이끌어내는 고도의 정치적·사회적
행위다.
과거 극단적인 발언으로 끊임없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온
인사가 과연 어떤 권위와 설득력으로 갈등의 실타래를 풀 수 있겠는가.
더욱이 과거
교수 시절 부적절한 행위로 수사 대상에 올랐던 이력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그에게 부여된
‘공직자의
품격’은
이미 시작부터 금이 가 있다.
결국 이번
인사는
‘실용’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이념적
편향성’을
덮으려 한 패착이다.
정부가 외치는
‘미래’와
‘혁신’의
가치가 뉴라이트 논란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국민의 보편적
상식과 동떨어진 인사가 지속될수록,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 과제의 동력은 상실될 것이다.
진정한 규제 혁파를 원한다면,
실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을 다시
찾아야 한다.
과거의 혐오를 훈장처럼 달고 있는 인물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첫댓글 有益한 資料와 情報를 提供해 주신데 대하여 깊은 感動을 받았으며, 情成이 가득한 훌륭하고 高貴하며 所重하고 아주 멋진 좋은 作品 올리시 느라 苦生이 많았으며, 재미있고 珠玉같은 名言 잊지못할 追憶을 만들어 주셔서 記憶에 오래 남을 것 같고, 感銘깊게 보고 듣고 웃고 즐기면서 잘 感想하고 갑니다.
人生의 삶은 잠시 스쳐 가는 因緣일 지라도 高貴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運數大通하시고 늘 健强하고 밝고 活氣차고 希望 가득한 幸福하고 便安한 하루가 되시길 所願합니다.
오늘도 福 지으시 무탈(無頉)하시며 智慧 ㆍ知慧롭게 살아 가시길 祈願합니다. 멋진 하루되세요. 잘 보고갑니다.
感謝합니다.
= 朴圭澤 華谷·孝菴 公認 大法師(佛敎學 碩士課程 2學年 在學中)의 좋은글 中에서 (Among the good articles of Park Gyu-taek HwagokㆍDharma-Bhānaka and Hyoam's official Daebosa(I'm in my second year of a master's course in Buddhist studies) =
잘보고 갑니다.
잘 감상합니다.
즐감합니다.
머물다, 갑니다.
시사만평 잘 보고감니다 감사합니다,
강대일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