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시를 보았다.
'갈 새소리'
늦가을의 갈대에 관한 내용으로 기술되었다.
'갈 새소리'라는 문구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
'갈 새소리'의 반대말은 '올 새소리'인가?
가고, 오는 새소리를 뜻하나?
우리말로는 '가다, 오다'이고 영어로는 'go, come'이다.
나는 '떠나가는 새의 소리'로도 해석하고 싶다. '가다'의 반대말은 '오다' 이기에...
중부 서해안 산골마을에 있는 내 시골 텃밭.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나는 텃밭농사를 포기한 채 처자식이 사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간 내가 가꾸던 텃밭 세 자리의 과수원은 오랜 방치로 잡목과 잡초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라온 억새와 갈대가 해마다 터를 넓히고 있다.
늦가을철에는 억새와 갈대의 터럭(털)은 풀어져서 바람에 휘날려서, 멀리 퍼진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억새 줄기가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흔들린다.
'억새소리, 갈대소리'는 서걱거리는 소리이다.
'억새'는 지방에 따라서는 '으악새'라고 한다. 지방방언이다.
서해안 보령지방에서는 '억새'라고 제대로 소리를 낸다.
'갈대'의 모습은 몽당빗자루처럼 생겼다.
털 색깔도 우중중해서 보기에도 별로이다.
이에 비하여 '억새'의 터럭 모습은 고고한 영감의 수염처럼 길고, 색깔은 희어서 제법 멋져 보인다.
위 시에서 나오는 '갈 새소리'라는 문구에 의문이 들어서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갈새'라는 단어가 있을까를 검색하니 안 뜬다.
특정지역에서는 '갈대'를 '갈새'로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설령 '갈새'라고 발음한다면 위 시의 제목의 '갈 새'는 틀렸다. '갈새'라고 붙여서 써야 맞을 게다.
나는 특정지방의 방언을 모르기에 위 '갈 새소리'를 '올 새소리'로 색다르게 해석한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것이 세상이치이기에.
인터넷으로 더 자세히 검색하니
'개개비 = 갈새'라는 단어가 뜬다.
새(조류)의 하나인가 보다. '개개비'라는 새가 있나 보다.
개개비 = 갈새
시를 쓸 때에는 보다 정확한 단어를 썼으면 싶다.
띄어쓰기, 맞춤법도 제대로 지켰으면 싶다.
제3자가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말이다.
1.
어떤 시를 보았다.
아래 문구에 의문이 나기에 여기에 퍼 왔다.
더 생각하려고.
꽃중의 꽃이라 헀다.
멀어저간 그리움이 담겨있고
구슬픈 냇물의 갈 잎꺽어 노래한다
긴 한 잎 떼어내 돛달린 갈배 만들어.
'갈 잎',
'갈배'
이런 단어도 있나?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검색하니 안 뜬다.
하지만 이런 단어를 쓴 글은 있다.
'갈 잎' '갈배'라는 말은 어떤 특정지역에서는 쓰나 보다.
하지만 시에서 쓴 '갈 잎'은 2개의 단어이다. 어느 하나를 빼내도 뜻은 통할 터.
하지만 아무래도 '갈 잎'은 잘못된 단어일 것 같다. '갈잎'으로 붙여서 써야 할 듯.
'갈배'라는 합성어 단어가 있듯이 '갈잎'이라야 합성어가 성립될 게다.
'갈'이라는 게 혹시 '갈대'라는 식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도 든다.
충남 보령지방에서는 '갈대'라고 부른다.
웅천 강물과 사그네 노천리의 앞 바닷물이 합수되는 곳에는 '갈대'가 무척이나 많았다.
'억새'는 강가보다는 산에 더 많았다.
* 충남 보령시 오서산의 억새는 제법 유명하다.
내 시골집 텃밭에는 '갈대'와 '억새'의 씨앗이 날아와서 싹이 튼 뒤에는 점차로 이들의 뿌리가 땅속 깊이, 넓게 번지고 있다.
지겨운 잡초... 나중에 어떻게 이들을 캐내야 하는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포클레인으로 뒤짚어서 뿌리를 뽑아낸 지도 오래되었으니 또 엄청나게 밭에 번졌다.
윗밭, 앞밭, 담부리밭 세 자리에... 이들이 주인인 양 번진다.
지겨운 '갈대'와 '억새'에 나는 벌써 졌다. '항복~' 크게 외쳐야 할 게다.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며 흔들리면서 그 가벼운 씨앗들은 널리 멀리 퍼지며, 또다시 움을 터서...
이 억세고 지겨운 잡초들이 어떤 시인들한테는 사랑을 받는 식물로도 보이나 보다.
그거야 농사 안 짓는 사람들한테나 해당되고...
시...
나한테는 정말로 어렵다.
도대체 무슨 뜻이여?
그 단어가 맞어?
////////////////////////
시시하다.
코로나가 12월에 들어와 크게 확산되었다며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했으면 하는 정부의 지침이 날마다 뉴스에 보도된다.
65세 이상의 노인들한테는 치명적인 치사율이다. 나는 만나이 71살을 지난해에 넘긴 고령층 노인이기에 코로나가 무서워서 바깥외출을 자제한다. 아파트 내 방안에 콕 박혀서 '방콕, 집콕'이나 한다. 일거리가 없기에 날마다 컴퓨터 속의 사이버 세상에서 남의 글을 읽고, 나도 개인 문학카페에 잡글이나 올린다.
남의 시를 읽다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글쓰기 공부>를 더 한다. 하지만 이게 늙어가는 나한테 무슨 가치가 있으랴?
재래시장에서 사서 먹는 천원짜리 붕어빵 하나가 훨씬 실속이 있고 맛이 있을 터.
답답하다.
마음은 충남 보령에 있는 산골마을로 내려가 있다.
시골집에서 차 타고 조금만 서쪽으로 나가면 무창포 갯바다에 도착한다.
그 갯바다 모래 위를 걸으면서 겨울철새들을 바라보고 싶다.
넘실거리는 파도 저너머에 있는 섬에도 눈길을 보내고 싶다.
오른쪽으로는 원산도, 왼쪽으로는 중국으로 나가는 외연도 등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내 상상의 눈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