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손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손재주 없고 움직이는 것을 즐기지 않으니,
무엇하나 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아 지레 지쳐 두어 달을 미루다가 결국 일을 벌였다.
이일도 나의 게으름 탓에 몇 배의 고생을 사서 한 셈이다.
처음 집을 지었을 때 덱에 페인트칠 하지 않았다.
차일피일이 어느덧 이십 년이 지난 셈.
거뭇하게 때가 끼어 볼썽사납지만 이제 새삼스럽게 페인트칠 하기에는 너무 늦어 그냥 두었는데,
같은 시기에 지은 옆집이,
두어 달 전 인부 두 명이 삼 일정도 걸려 덱에 페인트칠을 했다.
눈여겨본 아내,
' 어머, 덱에 페인트칠 하나 했다고, 집이 달라 보이네'
인부를 사서 하겠다는 말이 아니고 나보고 페인트 칠을 하라는 소리다.
인부 두 명이 3일 걸렸다면
내 집은 조금 큰 셈이니 6일 걸릴 것이고
종일 메달릴 수 없으니 반나절만 한다면 12일 걸리는 셈,
또 전문가가 아닌 초보가 한다면 보름은 족히 걸릴 일.
페인트 칠이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검게 들러붙은 때를 벗겨내는 사포질이 예삿일이 아니다.
바닥이야 센딩기게로 벗겨낸다지만
외벽 쪽과 촘촘히 박혀있는 레일링은 모두 손으로 사포질을 해야 한다.
억 ! 사람 잡을 소리다.
꼬박 일주일의 완벽한 사포질,
내일부터 일주일간 비가 온다니 페인트칠은 9월 초에 해야겠다.
못 미더워 하던 아내,
'아이고, 수고하셨네, 무슨 천년을 살겠다고'
아내의 눈썰미 탓에 매년 어김없이 뙤약볕에 고생한다.
작년도 마찬가지, 아랫글은 재작년에 하도 고생을 해서 썼던 글이다.
( 모르는 듯 아는 듯)
한낮의 볕이 곡식 영글기에는 안성맞춤이지만,
초가을 따가운 볕은 용심 많은 시어미가 신나는 계절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시사철 발 벗은 며느리는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는 바깥 들일로 내쫓겨야 하는 계절이니
정지용 시인의 모친은 꽤 심술 맞은 시어머니였을 것이다.
아직 한낮의 별이 따가운데,
근심 많은 아내는 벌써 겨울이 걱정.
집 손 봐야 할 곳을 꼽아 보이는 열 손가락이 부족하니,
이순의 눈썰미가 과하기도 하지.
그렇다고 마냥 아내의 근심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십여년 세월에 낡기는 했다.
세월의 무게라는 것이 어디 물건이나 집이라고 비켜 갈까.
바래고 낡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
초가을 뙤약별에 일 벌여 놓은 지가 벌써 며칠째.
용케 알고는 커피 한 잔 들고 찾아왔던 ㅂ 씨,
새까맣게 변한 내 모습에 서둘러 자리를 뜨고 픈지
" 수고 하이소오 "
건네는 인사말이 급했다.
어수룩한 사람,
설마 뽀얀 바지에 시멘트 자국 묻히게 할까.
" 하이 준, 너무 심하게 일 하지마 "
" 그래 고마워 "
대학에서 비올라를 가르친다는 옆집 노처녀,
어쩐 일인지 인사를 했겠다.
아이들 어렸을 때 집 밖으로 몇 가지 악기 소리 나는 것을 관심 있어 하더니
이후 아내하고 아는 체 하는 사이지만,
나하고는 되려 마주쳐도 모른체 한다.
노처녀가 심심찮게 밤늦도록 파티를 자주 벌였던 게 화근이었다.
어느 퇴근길의 늦은 밤.
옆집 방문객들이 내집 드라이브 웨이 진입로를 가득 메워 파킹하는데 애를 썼다.
몰상식한 인간들이라고 된 소리를 한 이후론 마주치면 서로 똥 밟은양 했다.
그 노처녀가 너무 심하게 일하지 말라고 했고
ㅂ 씨는 혼자 고생하라고 했다.
그 참 고약한 우리의 인사법이다.
부시도록 억센 햇살이 불편하다.
고갱은,
따갑고 강렬한 햇볕만큼 돋보이는 선명한 색채의 화풍으로 전설적인 화가가 되었다지만,
난,
선명해서 눈에 부시고 빈틈없이 쏟아져 내리는 이 한낮의 밝음이 거슬릴 뿐이다.
벗어놓은 선글라스를 그만 깔고 앉아 못쓰게 되었으니,
우짜몬 좋노?
검안하기 위해 예약하고,
도수 맞추고,
며칠을 기다려 맞춤하는 일이 번거롭고 성가시기도 하고,
일 벌여놓은 뒤라 시간 내기가 수월찮다.
임시로 허름한 놈을 그냥 집어왔더니,
햇볕은 가려주지만 초점이 흐려 허우적거리니,
일에 능률이 오르지 않아 고생했고,
곱으로 미련코 게으르다는 핀잔도 듣다.
굼뜨고 서툰 솜씨로 힘들게 마무리를 하고 보니,
산발에 볕에 그슬린 볼품없는 모습은 족히 십년은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머리를 자르던 미스터 ㅊ 의 중얼거림이 꿈결 같다.
꾸벅꾸벅 졸았나 보다.
" 비즈니스는 어떤가요 ? "
" . . . . 네 ? "
새까맣게 그을린 목덜미를 보고선,
여름내 골프장에 자주 나갔느냐고 연신 되물었겠다.
" 어허, 그래요 ? "
자연스러울 만큼,
또 당연하게,
꼭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다.
건강하게 보인다는 인사치레만 해도 좋으련만,
면구스러워 할성 싶어 건성으로 대꿀하긴 했다.
동양화에서는,
남겨놓은 빈자리를 여백의 미라 한다더만.
미루어 짐작하고,
그래도 어렴풋 하걸들랑 나름대로 그려 넣고,
모르는 듯 아는듯 함이 좋으련만.
흠뻑 그리고 꽉 차지 않아 여유롭고,
흑백으로 옅게 물들어,
그래서 담백한 듯 넉넉한 수묵화를 생각한다.
흐린 듯 부드러운 수채화는 또 어떤가.
힘든 노역 끝이라,
새삼스럽게 구글 스트리트 뷰우로 집을 검색했다.
엉 !
이게 무슨 황당한 그림인가 ?
작년 가라지 도어 페인트 칠하던 때의 뒷모습이 여러 각도로 찍혀있다.
그만 홀랑 벗겨진 듯한 당혹감.
묘한 기분이다.
정면을 비추지는 않았으니 초상권 침해는 아니지만,
빌어먹을 놈들.
꼭 이렇게 내 사는 모양을 한치 빈틈없이 세세히 까발려야 할까.
이전엔,
한치 빈틈없이 딱딱 들어 맞는 것만 예스,
거르면 당연히 노오.
와이셔츠는 뽀얗게 희어야 했고
뿌연 안개와 으스름한 저녁보다는 활짝갠 대낮이 윗길이었는데...
이젠,
조금은 옅고,
없는 듯 모자란 듯,
모르는 듯 아는듯,
얼핏 설핏 보일듯 말듯하여,
한편으론 애잔스럽기도 한 어스름함을 생각한다. (Sep. 2016)
첫댓글 페인트 그거 쉬운 일 아닌데요
소질 있으신 거 아닌가요? ㅎ
사람 부르면 비용도 정말 입 떡 벌어지게
비싸던 걸요
잘 읽었습니다
맞습니다, 소질보다는 비용 때문이지요. 인건비 웬만 해야지요.
매년 어쩔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 대개 직접하지요 . 고마워요
판돌이님 외국은 인건비가 한국보다 더 비쌀겁니다 그래서 직접 하시나봐요
그렇습니다. 소질 없어도 묻고 유투브도 보면서 그렇게 합니다. 고마워요
@판돌이 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니요, 대단한건 아닙니다.
비용, 억 소리가 나올 정도니 할수 없지요.
그래서 직접 하다보니, 아내말은 저도 이젠 조금 늘었다고 하네요. 고마워요.
근디 데크를 20년이나 방치했는디
썩지 않습디까???
우린 오일스테인 페인팅
?년 마다 했는디~~~
작년두 올두 걍 보내고만 있으니ㅉ
칠만 산뜻해도 새집이 되는건 맞네여ㅋ
글쎄,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디.
만 19년 하고도 몇개월 먹은 놈인데요
ㅎㅎ그렇게 하다보면. 전문가 되겠네요
혹시 옆집에서. 일감들어오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ㅎㅎ우리집칠해달라고 ㅎㅎ
그래요, 이젠 왠만한 일은 직접 합니다..
솜씨,적성 따질 형편이 못되지요.
근데, 아직도 궁금한게 어느 아줌씨가 그리도 드센든가요, 살짝 귀뜸 해주소.
@판돌이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이요 ㅎㅎ
요즘은 오일스테인도 색상이 다양하고 예쁩니다
여자인 저도 직접 했는데요..
전 데크가 넓지 않아선지 재밌던데요
저울타리도 제가 혼자서 칠한겁니다
그래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오래되어 사포질이 힘들더군요.
정원이 넓어 보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혹 시어머니 되시면 용심 부리지 마이소,
아니지, 따님 셋이라 했지요.
글쎄요, 정지용 시인 부인이 정말 맨발이었는지
시적 표현이었는지 아직도 긍금하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