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부처님의 십대제자-두타제일 마하가섭
경전 속 부처님 ‘재벌2세’를 찾아서
지독하게 가난했던 예수님
한 겨울 말 구유통에서 태어나 목수의 아들로 성장한 예수님은 30여년의 짧은 생애 대부분을 가난하게 보냈다. 또한 12제자들 중 다섯 명이 어부였으며 공무원 1명과 혁명가(당원) 1명을 제외한 다섯 명은 직업이 확실하지 않았다. 즉, 제자들 중에서도 고정 수입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종교인으로 살아갈 것을 선택하고 가르침을 펼치는데 온전히 전념하기 시작한 이후, 날마다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 일과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활동했던 지역은 ‘탁발’도 여의치 않고, ‘공양’ 문화도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야기는 기적을 일으켜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어도 사례는커녕 밥 한 끼 대접해주지 않았던 당시의 ‘각박한 인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등 생활밀착형 기적을 끊임없이 행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부유함에 대하여 누구보다 설득력이 풍부한 어록을 남길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말씀은 객관적이다 못해 자못 냉정하기까지 한 명언이다.
지나치게 부유했던 부처님
부처님이 출가 전에 왕자였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이 아들의 출가를 막기 위해 세 개의 궁을 지어 계절에 맞게 머무르게 하는 등 세속적인 안락함과 쾌락의 극치를 손수 제공했던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덕분에 부처님은 속세의 모든 부귀영화를 ‘스스로 버리고 그보다 훨씬 중요한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왕자로써 부처님이 속가시절 누렸던 삶은 충분히 화려하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어디까지나 ‘카필라국’이라는 소국의 경제규모에 맞는 수준일 뿐이다. 사실 카필라국은 훗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에 법륜을 굴린 마가다국이나 코살라국 등에 비하면 국가라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지닌 ‘성(城)’으로 불리는 것이 더 적합한 작은 나라였다.
출가 후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왔던 부처님은 마가다국에 이르러 4명의 중요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 4명이란 마가다국의 왕이자 부처님의 평생 친구이며 후원자가 된 빔비사라왕과 상수제자로 교단을 이끈 사리불과 목건련 그리고 의발제자로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은 마하가섭이다.
중인도 최고 부자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마하가섭
여덟 형제의 장남이었던 사리불은 경전 속 최고의 엄친아(‘나’와 비교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존재를 뜻하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며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목건련은 경전 속 최고의 효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리불과 목건련의 뒤를 이어 부처님의 제자가 된 마하가섭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한마디로 그는 경전 속 최고의 부자이자 도련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하가섭은 인도 최고 계급은 바라문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당시 인도 최고의 가문인 ‘가섭’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다. 말하자면 ‘가섭’ 가문의 종가였던 셈이다. 그래서 그의 직계가족은 ‘가섭’이라는 성 앞에 특별히 크다는 의미의 ‘마하’를 붙여 사용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하나뿐인 아들 마하가섭에게 물려주었는데 ‘마하가섭’ 가문의 재산은 마가다국 왕의 재산보다도 많았다. 마하가섭의 집은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 부근에 있었는데 그의 집안에서 직접 다스리는 마을은 500개가 넘었고, 그곳에서 수확한 곡식 등이 아닌 오로지 금전(금은보화)만을 저장해 놓은 창고가 25개나 되었다.
마하가섭 가문의 재산은 마가다국 뿐 아니라 중인도 전체를 통틀어서 손꼽힐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명예와 부귀영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수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이 모든 재산의 소유주는 단 한 명, 마하가섭이었다.
출가 전 부처님과 꼭 닮은 삶을 살았던 마하가섭
마하가섭의 생애는 탄생부터 부처님과 놀랄 만큼 많이 닮아있다.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세속의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 걸림이 없는 찰제리 계급의 왕자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했던 것처럼 마하가섭 역시 세속의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 걸림 없는 신분과 인연을 선택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다. 두 분의 공통점은 자신을 지극히 애지중지하는 부모를 만났다는 것이다.
부처님과 마하가섭의 부모는 늦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다가 뒤늦게 아들을 낳아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귀하게 키웠다. 또한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이 산달이 가까워오자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의 아소카(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부처님을 낳은 것처럼 마하가섭의 어머니도 산달이 가까워올 무렵 정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진통을 느껴 핍팔리(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마하가섭을 낳았다. 그때 마하가섭의 어머니가 진통이 심해 미리 마련한 산실까지 걸음을 옮길 수가 없어 핍팔리 나무 아래 앉자 하늘에서 하얀 천이 내려와 산실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두 분의 또 다른 공통점은 출가 전 부모님의 강요로 결혼을 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혼에 대처한 방식이나 결혼 생활에 임한 자세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바라본 ‘부처님’과 ‘마하가섭’이라는 신화적인 존재들조차 부부의 인연이나 문제만큼은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에서 부부의 일은 역시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 남자
성인(聖人)이 될 인연이 무르익어 세상에 나온 마하가섭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미 출가를 향한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기 전 그가 스스로 선택한 속세의 삶은 그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놓아주지 않았다. 부처님 역시 부처가 되고자 세상에 나왔으나 부처가 되기 전 먼저 스스로 선택한 속세의 삶을 온전히 살아야 했기에 ‘왕자’로써 29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에 비로소 출가를 하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카필라국의 왕자 싯다르타’라는 세속의 몸을 선택한 이상 그것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중인도 최고 부자에 바라문 ‘가섭’ 가문의 종성이라는 세속의 몸으로 태어난 이상 마하가섭 역시 온전히 살아야 하는 삶이 있었다. 하지만 ‘아들’로써의 마하가섭은 부처님보다 저항정신이 훨씬 뛰어났다. 뒤늦게 아들을 얻은 마하가섭의 부모는 그가 성년이 되자 결혼을 서둘렀다. 하루 빨리 손자를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하가섭이 바라문 계를 수계한 8살 이후로 4가지 베다와 그림, 글씨, 산수, 웅변, 무술, 천문학 등 세상에서 배워야할 일체의 모든 지식과 제사법을 빠짐없이 가르쳤다. 그리고 가르치는 대로 흡수하는 놀라운 지식과 지혜를 지닌 아들에게 감탄하였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아들이 자손을 남기길 바랐다.
하지만 원래부터 남녀의 애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마하가섭은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강요를 피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조건을 걸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완벽한 여인을 실물크기의 황금으로 빚은 뒤, 이 황금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이 아니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발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 역시 마하가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인도 최고의 부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감히 결혼을 피하기 위해 실물크기의 여인을 순금으로 조각할 수 있겠는가.
최고의 공예사가 빚어낸 황금조각상의 여인은 실로 인간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마하가섭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다소 과소평가했다. 황금조각상을 본 마하가섭의 부모는 조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아들의 배필로 맺어주기 위해 인도 전역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비사리에서 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