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한 청년은 궁금했다. ‘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일까?
청년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는 말은 약자에게 왜곡될 수 있는 가르침이며, 사회에서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불교학을 시작했고, 유식학을 전공했다.
<유식불교의 이해>는 저자 목경찬 교수가 20여 년 유식학 연구 끝에 얻은 해답을 쉽게, 정말 쉽게 풀이해 놓은 책이다. 책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고(一切唯心造), 오직 식뿐(萬法唯識)임을 밝히는 유식사상을 보통 사람의 상식선에서 설명하고 있다.
유식사상은 유식무경(唯識無境), 즉 오직 식만 있고 대상은 없다는 말로 대표된다. 저자는 “유식무경의 식(識)은 일체유심조의 심(心)과 같은 뜻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즉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는 말이나 ‘오직 식만 있고 대상은 없다’는 말은 같은 뜻이라는 설명이다.
“유식무경에서 ‘없다’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은 내가 본 것처럼 그렇게 있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을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 것처럼 그렇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자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한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순간,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덧칠합니다. 내 생각을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으로 세상을 본다’ 또는 ‘내가 인식한 대로 세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본 것이 그대로 있다고 여깁니다.”
저자는 “평소 일체유심조나, 유식무경 또는 만법유식 등을 때할 때 나름대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마음이 세상 자체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음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유는 여럿 있다. ‘모든 것은 식이 만든다’는 말에서 근본이 되는 식이 바로 제8식이다”라고 설명한다.
제8식 가운데 있는 종자가 현행한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기세간(器世間)이라 불리는 것이다. 저자는 “기세간은 나 혼자 펼친 세상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세간은 혼자가 아닌 이 땅에 있는 모든 유정이 나타낸 세상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비록 모든 유정이 나타낸 세상은 각각 다르지만 모습이 서로 비슷해 기세간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많은 촛불이 모여서 방안을 밝힐 때 밝은 공간이 하나로 드러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지더라도 다른 유정들에 의해 기세간은 그대로 유지된다. 비유하면 수많은 촛불이 큰 방안을 밝히고 있다가 촛불 하나가 꺼지더라도 그 방은 여전히 밝은 것과 같이.
누구나 어려워하는 유식을 너무나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책은 ‘인셉션’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예로 들기도 한다. 꿈을 다룬 ‘인센셥’을 통해서도 기세간은 설명된다.
저자는 “어떤 사람은 꿈에서 깨어나 생시로 돌아가지만, 계속 꿈 속에 있는 사람은 꿈이 꿈인줄 모른다. 더욱이 나중에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상황에 이른다. 영화처럼 이 세상은 우리가 함께 같이 꾸는 꿈속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매트릭스’는 저자가 유식 강의마다 강력 추천하는 영화이다. 저자는 ‘매트릭스’를 통해서 꿈을 말한다.
꿈은 제6식인 의식 속에 나타난 것이지만, 비유로서 사용하는 데는 아무 문제없다. 제6식이 꿈을 펼치듯이, 제8식이 이 세상을 펼친다. 제6식이 꿈을 펼치듯이, 제8식이 이 세상을 펼친다. 제6식이 펼친 꿈 속에서 실재하는 공간으로 느끼며 살듯이, 제8식이 펼친 이 세상에서 실재하는 공간으로 느끼며 산다.
“생각해 보자. 꿈에 안팎의 공간이 실제 있는가? 꿈이 아닌 현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8식이 펼친 마음의 공간 속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산다. ‘매트릭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속에서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듯이.”
저자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유식사상을 너무나 어렵다고 합니다. 호기심으로 잠시 다가왔다가 오래지 않아 떠나버립니다. 유식사상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교교리가 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어려운 이유는 사고의 전환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전환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저자는 매사에 의문을 갖고 대하기를 강조한다. 그 의문이 결국 부처님 가르침으로 향해 바르게 나아가는 뗏목이 될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유식불교의 이해│목경찬 지음│불광출판사│1만5000원
[기사 제공 = 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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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식무경(唯識無境 오직 식만 있을 뿐, 인식의 대상은 없다)의 시작은 힌두교의 공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체법(온세상)은 몽환포영로전이라는 것이 우파니샤드의 사상인데 부파불교시대 국가적 대접에 산해진미 가득한 불교승단의 식탁을 탐낸 힌두논사들이 들어와 제법무아를 공으로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일체는 幻일 뿐 오직 식만이 영원한 것이라는 유식사상을 논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논장불교의 시작입니다.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때로는 수보리 유마 등을 내세워 사리붓다 목련존자 아난존자까지 바보로 만들고 이후 대승경전에서는 부처님이 예전에 했던 가르침(니까야 아함)마저 부정하게 한 것입니다.
검색해보면 공을 논한 단어 용어들이 여러 수백개가 넘습니다.
초기불교의 교학은 하찮은 것으로 부정되고 변질되고 사라지고, 일개 論에 지나지 않던 空이 불교를 잠식해 버린 것입니다.
불교공부의 시작은 이러한 불교사상사의 맥을 뚫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이라는 용어가 불교에서 추방될 때, 비로소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위의 책 같은 것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제법이 무아인데 무슨 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무아로는 들어앉아 공양받고 보시받기 어렵다는 탁발을 잊어버린 힌두논사들이 마치 영원한 자아가 있는 것처럼 꾸며 보살에게 기도만 해도 영원히 살고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기 위한 근거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것을 불요의경이라고 해서 요의경(잘 해석이 되는 경전)이 아닌 잘 해석되지 않는 경전을 바르게 논한 것이 논장이고 그 논장 가운데 최고 수승한 것이 우리 부파의 논장이라는 주장을 하다가 결국 불교는 힌두교로 변질되었던 것이 불교사상사의 맥인 것입니다....
SF소설인가요?
시중에 나온 나오고 있는 책을 선별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무상>을 바르게 알려주기 위해 부처님께선 금강경에 일체법(온세상)은 몽환포영로전이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대승경전과 힌두교는 언뜻보면 같은듯 하나 사실은 전혀 다른 가르침이라고 봅니다.
예를들면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대아(大我)와 힌두교에서 말하는 진아는 말은 비슷해도 그 뜻은 전혀 같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같은 윤회를 논해도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윤회와 아트만윤회는 전혀 다른 가르침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론에 나오는 공사상을 살펴보면 있다거나 없다거나,또는 온다거나 간다는 등의 2가지 모양에 대한 집착상을 깨뜨려 주기 위해 여러가지 비유와 논으로 해설 해 놓은 가르침입니다.
아트만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힌두교 같은 종교나 유일신교에 심취한 사람은 절대 이해못할 가르침 입니다.
중생의 업력으로 인해 3계가 형성 되었기에 일체유심조라 하고 제법이 무상하기에 3계가 허망하다고 하는데 비해
유식무경이라 함은 식(識)을 떠나서 다른 세계가 없기에 유식무경이라고 합니다.
결코 대상이 없다고 하지도 않으며 있다고 취착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보여지는 대상, 즉 물질이나 소리도 식과 같은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르다고 할 수가 없기에 유식무경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무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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