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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태수) - 염정아(수현)
조진웅(석호) - 김지수(예진)
이서진(준모) - 송하윤(세경)
윤경호(영배)
영화로서의 재미는 차치하고,
이 영화가 마음에 든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관계갈등과 자존감, 그로부터 드러나는 심리선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개는,
오랜 친구들과 그들의 와이프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수신되는 내용들을 모두에게 공개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모티브에서 시작된다.
결국, 끝에 가서는 스마트폰이 공개되면서 벌어지게 된 에피소드들은 모두 가상이었다 식의 마무리로 끝이 나지만,
나는 이걸, 두 개의 현실 이라고 생각하면서 봤다, 즉,
스마트폰(비밀)을 공개했을 시의 현실 vs 스마트폰을 공개하지 않았을 시의 현실
서로의 비밀이 털릴 때와 털리지 않을 때,
각 부부의 면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해 보면 인간의 심리란 게 참 재미지게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관계 갈등에 놓여 있고,
또한, 자존감이 저하돼 있는 상황이다.
유해진 은 가부장적인 인물로,
아내의 과실(음주운전)을 가장(남자)의 책임감으로 뒤집어쓰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해 자신(과 가족)에게 피해를 입힌 아내를 못내 미워하고
그게 태도와 행동으로 드러난다.
아내를 미워하니 애정까지 식어버려 각방을 쓰고 있고,
어쩌다 알게 된 50대 여성의 벗은 몸을 텔레그램으로 수신하면서 일탈하고 있지만,
현자 타임이 오고 나면, 자신의 추함을 자책하며 자존감의 추락을 경험한다.
염정아 는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자아가 거의 전부인 사람이다.
음주운전으로 남편을 대신 자수시킨 후(남편의 자의였음에도 불구),
남편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식어버린 남편의 마음에 괴로워하며
그 빈 공간을 채우고자 시 낭송 모임과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캐릭터가 특히나 흥미로운 이유는,
부부관계의 단절 상황에서 탈출구로 찾은 것이, 그 어떠한 일탈이 아닌,
연애 시절 남편과의 만남들을 떠올리며 블로그 상에 소설을 연재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즉,
남편과의 좋았던 시절을 소설로 재현하며, 혹은 가상이지만 더욱 키워나가며 현실 세계의 빈 공간을 채운다는 건데,
이로 미루어 짐작해보건데,
이 캐릭터의 자아는,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위주로 쓰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캐릭터들의 자존감은, 그 누군가와의 관계로부터 규정되어 지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런 걸, 관계의존적 자존감이라 칭하는데,
이를테면, 남편과의 관계가 좋을 때,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을 때, 자존감은 최상이 되고,
그 반대일 때, 자존감은 급락하게 된다.
스마트폰이 까발려진 현실에서,
남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염정아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모습과,
스마트폰이 보호된 현실에서,
부부 간의 관계가 다시 정상화되며 그녀의 자존감이 상승하게 되는 모습 양자 어디에도,
염정아 개인의 자아가 어떠한 모습인지에 대한 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꿈이 뭐냐고? 그런 건 학생 시절에나 물어보는 거 아냐?'
김지수와 친한 듯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속으로는 자신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를 부러워하며 질시한다.
이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삶이 전부인 자신과 비교하여,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나 개인에 대한 자아가 강한 주체적인 김지수의 대한 무의식적 열등감의 발로이리라.
김지수 는 앞서 얘기했듯, 염정아와는 거의 정반대의 캐릭터다.
그 누구보다 빨리,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지만,
나 자신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아의 대부분이 '나'라는 개인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이다.
대학 시절 애를 가지게 돼 너무 일찍 결혼하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있으며,
그것이 과오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딸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고 엄격하게만 대하려 한다.
원래부터 부잣집 딸에, 자신은 정신과 의사, 남편도 의사, 공부 잘 하는 대학생 딸을 둔,
제3자가 보기엔 그야말로 완벽한 캐릭터이지만,
남편의 친구와 불륜관계에 있으며,
그 친구의 아내가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이쁘다는 것에 열등감을 지니고 있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는 상황이다.
연인의 어린 아내에 대한 질시와 낮아진 자존감의 영향일까.
자기파괴적 행동일 수도 있는 스마트폰 까기 게임을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자신을 두고 어린 여자와 결혼해버린 이서진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둘 다 죽자의 심정이 내재돼 있어 보임)
조진웅 또한 제3자가 보기에는 복에 겨운 캐릭처럼 보이는 조건들을 지니고 있다.
본인은 성형외과 의사, 아내 또한 의사에 부잣집 사위, 공부 잘 하고 이쁜 딸래미.
하지만, 만성적인 자존감 저하 상태 에 놓여져 있는데,
왜냐하면, 있는 집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갓집에서 오래토록 하찮은 존재로 취급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란 상대적인 것 이기 때문에,
내가 상위 1퍼센트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내 주변이 온통 상위 0.1퍼센트로 가득하다면,
수많은 나보다 못 한 남들보다, 몇몇의 나보다 잘 난 지인 때문에 자존감이 박살날 수 있다.
조진웅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내의 집안 사람 전부, 나를 하찮게 생각하는데 아내라고 날 존중하랴라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썩어가던 그의 멘탈을 한 방에 날라가게 한 무려 콘도 20채(!!) 분양 사기 사건의 전말 또한,
조진웅의 만성적인 자존감 저하로부터 야기된 것으로,
돈 없는 집안 출신이라며 자신을 하찮게 보는 처갓집 사람들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고 싶은 과욕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 하고
위기에 몰린 도박꾼이 온갖 빚을 끌어보아 올인 배팅하듯 그렇게 투자한 것이리라.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부를 걸었는데, 그마저도 완벽하게 실패하게 된 것.
조진웅은 은근히 무시하고 있던 정신과 진료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된다.
'당신 가슴이 내가 본 가슴 중에 제일 이뻐'
라고 아내를 북돋아주지만,
정작 아내는 그가 아닌 불륜관계에 있는 그의 친구 때문에 가슴 수술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어린 여자와 결혼하게 된 이서진에게 잘 보이고자 말이다.
좋은 사람이며,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모든 것을 가진 캐릭터이지만,
모든 등장인물 중에 가장 최악의 상황 에 놓여 있는 사람이다.
이서진 또한 조진웅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
조진웅이 돈 있는 처갓집에게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숙원(결국엔 실패)을 지니고 있듯이,
이서진은 선장님 아들, 부잣집 아들로서가 아닌, 이서진 본인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하는 숙원이 있다.
아버지의 부를 물려받아 잘 사는 재수 좋은 놈이 아닌, 아버지도 부자지만, 아들은 그보다 더 능력 있는 존재
로 비춰지고 싶어하는 건 부잣집 도련님들의 공통적인 심리다.
하지만, 본신의 능력이 부족할 시, 그들의 이러한 욕망은 곧잘 열등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
아버지나 집안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위치와 세간의 평가를
한 방에 뒤집고자 무리한 사업을 벌이는 경우들이 잦지만,
능력 부족과 경솔함으로 인해 실패하고 '아버지 재산 철없는 아들이 다 말아먹었네' 레파토리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이서진이 바로 이 경우로, 수많은 사업 실패로 인해 아버지 재산을 다 말아먹고(결국엔 실패),
결국엔 부잣집 딸을 만나 처가의 돈으로 레스토랑을 차려 먹고 사는 형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략 바람둥이에 날라리/한량 같은 캐릭터로 자리잡고 있는데,
그 캐릭터 때문인지, 본인의 사업 실패마저 술자리의 안주 취급을 받으며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실상, 사업 실패는 자아 실현의 실패나 마찬가지로 이서진에게는 아킬레스건에 해당 하기 때문에,
서로 웃으며 얘기해도 그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또한, 이서진이 계속해서 사업을 벌이는 건,
부잣집 2세로서의 독자적인 존재감 입증의 숙원 뿐만이 아니라,
공부 잘 하고 잘 나가는 친구들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시키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바닥을 친 그의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일은 유일하게, 여자들을 만나 자기 것으로 만들 때일 뿐.
친구의 아내를 만나는 것 또한 이의 연장선상으로,
'봐라, 공부 잘 하고 잘 나가는 니들은 항상 날 비웃지만, 난 맘만 먹으면 니네 여자들도 뺏을 수 있어'
와 같은 공격적 사디즘이 내재돼 있다랄까.
송하윤 은 이 집단의 new comer이기 때문에, 또한, 이서진과의 관계도 얼마 돼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 갈등과 내적 갈등이 가장 적은 캐릭터이다.
원래, 개인의 즐기는 삶에 만족하며 그를 지향하는 캐릭터였지만,
이서진에게 빠져 현재는 일시적으로 이서진과의 관계에 어느정도 종속된 삶 을 살고 있다.
(일시적으로 관계의존적 자존감을 지니게 됨)
스마트폰이 공개된 현실에서,
점 찍고 나타난 장서희마냥 갑자기 화장을 하고 나타나 이 집단에 썅욕을 하며 떠나는 모습을 보이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따르지 않고 욜로를 삶의 목표로 삼는,
이 시대의 젊은 세대들을 표현하려고 하나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러니까, '혼자 즐기는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여, 결혼은 이런 것이니 꿈에서 깨어나거라' 같은 논조랄까.
마지막으로, 윤경호 는 FM머신 같은 캐릭터이지만, 게이이다.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이셨고, 본인도 교원 부친의 슬하에서 정석대로 자라왔다.
그야말로 올바른 길만 걸어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게이니까, 내적 갈등은 그야말로 상상을 불허할 정도 일 것이다.
전처와 이혼하며 게이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여전히, 자신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에 본인의 성정체성을 숨기려 한다.
오랜 친구들에게조차 커밍아웃을 극도로 꺼린다.
완벽한 타인.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비밀이라는 선 하나만 넘으면, 완벽한 타인이 된다는 스토리.
모든 관계는 장점과 단점을 지닌다.
그리고, 그 장점들은 익숙함이란 명목으로 잊혀지며,
단점들은 갈등으로 나타나거나, 진짜 심각한 일들은 비밀을 생성시키면서 수면 아래로 잠재워진다.
그렇다.
결혼은 타인들이 만나, 가족이 되는 일이다.
타인들이 가족이 되는 건 사랑이나 서로에 대한 존중심으로써 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랑이나 존중이 있었던 관계에서 그것들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사랑이나 존중이 없으면 부부로 살아가기가 너무나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각자가 가족으로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에,
이제는 타인이 돼 버린 채로, 각각이 비밀들을 만들어가며 결합을 유지하는 것일 뿐.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상대방에게 사랑과 존중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은 딱히 비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염정아, 조진웅, 송하윤.
반면, 사랑과 존중이 없는, 또는 잃어버린 캐릭터들에게는 치명적인 비밀이 있다.
두 명 이상의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이서진,
남편의 친구와 불륜 중인 김지수,
50대 여성과 음란한 사진을 매개로 소통하고 있는 유해진.
결혼은 운전과 비슷해서,
나만 잘 한다고 끝이 아니다.
내가 정석으로 운전해도, 맞은 편에서 미친 척 들이 받으면 끝이듯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을 사랑해도,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비밀을 만들게 되면,
그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디 엔드가 돼 버리니까.
결국엔 넷 중에 하나다.
1. 혼자 살거나,
2. 서로가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천생연분과 결혼하거나,
3. 헤어지거나,
4. 비밀을 끝까지 들키지 않은 채 살아가거나
이 영화의 평점이 높은 이유는,
첫번째인 사람들은 와 역시 혼자 사는 게 답이다 라는 생각에 기뻐서,
세번째인 사람들은 와 역시 헤어지는 게 답이다 라는 생각에 기뻐서,
네번째인 사람들은 와 역시 대부분 다 저렇구나 라는 생각에 기뻐서,
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보고서 뭔가 싶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깔끔하게 이해되었습니다.
조진웅만 너무 불쌍해요;;; 와이프 젤친한친구랑 바람피고 돈 사기당해서 다 날리고 ㅠ
부자집 아들들의 공통적인 숙원 와닿네요. 전 기업의 아들딸래미나 몇몇 있는집 사람들의 갑질을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
동의합니다 글에 이 내용을 첨가시키면 좋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당
잘읽었습니다ㅎㅎ 단순 웃고 넘길 영화는 아니었네요.. 숨은 뜻이 많은거 같습니다.. 상대방에게 사랑과 존중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은 딱히 비밀이 없다.. 저도 이렇게 살아야 할텐데ㅎㅎ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모든 케이스의 사람들이 기뻐서 평점이 높을 수 있다는 점이 와닿네요.
다만 기쁨의 이면에는 안도나 공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훌륭한 리뷰입니다..
무명자님의 이글 12월에 올리신 거 알았는데, 스포일러 써있길래 미뤄두었다가 영화 본 후 이제야 읽었습니다. 영화를 재밌게 본 만큼 무명자님의 이 심리글도 너무나 흥미로웠네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