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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Fort Williams Historical Park 에 왔다. Thunder Bay 를 방문하면 꼭 한 번은 들려야 할 곳이다. 코비드 19 전염병으로 오랫동안 문을 닫고 있다가 지난 7월부터 겨우 문을 열었다.
Visitor Centre 의 웅장한 건물도 의외로 아주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은 정말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여기서부터 Natural Way 를 따라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Fort Williams 의 입구에 도달한다.
좌우로 고비나물이 가득한 길이 계속된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잘 자라는 고비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끝없이 사방이 전부 고비만 널려있는 곳은 처음 보게 된다.
Ostrich Fern. 양치류 식물인 고비이다. 우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고비나물이다. 게시판에 고비에 대해서 설명이 실려있다. 고비는 날로 먹기도 하고 기름에 볶아서 먹기도 한다고 한다. 봄에 나오는 고비의 동그랗게 돌돌 말려져 있는 고비나물의 대가리인 Fiddlehead 는 서양의 Market 에서도 이른 봄에는 가끔 볼 수 있다. 고비를 아스파라거스처럼 삶으면 갈색으로 변한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인디언들은 고비의 뿌리를 삶아 말려서 이질병 (Dysentry) 치료에도 사용했단다.
봄철의 자그마하게 자라나는 고비가 아니고 지금은 늦여름까지 마구 자라서 키가 엄청 큰 고비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Zenia 가 고비 밭에 들어가서 고비들이 얼마나 튼튼하고 왕성하게 자랐는지 키를 재어 보고 있다.
10~15분 정도의 고비 천국(?) 을 지나오면 이곳에 살았던 인디언 Village 가 재현 되어 있다. 동물의 가죽이나 버취나무 껍질로 덮여진 PeeWee 텐트가 세워져 있고 일상의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다.
모두가 방문객 전시용이지만, 건조하기를 기다리며 햇볕에 말리고 있는 모피들도 널려있다.
방문객들이 PeeWee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이 분은 지금 인디언 마을에 나타난 흑곰과 친구가 되었다. 흑곰의 털 가죽을 커다란 막대기에 얹어 놓아서 뒤에서 보면 정말로 흑곰이 서 있는 것 같다.
여러 명의 인디언들이 둘러앉아서 White Birch 나무껍질에서 마대 같은 굵은 줄을 뽑아내고 있다. 방문객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설명도 하고 하는데 거의가 백인들로 보인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 나면 왜 백인들과 인디언들의 혼혈이 일찍부터 많았고, 그래서 후대로 오면서 백인 같은 인디언들이 꽤 많은 이유도 알게 된다.
그리고 곧 나타나는 Fort Williams Historical Park.
성채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는 잔잔한 카미 (Kaministiquia) 강이 흐른다. 5 대호의 끝부분인 서쪽 Superior 호수에서 동쪽으로 4개의 다른 호수들을 더 거치고 St. Lawrence 강을 따라서 대서양까지 그리고 유럽으로.... 모피의 집결지인 이곳에서 먼 유럽으로 실어 보내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부를 맛보던 때였다. 유럽에서는 귀하고 비싼 Beaver 의 모피가 아메리카 대륙의 추운 북쪽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북미에서 구입한 모피를 유럽으로 실어다가 무려 20배에 넘겼다. 떼돈을 벌어들이는 황금 덩어리인 것을 알게 되자 무역상들이 모여들었고, 이곳에 모피무역의 중심이 되는 Fort Williams Fur Post 를 세우게 되었다.
성벽을 높은 통나무로 단단히 만들어 놓았는데 모피를 약탈 당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대단하였을 것 같다.
입구를 들어서자 중앙의 넓은 광장 건너에 Great Hall 이라 불리는 본관 건물이 보인다. 본래는 이곳에서 60Km 남쪽으로 국경 너머에 있는 Minnesota 주의 Grand Portage 마을에 The Northwest Company 로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자 1796년에 Canada 와 국경을 확정 짓게 된다. 그 후로 미국의 Tax 를 피해서 새로운 집결지 (Major Depot) 가 필요하게 되어 북쪽 Canada 의 Thunder Bay 에 Fort Williams Fur Post 를 1816년에 새롭게 세우고 모피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의 복장을 하고 열심히 1800년대의 상황과 모피무역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안내원. 모두들 2m 간격을 유지하고.
가운데는 본관 건물 (Great Hall). 왼쪽 건물은 무역상들이 머무르던 건물. 오른쪽은 손님을 접대하는 Servant 들이 있던 곳.
(빌려온 사진 : 1865년의 사진). 17세기부터 유럽의 이주민들이 살기 시작한 미대륙에서 동부지방의 북쪽에 자리 잡고 살던 불란서 이주민 (French Canadian) 들이 모피무역을 주도하게 된다. 그들은 모피 집결지를 서부와 동부의 중간지역, 그리고 Beaver 를 비롯한 추운 지방의 동물 모피를 쉽게 제공하는 지리적 이점이 있는 Thunder Bay 로 잡았다. 그리고 이곳은 kaministiquia 강과 5 대호, St. Lawrence 강을 따라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모피로 시작을 했지만 나중에는 곡식을 비롯해서 여러 교역의 중심지 역할도 하게 된다.
예부터 모피는 매우 추운 지역의 포유류 동물의 가죽이 가장 값어치가 있다. Columbus 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약 80년 후인 1578년에 아메리카 대륙의 북동쪽 끝의 거대한 Newfoundland 섬 해안에는 불란서의 고기잡이 어선들이 350척이나 몰려있었다. 엄청난 대구잡이 황금 어장이었던 곳이다. 그들은 유럽에서 가져온 금속 제품의 도구들, 특히 칼을 인디언들에게 주고 비버 (Beaver) 털 가죽을 넘겨받았다. 북해를 항해 중 지독한 추위에 뜨거운 물통을 비버의 털 가죽으로 씌워 놓으면 최고의 보온통이 되었다. 그리고 털 가죽을 붙여서 이불을 만들어서 덮으며 항해를 이어갔다. 이것이 모피무역의 시작이다. 돌을 갈아서 쓰던 석기시대의 칼에서 금속으로 만든 날카로운 칼을 받아든 인디언들도 환호했다.
Fur Stores. 모피 판매소.
뉴펀드랜드 인근의 바다에 넘쳐나는 대구 (Code) 를 잡아서 운반하던 어부들의 보온 물통, 보온 담요를 본 유럽의 모피 무역상들이 미대륙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리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Beaver 털 가죽의 모자와 외투가 부의 상징으로 인기를 끌자 더 많은 무역상들이 대서양을 건너왔다.
Beaver 는 길이 1.3m, 최대 몸무게는 35 Kg 으로 쥐과에 속하는 동물 중에서는 2번째로 몸집이 크다. 카나다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비버의 털을 압축해서 만든 펠트 모자가 부의 상징이었다. 따뜻하고 멋지고 탄력과 윤기를 보이는 펠트 모자와 외투.
비버 (Beaver), 물 족제비라 불리는 수달 (Otter), 목도리를 많이 만드는 담비 (Marten), 여우 등의 모피들이 가득하다. 당시 유럽에서 쓰던 러시아 시베리아산의 비버보다 덩치가 더 크고 질이 좋은 북미의 Beaver 는 고급품의 상징이었다. 더구나 한정된 수량이었던 유럽의 Beaver 공급이 거의 멸종상태에 이르렀기에 더욱 미대륙으로 발 길을 돌렸다.
유럽으로 실려갈 날을 기다리는 완벽히 준비된 모피 포장 더미가 가득하다.
Observatory Tower. 전망대도 있었나 보다. 전망대라기보다는 경계를 위한 초계탑이다.
저기 아래에 걷고 있는 분 모피를 사러 멀리서 오신 분 같구나.
Guides House. 여기는 모피 무역상들을 안내하는 안내원들의 숙소였다.
Hospital. 넓고 커다란 지역에 오고 가는 여러 사람들이 많았으니 병원도 필요했었나 보다.
병실의 내부.
옥수수 등 곡식 가게도 있었고, 인디언들이 만든 수공품을 판매하는 Indian Shop 도 있었다. 모두가 무역상들을 상대로 한 도매 가게들이다.
Beaver 의 엄청난 희생으로 어머어마하게 부를 쌓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아메리칸 모피의 설립자인 미국의 John Ester 는 유명하다. 1800년대 중반에 2천만 달러의 거부가 되었다. 200년 전의 2천만 달러는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250 Billion Dollars 나 된다. Bill Gate 재산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973년에 재건축하여 역사 공원으로 문을 열은 Fort Williams Historical Park 는 25 에이커 (3만평) 의 대지에 세워졌고, 주위의 전체 대지까지 모두 250 에이커 (30만평) 이다. 46개의 건물과 재건된 인디언 Ojibawa 부족 Village, 그리고 작은 농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장간, 양철공, 목공소, 총포 등등의 여러 건물들 가운데에 우물도 보인다.
총기도 만들어서 팔았는지.... 총포상에서 열심히 설명하는 안내원. 모피 교역에 관한 해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 외의 여러 가지 당시의 문화부터 수공품에 이르기까지 전반을 보여 주는 곳이다.
넓은 공원 안에는 당시의 식량 가게 (Provision Store), 보석가게 (Stone Store), 화물선이 들어오는 선창 부두, 야영지까지 모두 당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와 ~ 감옥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면 몹쓸 죄를 짓는 죄인도 어느 곳에나 당연히 있을 것이다. 죄수들을 가두어두는 감방이 여섯이나 된다~ 누구 한 사람이 지금까지도 수감 중인가 보다!!!
무역상들이 묵어가는 숙소 건물.
재력이 있는 무역상들이기도 하지만, 모피를 구매하러 온 무역상들의 침대 아래에는 거대한 모피를 깔아서 환대하였다.
이렇게 황금알을 낳던 모피무역도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한다. 유럽의 변화하는 Fashion 은 모피 가격의 폭락을 가져오면서 모피의 인기는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유럽에서는 Silk 모자가 인기를 끌면서 Beaver 의 멸종을 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Beaver 를 너무 남획하여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환경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가뭄도 자주 오게 되는 기후변화를 겪으면서 동물의 보호가 강화되었다. 현재 카나다에는 아직도 약 8만 명의 사냥꾼이 있는데 그중의 절반은 원주민들이다. 지금은 토끼 등 몇몇 동물을 제외하고는 직접 사냥하여 모피를 제작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Fort Williams 정중앙에 위치한 본관 건물이다.
이곳에서 무역상들과의 상담도 진행되었고, 무역상들을 위한 커다란 연회도 열리고 했던 본관 건물이다.
연회장의 중앙에 위치한 벽난로 위에 있는 사진이 주인이었던 당시의 무역 갑부 William 의 초상화이다.
이곳의 안내원이 설명을 이어간다. 모피무역은 프랑스인들이 오래전부터 시작하였고 그 후에 Scottish 모피 무역상들이 늦게 뛰어들었다. 그때의 상황이 그러하듯이 William 은 French Canadian 으로 동부지역의 Quebec 주 Montreal 의 재력가로 이곳에 모피무역 거래소를 차렸으나 그 자신은 여름철 8월에만 이곳에 거주했다. 매해 뜨거운 여름철의 8월에만 거주했는데 그래도 그의 방에는 항상 보온통 이상으로 강렬한 열을 내는 보온연탄통이 항시 준비되어 있었다. 보온연탄통을 침대의 이불 속으로 집어넣는 모습을 보여준다. 뜨거운 끓는 물이 아니라, 아예 시뻘건 조개탄을 집어넣은 연탄통이다. 벽에 걸려있는 2개의 장총을 가리키며 저것도 관리인들이 가득해서 전혀 필요치 않았지만 계속 걸려있었단다.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넓은 역사 공원을 다 보지는 못했다. 점심시간도 벌써 지나가 버렸고 주요한 건물들은 대체로 여러 곳을 둘러보았으니 이제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처음 들어올 때에 보았던 인디언 후예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당시의 항해와 마차여행으로는 끔찍하게 길고 긴 여정이었다. 장기간으로 오래 머물면서 여행이 길어지자 무역상들은 이곳에 현지처를 두기 시작하였다. 항해를 오래 하는 불란서의 항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현지 아메리칸 원주민의 추장, 족장등 상위 계급의 딸 들이었다. 이들 유럽인들과 아메리칸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을 메티스 (Metis) 라 부른다. 백인 교육도 받고 원주민 언어도 교육을 받으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여러 세대가 지나고 지금은 완전히 백인 같아 보이는 인디언이 상당히 많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마셔서 배가 불러야 온갖 것이 좋은데... 흥미와 재미가 만점이고 주변의 경관도 말할 수 없이 다 좋은데 지금 우리는 매우 시장하다. 들어왔던 고비 밭을 지나가는데 고비나물 생각이 나기도 하고.... 어서 Visitor Centre 의 식당에서 멋있는 정원을 바라보며 점심을 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와 ~~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이 곳곳에 뻗쳐있다. 여기도 지금은 아무것도 제공하는 것이 없다. 점심은 커녕 커피 한 잔도 없다.
Thunder Bay 에서의 마지막 행선지인 Pigeon River 주립공원으로 가는 61번 길을 달리고 있다. 이 길로 60Km 지점에 주립공원이 있고 미국 국경 너머에는 Minnesota 주의 Grand Portage 마을이 있다. 호수로 흘러내리는 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미네소타의 주립공원이고, 강 건너 북쪽은 온타리오의 주립공원이다. Travel Information 직원이 얘기하여 주었듯이 아름다운 전원과 산들의 풍경을 보여주는 좋은 드라이브 길이다. 60Km 를 더 가서 국경을 넘어서도 계속 Duluth 까지 300Km 를 더 내려가는 61번 도로가 전부 Scenic Drive 라고 지도에 나와 있다. Superior 호수 주변의 길들이 모두 Scenic Drive 이다.
불요불급한 자동차의 국경이동 금지. Canada 쪽의 국경 검문소이다. 여기서 더 이상 갈 수도 없지만 바로 여기에 Pigeon River 주립공원 입구가 있다.
공원의 게시판에 Garlic Mustard 에 관해서 쓰여있다. 본래는 유럽으로부터 식료품 채소로 들어왔으나 북미의 산림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식물이 되었다. 이곳에 Garlic Mustard 가 서식하고 있으니 전파를 막기 위해서 Trail 을 시작할 때와 끝을 내고 떠날 때에 철저히 신발에 묻어있는 흙을 털고 가기를 권하고 있다. 사람들은 Garlic Mustard 를 Herb 로 먹지만, 동물이나 어느 곤충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식물이다. 그런데 이놈의 번식력이 어마어마하다. 1 평방 미터 정도의 넓이에서 자라는 놈들이 6만 2천 개의 씨를 만들어 뿌리는 무지막지한 번식력으로 급속히 성장하면서 주변의 다른 식물들을 초토화 시킨다.
Garlic Mustard 는 보통 40~60 Cm 정도로 자라는데 두 배까지 더 크게 자라기도 한다. 봄철에 새 잎에서 마늘 냄새를 피우며 자라고 흰색의 꽃을 피운다. 이놈들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째 뽑아서 밀봉해서 버려야 한다고 한다. 오래전 유럽에서는 사랑받던 식물인데 광활한 북미 대륙에서는 무한정 번식하며 마구 영역을 늘려가는 놈이다. 좁은 땅과 인구 밀도가 높았던 유럽에서는 적절하게 관리가 되었는데 이곳 북미에서는 거리낌 없이 마구 영역을 넓혀가는 놈이다.
Finger Point Lookout. 바로 앞에 있는 섬이 미국 Minnessota 주에 속한 Isle Royale 섬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은 Grand Portage 육지에서 늘어져 나온 반도이다.
(빌려온 사진) 여기 주립공원에도 30m 높이의 폭포가 있는데 Trail 을 따라서 꽤 올라가야 한다. 미국의 Grand Portage 주립공원과 함께 공유하는 강가에 있는 폭포인데, 우리는 해안가의 다른 Trail 에만 잠시 들리기로 한다.
커다란 Superior 호수는 북쪽으로는 Canada 의 Ontario 주와 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미국의 Minnesota, Wisconsin, Michigan 등 3개의 주들과 접해있다. 이제 여기가 우리의 호숫가 여행의 끝 지점이 되었다. 내일은 다시 Sault Ste. Marie 로 하루 종일 달리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토론토의 바로 4시간 북쪽에 위치한 Sudbury 가 마지막 코스가 된다.
Lake Superior 의 아름다운 호숫가 북쪽의 반을 돌아다녔다. 호숫가 Circle Tour 의 남쪽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간 후의 숙제로 남았다.
마음따라 길따라 (더 자세히 보시려면)
첫댓글 여행정보 감사합니다.
물개님, 안녕하시지요?
감사합니다.
이 많은 여행정보와 사진들에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여행정보라기 보다 그냥 다녔던 곳을 일기 형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와~~~ 이런 세월 속에서도 멋진 영행을 하시었네요.
마음 따라 거니는 길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천천히님, 잘 지내시지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