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낙수(落穗)
한국교육평과정가원이 주관하는 수능은 전 국민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 대학 입학을 위한 예비고사에서 학력고사로 바뀌었다가 수학능력시험으로 변천했다. 나는 뒤늦게 예비고사를 봐 교육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학력고사를 거쳐 야간대학에 진학해 초등교사로 재직하면서 학부를 다시 마쳤다. 중등으로 전직했더니 수능 관련 교과를 지도하고 시험일엔 감독관 임무를 수행했다.
해마다 십일월 셋째 목요일은 수능일로 정해졌다. 십여 년 전 부산 해운대 누리마루에서 열렸던 APEC과 그 이전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 개최일이 그 기간이라 수능은 예년에 비해 한 주 연기해 치른 적 있었다. 그때는 미리 연기된 일정이 잡혀 무난했는데 삼 년 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혼란을 가져왔다. 수능 직전 예비소집일 지진이 발생해 불가피하게 한 주 연기해 치렀다.
올해는 코로나로 각 급 학교 개학이 미루어지다 사월이 되어 온라인 원격수업을 시작했다. 오월이 되어 고3은 매일 등교했으나 다른 학년은 격주 등교로 한 주는 집에서 화상 수업을 받았다. 시월 말이 되어서야 전 학년 등교가 이루어졌는데 최근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걱정스럽다. 당초 십일월 셋째 주 치를 예정이던 수능은 두 주 연기해 십이월 첫 주 목요일로 미루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당초 일정은 수능일이 될 십일월 셋째 목요일이다. 다음 주 목요일부터 수능 고사장 방역 관계로 전 학년이 원격수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나는 지난해부터 수능 감독관에서 면제되어 수능 날에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남녘 해안 트레킹을 나서볼까 한다. 수능이 다가오니 지난 날 근무했던 학교에서 있었던 낙수가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창원에서 두 곳 근무지를 거쳐 거제로 왔다. 교육단지 여학교에선 내게도 감독관 업무가 주어졌다. 시험실로 들어가는 정 감독관이나 부 감독관 임무가 아니라 수월했다. 교문에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일이 맡겨졌다. 나와 같은 연령대 동료는 교실 바깥 순찰이었다. 그는 3교시 영어 듣기방송이 나오는 시간은 뒤뜰에 높이 자란 소나무에 까치 날아와 울어대 신경 쓰이더라고 했다.
그 이전은 봉림동 주택지 복판에 자리한 학교에 오 년 근무했다. 그때도 수능일이면 시험실 감독관이 아닌 복도나 대기실 감독을 했다. 그곳에는 학교와 낮은 울타리로 이웃한 주택에 아주 사나운 진돗개를 키웠다. 평소 발자국 소리만 나도 그 개는 컹컹 짖어대 학교에선 수능일 특별 관리대상이었다. 학교에서 누군가 사전에 주인을 찾아가 양해를 구해 수능일 어디로 옮긴 듯했다.
이십여 년 전이다. 지금은 피우지 않는다만 그때 담배를 즐겨 피웠다. 흡연 량이 상당해 하루 두 갑까지 피웠다. 그 당시는 교내에서도 흡연이 가능했던 시절이라 교사 휴게실은 재떨이가 비치되어 담배연기로 실내가 자욱했다. 수능일 2교시 수리 영역은 감독 시간이 꽤 길어 담배 유혹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감독을 마치고 난 휴식 시간에 두 개비나 연이어 피운 적도 있다.
수능 감독관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 감독관이 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인근 학교로 파견가기도 한다. 어느 해는 창원과 마산이 서로 교차해 감독을 할 때였다. 나에게 배정된 학교는 마산에서 가장 먼 곳인 가포까지도 가봤다. 김해 장유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중학교 교사에게 수능 감독관 요청이 와 불려갔다. 창원에서 대중교통으로 새벽길을 나서 김해 시내까지 가기도 했다.
고3과 재수생 수가 줄어 수능 수험생은 해마다 줄고 있다. 대학에서는 입학 전형에 관계된 이들은 신입생 유치에 안간힘을 쓴다. 지방 소재 대학은 소멸 위기 경고등이 켜졌다. 내 교직 생애는 내년 한 해 남았다. 그간 교단에서 무엇을 남기는지 물어오면 선뜻 답할 거리가 없다. 예전 근무했던 어느 학교 교무실 벽면에 걸린 글씨가 생각난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