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0th, 2007
누가 런던 아니랄소냐, 역시나 비가 온다.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푸르에서 13시간여를 날아와 도착한 런던 히드로 공항.
까다롭기로 유명한 입국장에 줄을 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왠지 나도 긴장이 되는 걸.
웁스, 이제 내 차례닷!
서른 중반쯤 되보이는 다소 깐깐해 보이는 영국 처녀가 내게 눈빛을 날리는 군.
hey, come on baby!
데스크 앞으로 다가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영국 처녀의 눈빛이 재빠르게 나를 훑고 있음을 느낀다.
요놈의 기집애가 영국에 완전 눌러 앉으려는 것인지,
불법으로 일을 하며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인지, 숨겨진 낌새를 알아 차리려는 그 눈빛.
흠, 하지만 난 두려울 게 없다고. 이렇게 친히 런던의 관광 수입을 늘려 주러 오신 분이니까.
여권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너 정말 22살인거니?"
"그럼요~"
"얘, 너무 어려보인다. 난 늙어보이는데, 좋겠다야."
어라? 예의상 날려주시는 소프트 모드의 멘트?!
이 언니 breaking the ice에 왠지 도가 트인걸까, 난 벌써 out of nervous.
이로써 그 이후의 입국심사는 목구멍에 시원한 맥주 넘어가듯 술술~
"여긴 왜 왔어? 여행하러?"
"두달간 유럽여행 하려고요."
"와우, 꽤 긴데? 여름 방학으로 온거야?"
"휴학하고 왔어요."
"영국에 와 본 적은 있고?"
"이번이 처음이에요."
"여기에 친구나 친척은 있니?"
친구가 있다고 하자, "너, 남자친구 만나러 왔구나?"
슬쩍 떠보는 이 처녀.
"에엣?!" 순간 당황해 오버하며 강한 부정을 보이자,
키득키득 웃어대며 "it's just for checking out" 이라고,,
이 언니 나를 완전 가지고 놀아주시는 구나,,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이어진 지극히 형식적인 질문들,,
"영국엔 얼마나 있을거야?"
"일주일간요."
"돈은 얼마나 있니?"
"음,, 한 300파운드랑 600유로 정도?"
"두달치고는 생각보다 적은데?" 오호라, 슬슬 의심 들어가는 이 언니,,
그래서 잽싸게 반격, "체크카드 가져와서 괜찮아요."
"그 돈은 누가 대?"
"아빠가요, 알다시피 전 아직 학생이거던요.-_-;;"
"그럼 항공권도 아빠가 사주셨어?"
"네 -_-;;" 여기까지 오자 무슨 취조당하는 것 같다. -_-
"아빠 직업은 뭐니? 엄마는?" 이제는 신상조사,,,
"항공권 좀 보여주지 않으련?"
"영국 다음으로는 어디 가?" 등등등,,
옆에 사람들은 1,2분도 채 안되 그냥 쓱쓱 통과시켜주는 거 같은데,
아이고야, 이 언니, 나랑 대화하는 데 맛 들였다, 맛 들였어.
여유있게 농담을 던지질 않나, 말 끝마다 꼬투리 잡아 질문을 해대질 않나- 이거야 원.
영어 회화 학원 레벨 테스트 보는 느낌이 팍팍 전해져 오는구나야-
하루종일 앉아서 똑같은 질문 해대는 데에 지겨움이 피로처럼 몰렸던 탓일까,,
그렇다고 내가 우루사도 아니고-;;
어쨌던, 이 언니 입국 도장 하난 아주 시원하게 쾅!!! 박아준다.
그리곤 잊지않고 던지는 한마디, "그래~ 즐거운 여행 해~"
하하- 아, 예~
수화물을 찾는 동안 히드로 공항을 둘러본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전해지지 않는 감동의 물결.
세계 유동 인구 최고를 자랑하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면
뭔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찬 감동이 밀려 올 줄 알았는데,,
'엥? 여기가 히드로구나.' 그리고는 끝.
마냥 귀여울 줄만 알았던 튜브를 타도 무덤덤.
튜브 창밖으로 보이는 런던 풍경은 '아, 여기가 런던이구나.' 그러고 끝.
호스텔을 찾아가면서 스치는 런던 거리도, '그냥, 그런가보다.'
어라..? 이상한데..?
왜 이럴까, 밤새 달려온 유럽을 향한 내 열정이 다 소진되어 버린 걸까,,
창 밖으론 비가 내리고, 목은 슬슬 간지러운게 감기가 걸리려는 건지,,
우선 피곤함이나 달래보자.
---------------------------------------------------------------------------------------------------
behind story 하나, 역시나 호스텔 찾느라 오진 고생했다.
무거운 배낭하나 이고, 앞으로는 역시나 무거운 레스포삭, 왼손엔 검정 3단 우산, 오른 손엔 지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는데,
첫 날부터 이게 왠 고생이냐며 혼자서 한탄을 했더랬지.
그래 기억난다, 그 때. 어깨는 끊어질 것 같지, 이미 늦은 시간이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지.
혼자서 얼마나 낑낑-댔는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복귀하야 제대로 된 방향을 찾고 호스텔 무사 안착.
preview : 하지만, 일주일간의 런던은 나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는 거,,,
첫댓글 오~ 대화까지 될 정도로....대단하심다~
저렇게나 많이 물어보다니.. 헉.. 일났네 일났어.
영어 잘하시나 봐요~!!! 저도 열심히 영어공부해야겠어요~!!!
휴~~ 저렇게 많은 질문하면 전 입국도 못할꺼 같네요!!
저만 좀 유별났었던 것 같아요- 겁먹지마시고 출발~만 하세요~^-^
정말..영어를 잘하시나봐요...ㅋㅋ
괜히 척만- 잘 못해요~ ^-^;;
이 글보고 바로 영어학원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드네요~ 회화학원 빨리 알아봐야겠어요 ㅎㅎ
예에~고고고고!
저는 런던 입국심사할 때 50세정도 되는 여자직원인데 단수여권 처음 보았는지 너는 왜 단수여권이냐면서 물고 늘어지는데 한국법에 의하면 단수여권도 가능하다고 했더니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동료 남자직원 부르고 그 남자직원이 "그거 선택사항이죠?" 그래서 그렇다고하니 그때서야 통과시켜주더군요.
하핫^-^;; 여행다니다보면 정말 별 일 다있어요,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