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그때 그 용서할 수 없던 일들 용서할 수 있으리.
자존심만 내세우다 돌아서고 말던 미숙한 첫사랑도 이해할 수 있으리.
모란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듯 삶에는 저마다 제 철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찬물처럼 들이켜리.
한 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로 인해 상처 받은 누군 가를 향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 건넬 수 있으리.
기쁨 뒤엔 슬픔이, 슬픔 뒤엔 또 기쁨이 기다리는 순환의 원리를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너에게 말해 주리.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쉬 너를 보내지 않으리.
밤새 썼다 찢어버린 그 편지를 찢지 않고 우체통에 넣으리.
사랑이 가도 남은 마음의 흔적을 상처라 부르지 않으리.
한 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망설이기만 하다 포기하고 만 금지된 길들 찾아 가보리.
사랑에는 결코 금지될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리.
한 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그때 내 마음 흔들어 놓던 너의 그 눈빛이 일러주는 길을 따라
돈에도 이름에도 그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으리.
너를 위해 다시 한 번 살아볼 수 있다면
지키지 못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으리.
한 톨의 씨앗 속에 나무가 숨어 있듯 절망 속에 숨어 있는 희망을 보여 주리.
다시 한 번 너를 위해 살아 볼 수 있다면
물방울 같은 네 손톱에 물들여 주기 위해 해마다 봉숭아를 내 가슴에 심으리.
한 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널 기다리며 서성대던 영화관 앞을 만날 사람 없더라도 서 있어보리.
영화가 끝나면 밀려나오는 사람들 속에 네 얼굴 찾아보며 가슴 두근거리리.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리.
때로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 다 바쳐 너를 사랑하리.
" 김재진 님"의 [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중에서
<옮긴 글>
첫댓글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만 95세 이상 된 초고령자 50명을 대상으로 이런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인생을 충분히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이분들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적인 답이 나왔습니다.
첫째, 더 많은 모험 (Risk more)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하며 살겠다”는 응답은, 인간은 살면서 실수한 일들에서는 ‘잠시’ 아픔을 느끼지만 아예 실행에 옮기지도 못한 일들에서는 ‘평생’ 후회를 한다는 심리학자들의 연구와도 연결이 됩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20년 후 당신은 실패한 일보다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 일 때문에 더욱 크게 후회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서에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하루 종일 실없이 웃고 살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즉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과감하게 대처하라는 뜻입니다.
둘째, 더 많은 성찰 (Reflect more)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근원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늘 기억하며 살겠다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달리고, 도대체 왜 뛰고 있는지, 한 번뿐인 이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할 겨를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기도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고,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신이라는 절대 사랑과 긍정의 거울 앞에서 항상 자신을 성찰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더 많은 감사 (Thank more)
사도 바울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인들은 화폐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들에만 감사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너무 귀해서 아예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을 영어에서는 “price-less”라고 하는데, 즉 아예 ‘가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온 세상을 밝혀준 저 햇빛과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바로 “price-less”한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가 "나에게 3일 만 볼 수 있게 한다면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나는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말한 헬렌 켈러가 그렇게 간절한 바람이 "3 일만 볼 수 있다면"
이었다니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가 그 셋 중에 하나 '보는 것'을 택한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지요.그러면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나에게 돈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1. 가난한 나라에 학교 하나를 세워 주겠다. 2. 아프리카 저 어느 나라에 샘을 파 주겠다.그리고
세 번째는 어린 아이가 가장이 되어 돌보는 가정에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 고 생각하면서 자식들에게는 한 푼
보태주지 않겠다 생각하여 보았습니다.지금까지 키워서 자기 몫을 하는 데까지 지원한 것으로 자위하며 살겠다가
저의 답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초고령자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른 답을 보면서 나의 바램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