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식 전 고대총장 저서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 에서 펌] "傲氣와 雅量"
젊고 발랄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자주 반항하는 것은 비단 오늘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철저하던 옛날에도 아비와 자식 간에 화목하지 못한 예는 종종 있었다. 이러한 거북스러운 집안을 원만히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할아버지의 존재다. 그래서 부자간(父子間)에 혹 갈등이 있는 집도 대개 할아버지와 손자 간에는 대단히 화목하다.
이것은 보통 아비는 아직 젊고 혈기 왕성한 데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너무 크다 보니 자주 격(激)하고 때로 극한적인 언행을 하기 쉬운 데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할아버지는 원숙한 인생 체험과 경륜으로서 매사에 침착하게 임할뿐 아니라, 자애로서 손자를 어루만져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노인이 어린아이를 다룬 예를 하나 보기로 하자. 선조 때 영의정을 세 차례나 지낸 인재(忍齋) 홍섬(洪暹) 이란 분이 있었다. 이분이 연꽃을 몹시 사랑하여 당신 집앞에 못을 파서 연을 가꾸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며 즐겼다. 어느 날 저녁 퇴궐하여 집앞에 이르니 동네 조무래기들 10여명이 연못에 들어가 어지러이 장난치고 놀다가 대감의행차를 보고는 질겁을 하여 달아났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아이만이 도망갈 생각도 않고 오뚝 선체 영상대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자세가 하도 당차고 방자스러워서 대감은 그 아아이를 집안으로 붙들어 들이라고 하였다.
그 댁 사랑(舍廊)으로 붙들려 들언 이 아이는 여전히 입을 딱 다문 채 꼿꼿하게 앉아서 뉘우치는 빛이란 전혀 없었다. 이윽고 영상대감께서 회초리를 갖다 놓고 묻기 시작했다.
"넌 몇살이냐?"
"일곱 살이옵니다."
"그래, 너는 어째서 죄를 짓고도 도망하지 않고 버티고 서있었느냐?"
"˙˙˙˙˙."
이 물음에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몹시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한 나라의 재상이요 원숙한 노인의 경륜이라 필시 이 아이에게 곡절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배웠느냐?"
"지금 《소학(小學)》을 읽고 있사옵니다."
영상대감은 글을 짓게 하면 혹 속마음을 보일 것도 같아, "그럼 네가 시를 한 수 지어 보겠느냐? 만약 시를 잘 지으면 오늘의 네 죄를 용서할 것이고, 잘못 지으면 종아리를 좀 맞아야곘다." 하니, 이 아이가 대뜸 "운자(韻字)를 주십시오." 한다. 대감은 곧 ''가을 추(秋)' '놀 유(遊)' 그리고 '소 우(牛)' 석자를 차례로 불러 주었다. 그랬더니 대감이 입에서 운이 한자씩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례로 시를 지어 불렀다.
정승댁 연못가 누각은 쌀쌀하기가 가을날 서릿발 같은데.
어린 아이들 벗을 이끌고 달빛 아래 노랐네.
정승님네 마땅히 해야 할 일 무엇인지 아시나요.
다만 연꽃 사랑할 줄만 알고 소의 안부는 묻지를 않으시네.
相公池閣冷如秋 童子携朋月下遊
昇平事業如何事 只愛蓮花不問牛
대감은 깜짝 놀랐다. 정승이면 마땅히 연꽃보다 백성들을 보살피는 데 힘써야 한다는 뜻이니, 이 아이가 대놓고 자기를 훈계한 것이 아닌가. 무엄하고 당돌하기 이를 데 없고, 또 요새말로 하면 고위층의 호화로운 사치 생활을 규탄하는 반항의 소리다. 감히 한 나라의 정승을 어린 것이 어찌 이렇게 비아냥거릴 수 있나 싶었지만, 대감은 곧 마음을 돌려 자애로운 목소리로 이 아이를 끌어다 무릎에 앉히고 뉘집 자식이며 이름은 무엇이냐고 물은 후에 "너야마로 장차 이 나라의 정승 재목이로구나." 극찬하고 지필묵(紙筆墨)을 후하게 상으로 주었다.
이 소년이 훗날 인재 대감의 예언대로 인조 때 영의정에 올라 큰 공을 세우게 되니 그가 곧 하곡(鶴谷) 홍서봉(洪瑞鳳}이다.
뒷사람들은 모두 학곡이 일곱살 때 지은 이 시를 찬탄하지만 나는 그 시보다도 그의 오기를 더 높이 사고 싶고, 또 당돌한 어린아이의 그처럼 방자한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준 인재(忍齋) 대감의 아량이 더 마음에 든다.
요즘 우리 사회는 마치 성급하고 과격한 젊은 아비와 당돌한 아이들만이 사는 집안 같아서 삭막하기만 하다. 너그럽고 자상한 노인, 할아버지가 그리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