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선물
홍미숙
살면서 웃음을 선물 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다행히 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할 때가 많다. 내가 부족한 게 많아 실수를 잘하기 때문이다. 나의 실수에 상관없이 나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의 실수에 내가 웃을 때도 많다. 건망증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러니 내가 나에게 웃음 선물을 수시로 하면서 살아간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전에 읽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하는 것이다. 한 권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다. 나중에 그 책을 읽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슬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웃고 만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웃음만 나온다. 이러다 바보가 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기계치 티를 내어 누군가에게 웃음을 선물할 때가 많다. 누군가가 웃을 일을 자주 만들어낸다. 오늘도 그랬다. 스마트폰에 와 있는 문자를 오늘 온 줄 알고 답변을 했다. “오늘 바쁘세요?”라는 문자를 확인하고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그냥 집에 있는데요”라고 답장을 했다. 그랬더니 답장이 바로 왔다. “그 문자 어제 보낸 것인데요.” 나는 그만 ‘하하하’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분명 그 문우도 ‘하하하’ 웃었을 것이다. 나는 그 문우에게 “나 때문에 웃었으면 베리, 베리, 땡큐!”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방긋 웃는 모습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나의 실수로 웃음 선물을 주고받은 셈이 되었다.
나로 인해 20년째 웃고 있는 문우도 있다. 자동차원격시동기를 사용할 때마다 내 생각이 나 웃음이 나온단다. 내가 그 문우에게 웃음을 선물한 거나 다름없다. 나도 그때 생각을 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수필공부를 마치고 여의도 KBS 앞을 지나오는데 갑자기 길 가에 세워져있던 차에 시동이 걸렸다. 때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길 가는 사람도 없고, 시동이 걸린 자동차 안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자동차만 부르릉대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신고를 해야 하나? 두리번대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 당시 자동차원격시동기가 나와 있는 줄 전혀 몰랐다. 그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들이박거나 보도에 올라와 나를 칠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겁이 났는지 모르겠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차 앞에 서있는데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시동이 걸린 그 자동차 앞으로 가더니 자동차 문을 아무렇지 않게 열고 운전대를 잡고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나는 멍하니 그 자동차의 꽁무니를 한참이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 자동차 운전자가 자신의 자동차 앞에서 꼼짝 않고 서있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엄청난 일을 목격하고 난 뒤 운전을 하고 다니는 한 문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문우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 뒤부터 그 문우가 20년째 웃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원격시동기를 켤 때면 내 생각에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내가 그 문우에게 웃음 선물을 해도 아주 크게 한 셈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웃음을 선물한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너무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은 누군가를 웃기기 어렵다. 그러니 웃음을 선물하기도 어렵다. 적당한 부족함, 적당한 실수가 누군가를 웃게 만들 수 있다. 천재보다 바보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선물할 것이다. 나 역시 바보처럼 행동할 때가 많아 누군가에게 웃음을 선물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 나도 많이 웃는다. 이 세상에 웃음 선물만큼 귀한 선물은 없다. 남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웃음 선물을 주면서 살아갈 일이다. 웃음을 선물하려면 어딘가 좀 부족하고, 실수도 좀 해야 한다. 그래야 웃음을 선물할 수 있다.
나를 보고 좋아서 웃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다. 나를 보고 반가워서 웃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 또한 행복이다. 나의 부족함과 나의 실수에도 웃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큰 행복이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앞으로 나는 웃음을 선물하면서 살아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