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군 석문면 삼화리 보덕포 해안 절벽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써
창건 연대른 알수없으나...(연대를 알수없다는 말에 참 많은 의미가 있는듯^^)
1676년(숙종2년) 중수된 이래 1986년 대웅전이 재건되엇고
1988년에 종각을 완성하고 범종을 안치하였으며
1992년 일주문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여기가 원래 이곳 보덕사로 들어가는 입구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증축을 너무 잘해서 ...입구가 대웅전 앞에 커다란것이 있답니다
제가 처음보덕사에 같던 것이 중학교 1학년....17년 되었나 ...ㅋㅋㅋ
이것이 보덕사 중수비~(요것이 유물이랍니다 1676년때 세운거니까요!)
여기 척혀 있는내용은~~ 무지 길어요!
시작~
1672년 (현종13년) 7월 ,호남 영광인 혜행스님이 바다를 따라
호남에서 보덕포까지 오는 동안 서호의 산수가 아름답고 볼만한 곳도
많았지만 이곳 보덕포야말로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었다.
이곳에는 이미 불상이 한 분 모셔져 있었으니 그 영험 또한 비길테 없어
기도드리는 사람이 모두 소원을 성취하니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처님이 모셔진 의지처가 불과 3~4척(1m정도)인테 2층
형식이며 단주는 겨우 한척(30m)정도로 암벽이 가설되어 있는테
붕괴의 염려가 있어 드나드는 신도들이 매우 위험하였다 . 또한 조그만
요사채는 많은 비바람에 시달려 앞으로 10년을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나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지나칠수 없어 모연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시주를
청하였으며 석공으로 하여금 언덕을 깍아 계단을 만들고 집을 축조
하였다 .그결과 이제는 10여명이 들어가도 떨어질 위험이 없게 되었다 .
신도들의 공덕과 석공의 힘이 아니였으면 오늘날 이처럼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 수행정진하는 전당을 이루수 있었을까! 이 사실의 전말과 시주한
사람들과 석공의 이름을 돌에 새겨서 오래도록 전하고자 한다.
1676년 8월 7일
이런 글들이 있답니다 뒤편에는 혜행스님말씀처럼 시주한 사람들과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답니다
ㅋㅋㅋㅋ
기존에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오르막길을 만들었네요!
이건 17년전에 모습이랑 비슷한듯....
조금 다른 모습이죠!
바다 앞이라 부처님도 바다에서 나오는 조개와 소라로 만들었네용**
저기 앞에 보이는 건물이 대중전 같아요!
확실하지 않치만 부처님이 모셔져있더라구요! ㅋㅋㅋ
물어볼껄 그랬나^^ㅋㅋㅋㅋㅋ
범종이 있는곳 ...
범종을 가까이서 보면 이런 모양이 있네요!
대웅전 모습입니다 너무 깨끗해서 ....ㅋㅋㅋㅋ
대웅전에서 바라본 예전에는 바다였지만 지금은 간척지죠!
자세한 내용은
원래 이곳 보덕포는 바다물이 내륙으로 깊이 들어와 있고 수심이 깊은
천혜의 양항으로 육로 교통이 미비하던 예전에는 인천을 비롯하여
오도항 ,한진,부리포등의 항구와 내륙으로 여러 지방을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이러한 지리적인 여건으로 보덕포는 홍성하였고 보덕사에는
이들 출영객을 중심으로 먼길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불도들의 발길이 끊일때가
없었다 .하지만 1987년 8월부터 시작된 석무지구 간척지 개발사업에
의하여 1997년 11월13일 석문방조제가 완성됨에 따라 바닷물이 끊기고
광활한 농경지로 바뀌어 예전에 흔적은 서서히 없어져 가고있다 .그러나
오도와 송산면이 바라보이는 탁트인 전망과 해돈이 광경,석양에 물든
광활한 평야에 펄쳐져 나가는 보덕사의 범종소리등은 이곳에서만 느낄수있는
장관이 아닐수없다 .
이곳이 바로 보덕포 (요즘말로하면 여객터미널)
지금은 버려진진 오래되어 조만간에 사라질것같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곳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를 구경하셔다고 한다
@ 동네 전체가 너무 조용한 동네입니다 /연인하고 함가보세요!
많은 대화를 나눌수있으듯 합니다!
첫댓글 내 고향.. 당진지역에 이런곳이 있군요...ㅎ
당진이 고향이세요 저두 당진인텡.....
당진 송악 기지시..
저는 고대면 장항리 입니다!ㅋㅋㅋㅋ
흠 전 당진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