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보고
김여정
중앙공원 한켠에 서있는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성미 급한 나뭇잎이 서로 다투어 떨어져, 을씨년스런 바람에 휩쓸려 먼
지와 함께 날린다 이서지 화백 귀향전이 열리고있는 청주문화원에, 몇몇
문우들과 함께 전시회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 아침 일찍부터 서
둘러 도착했다.
이 서지 선생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그의 작품세계를 직
접보고 감상할 수 있다는 설렘에 마음은 저윽이 긴장됐다 아래층과 위층
에 질서 정연하게 전시된 그림은, 우리의 전통 풍습들이 피부로 느껴져
정겹고 친숙함으로다가 왔다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주로 농
경사회의 풍속화였다 기십년 전 만해도 우리의 일상생활 모습이었으나,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는 현대문명에 빗겨 서며 이제 잊혀져 가는 풍속들
이 되었다 늘 접하며 살아왔던 그 모습을 재현한 그림은 고귀한 생명이
담겨져, 다감한 옛이야기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민들레꽃 곱게 핀 양지바른 밭고랑에 파릇파릇 솟아나는 달래와 냉이
를 캐는, 아낙네에 알뜰한 사랑이 깃들여 있는 “나물 캐기”가 눈에 들어
왔다 가족의 입맛을 돋구려는 저녁상이 떠오르고 따사로운 기운이 도는
듯 하다 나물 뜯는 그림을 감상하며 내 마음은 봄 들녘으로 나가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을 캐던 시절로 돌아가 열 두 살 소녀가 된다.
동네어귀에 세워진 육중한 연자매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곡식을 찧고 있
는 “연자 방아도 인상적이었다. 소를 몰아 매를 돌리는 사람의 발걸음도
투박하고 매도 무겁게 돌아간다.
가난에 찌든 삼남매가 툇마루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호박 꼬지"를
썰고있는 시름겨운 아낙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초가지붕 위의 호박고지랑 빠알간 끝물 고추, 추녀 밑의 옥수수 종자는- 1
우리나라 향토색을 유감 없이 표현한 작품이다.
알곡으로 가득 채운 듯 누런 색으로 아무 말 없이 표현한 “황금들녘”
저편의 몇몇 기와집들은 작가의 넉넉한 마음이 그대로 담긴 듯 하다.
아낙들이 모여 두어 순배 술잔이 돌아가고 술병과 술잔이 엎어지고 신
명 좋은 아낙이 치는"물장구"에 얼씨구 어깨춤이 흥겨운 광경은 가난과
속박 그리고 한(恨)의 표출이 잘 나타난 우리 옛 어머니들의 노래이다.
정월 대보름날 달을 보고 절하며 소원을 빌던 고향의 뒷동산이 선하게
떠오르게 하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그때 나의 염원이 무엇 이
였는지는 지금은 잘 기억되지 않지만 아마도 부모님의 무병장수와 아울러
소녀의 순박한 사랑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담 너머로 “고사떡”을 주고받는 이웃 간의 푸근한 인정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웃사랑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구화 된 아파트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이웃과 너무나 철저하게 단절된 가운데 이기적이고
개인적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넓은 벽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대작(大作)이 눈에 들어왔다. 그 화
폭의 크기- 미술에 문외한이라서 전문적으로 표현되는 홋수는 잘 모르겠
지만도 크지만 옹기전으로 시작되어 우(牛)시장으로 마감된 작품은 작
가의 예리한 예술적 눈매가 어김없이 십분 발휘된 대작중의 대작이다.
이 작품에는 “장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것들이 표현된 것은 물론 그
려낸 인물만 줄잡아 천명은 넘을 것이니 동서양 고금을 통하여 이만한 대
작이 몇 개나 될까?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장대한 스케일에 탄성과 숙연함을 느꼈다 선생의
그림 속에는 다정다감한 고향의 정서가 수정과처럼 은은한 향으로 녹아있
어 감칠맛과 그 뒷맛이 아련하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애환과 해학과 세시
풍속이 담겨 있으니 회화로 표현된 한 권의 민속학이요 풍속도로서 후손
에게 물려줄 소중한 재산이다.
부드러운 듯 날카로우며 섬세한 듯 과감한 선의 유희, 색채의 조화 그
리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교훈과 작가의 열정에 다시금 머리 숙
이며 선생의 작품 앞에 다시 서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2005/22집
첫댓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장대한 스케일에 탄성과 숙연함을 느꼈다 선생의
그림 속에는 다정다감한 고향의 정서가 수정과처럼 은은한 향으로 녹아있
어 감칠맛과 그 뒷맛이 아련하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애환과 해학과 세시
풍속이 담겨 있으니 회화로 표현된 한 권의 민속학이요 풍속도로서 후손
에게 물려줄 소중한 재산이다.
부드러운 듯 날카로우며 섬세한 듯 과감한 선의 유희, 색채의 조화 그
리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교훈과 작가의 열정에 다시금 머리 숙
이며 선생의 작품 앞에 다시 서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