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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그간 평안하신지요.
이글에는
6입_멸(해탈)을 성취하는 고따마 부처님의 방법 <추신>효진님의 수준은?
http://cafe.daum.net/mobuddhism/ICuS/3419
의
본문_글과 댓글을 주의 깊게 읽고
공감하신 분이라면
이미 짐작하고 있을 내용들을 담았습니다.
먼저 인터넷에서 캡처한 아래의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http:
//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usankjs&logNo=40133597669
이 그림을
DFD(data_flow_diagram/데이타_흐름_도圖)라고 부릅니다.
저는 3419번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생계를 위한 컴퓨터 분야에 종사했던 2~30여년간의 경력 중
시스템_프로그래머의(SP)로서 약 3년을 지낸 다음
나머지 기간은
업무_프로그래머(이하 AP)로 지냈습니다.
SP에서 AP로 전향하여
쉼 없이 하던 일이
회사_업무용_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하여
이 DFD를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수數 천千여 페이지는 족히 그렸습니다!)
DFD상에 등장하는
타원_기호는 프로세스process이고
=_기호는 데이타data이며
화살표_기호는 관계relation입니다.
이들을
초기경전(니까야, 아함경)의 표현으로 바꾸면
타원_기호는 명名nama이고
=_기호는 색色rupa이며
화살표_기호는 상호_의존paccaya입니다.
빠른 이해를 위하여
이 초기경전의 표현들을 위의 그림에 함께 표기하였습니다.
AP가 그린
수십/수백_페이지 분량의 DFD는
회사_업무용_프로그램_설계도圖에 해당합니다.
이 DFD가 완성되어야
프로그래머 들이
프로세스(명名nama)들을 코딩coding(작성)함과 동시에
데이터_베이스(색色rupa)들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회사_업무용_프로그램(식識vinnana)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제가 몸담고 있었던 전산실에는
평균 6~70명의 인원이
이러한 회사_업무용_프로그램의 개발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위하여
수십명의 AP라는 사람들이 만드는
회사_업무용_프로그램이 아닌
사람을 위한
사람_업무용_프로그램 개발은
누가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열반'입니다!
열반은
마음(주소_공간address_space)를/을 만드는 SP의 역할도 하면서
동시에
사람_업무용_프로그램(식識vinnana)를/을 만드는 AP의 역할도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12_연기란
수數 천千? 페이지의
사람_업무용_프로그램_설계도圖(DFD)의를 그려서
사람_업무용_프로그램을 만들고 수정하는
열반의 작업_순서인 것입니다.
이하以下의 글은
3419번의 글과
<들어가는 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한 것이므로
3419번의 글과
<들어가는 글>의 내용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하以下의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조건경(S12:20)>
3419번_글의 댓글로 달아드렸던
조건경(S12:20)의 해당부분을
(양을 조금 더 늘려서..)
이곳에 옮겼습니다.
경을 인용하면서
빠짜야paccaya,
빠띠짜paticca,
빠띠짜사뭇빠다paticcasamuppada 등을 병기竝記하여
그 쓰임을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초불연'에서는
빠짜야paccaya의 연緣과
빠띠짜paticca의 연緣을
구별하기 위해서
빠짜야paccaya는 '상호의존'
빠띠짜paticca는 '조건'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초기불교이해 268쪽 참조)
정작 조건경(S12:20)에서는
paccaya를 '조건'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서
아직 확고하게 정리되지 못한 듯합니다.
(조건경의 전문全文은 해피법당_까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주의! 해피법당에서 옮겨온 경문에도
paccaya를 '조건'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연기paticcasamuppada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
(정형구 생략)
비구들이여, 존재를 조건paccaya으로 태어남이 있다. …
비구들이여, 취착를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 …
비구들이여,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 …
비구들이여,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
비구들이여,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다. …
비구들이여,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다. …
비구들이여,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다. …
비구들이여,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다. …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
<정형구>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界]이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이것에게 조건paccaya되는 성질[此緣性)이 있다.idappaccayata<==1
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진실함, 거짓이 아님,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님,
이것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 idappaccayata<==2
이것을 일러 연기paticcasamuppada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연기된(緣而生)_법paticcasamuppanna_dhamma들인가?
비구들이여, 늙음·죽음은
무상하고 형성되었고[有爲]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paticcasamuppannam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이하 경전 구문 생략)
<열반 =
진실함 +
거짓이 아님 +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님 +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
열반은 아래의 경들을 종합하여 도출한 것입니다.
'진실함+거짓이 아님+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님'
<조건경(S12:20)>
'진실함+거짓이 아님+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
<진실함 경(S56:20)>
'최상의 고귀한 진실+허망하지 않은 담마+이것은 열반이다!'
<세계에 대한 분석의 경(M140)>
<'열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조건경을 요약하면>
3.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界]이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이것에게 조건paccaya되는 성질(此緣性)이 있다.
(위의 'idappaccayata<==1'을 '되는' 이라는 수동/피동형으로 번역!)
오역誤譯일 가능성도 있으나,
오역이 아니라면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습니다.
11가지 상호_의존paccaya는/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界]이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열반에 조건paccaya되는 성질(此緣性)이 있다.
(오역이 아닐 수도 있는 이유는
이어지는 4.를 읽고나면 아시게 됩니다.
즉
11가지 상호_의존paccaya들도
열반의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로 생겨난/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4.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
이것을 일러 연기paticcasamuppada라 한다.
(위의 idappaccayata<==2를 '짓는' 이라는 능동형으로 번역!)
(정상적인 번역으로 보임)
이 요약을
<들어가는 글>에서 설명했던 표현들로 바꾸면
DFD를 그려서, 사람_업무용_프로그램을 만드는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
이것을 일러 연기緣起paticcasamuppada라 한다
가
됩니다.
5.
12_연기의 12가지 지분의 법法들은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
즉
연기paticcasamuppada로 생겨난/만들어진 것이다.
paticcasamuppannam(緣而生)
이 요약을
<들어가는 글>에서 설명했던 표현들로 바꾸면
12_연기의, 명名nama, 색色rupa, 상호_의존paccaya, 식識vinnana 등은
DFD를 그려서 사람_업무용_프로그램을 만드는.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로 생겨난/만들어진 것이다
가
됩니다.
<마음citta도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미 3419번의 글에서
마음이란
SP의 역할을 하는 열반에 의해서
생겨난/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열반을 체험하는 해탈의 성취로
마음을 갠지즈강 크기의 마음으로 변變하게 하려면
마음은, 열반처럼 조건paccaya 짓는 주체가 아니라
마음은,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에 의해서 생겨난/민들어진
객체이어야만 합니다.
마음이 생겨난/민들어진 객체이어야만
무상無常(변함)의 법칙을 따라
중생_마음이 출세간_마음(=도/과의 마음)으로
변變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지요.
즉
12_연기의 지분을 구성하는 법法들은 물론
심心 그 자체도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로 생겨난/만들어진 것입니다.
다른 말로
연기緣起paticcasamuppada로 생겨난 것이지요.
paticcasamuppannam(緣而生)
꼭 당부 드리고 싶은 요점은,
연기緣起paticcasamuppada라는 어휘 속에는
'열반'이 주체로 들어 있음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조건경(S12:20)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렸던 그림이
3419번글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_1이었던 것입니다.
그 그림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옮겨 봅니다.
(선천적으로 적록_색맹인 분들께서는
이 그림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
주변에 계신 정상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끝맺음>
아래는 최근에 효진님과 제가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만약에 효진님께서
토론방 3419번 글과, 그 글에 달아놓은 저의 댓글들을
(제가 요청한 대로..)
단 한번만이라도 성의껏 읽었다면
연기緣起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부디 효진 님께서, 이번_글만이라도 세심하게 읽어 보기를 희망해 봅니다.)
하지만 그러하질 못하고
저에 대한 비난과 질책만을 쏟아내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저修加는
이 모든 질책과 비난을
공부(교학+수행)에 더욱 분발하라는 의미로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끝)
<추신>
고따마 부처님께서
4_성제와 12_연기를 가르쳐주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열반을 체험하는 해탈이 아닌가요?
그러므로
12_연기를 관통했다면...
(이미 위의 본문의 글에서 설명드린 대로)
열반을 체험하는 해탈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4_성제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리자면,
무명의 반대는 명지입니다.
그 명지는 무엇입니까?
명지 경(S56:18)
3. "세존이시여, '명지, 명지'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명지이고 어떻게 해서 명지에 도달하게 됩니까?"
"비구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
ㅡ 이것을 일러 명지이라 하고, 이렇게 해서 명지에 도달하게 된다."
즉
4_성제를 관통하면
무명이 명지로 바뀐다는 것이며
이는 곧
4_성제를 관통하는 최종의 목적인
열반을 체험하는 해탈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경전(S56:20)의 일부를
3419번글의 댓글로 달아 드렸었고,
(양을 조금 더 늘려서)
다시 이곳에 인용하겠습니다.
<진실함 경(S56:20)>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진실함, 거짓이 아님,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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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419번글의 내용과 이번글의 내용들은
지난 5년동안
초기경전(니까야, 아함경)에 의지하여
공부(교학+수행)한 결과이며
그 어느곳(경,론,율,주석)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드러내어 밝힌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니까야를 고딩 수준의 경전으로 폄훼貶毁하는 사람은
위에 인용한 니까야의 경전들을
고딩을 위한 저열한 내용으로 여길 것이므로
위의 본문글에서 전개한...
심心의意식識을 포함한 모든 법法들이
'열반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에 의해서 생겨난 것임을
결코 받아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오직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부디 올바른 선택으로
금생에
해탈/열반을 성취하시어
고따마 부처님의
'고멸苦滅'에 도달하시고
더 나아가
형제와 자제분들 및 가깝게 지내시는 이웃 분들에게도
고따마 부처님의 '고멸苦滅의 진리'를
널리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본문에서
전산_용어와 담마法를/을 아래와 같이 배대(match) 시켰습니다.
프로세스process => 명名nama
데이타data => 색色rupa
관계relation => 상호의존緣paccaya
프로그램program => 식識vinnana
이들 중에서
사람과 컴퓨터 사이에
가장 두드러지게 틀린 것을 한가지 꼽는다면
데이타data => 색色rupa
입니다.
컴퓨터의 데이타data와는 다르게
색色rupa에는
'락/고/희/우/사'의 느낌이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3419, 3435 두 편의 글에서 사용한
컴퓨터의 비유는
이 토론방의 회원님들께서
이미
PC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비유를 이해하시는 데 별 무리가 없었으리라고 봅니다.
컴퓨터란, 인간의 두뇌을 모방하여 만든 기계이므로
부처님의 법法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비유보다도 보편적이고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를 비유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장점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실유實有냐? / 아니냐?'라는
2,000년 넘도록 지속된 논란을
간단하게 잠재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래_한글이라는 문서_작성기로 작성된
먹음직한 사과의 모습을 묘사한 글_데이타(색色rupa)
또는
우아한 장미의 모습을 묘사한 글_데이타(색色rupa)
등을 두고
현現_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 아무도
'실유實有냐? / 아니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디지탈_카메라로 컴퓨터에 입력된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데이타(색色rupa)는 데이타(색色rupa)일 뿐이니까요!'
물론 문서_작성자의 수준에 따라
대상의 묘사는 다릅니다.
그런데도
고따마 부처님의
해탈열반에 관한 가르침과는 무관한
(시대에 뒤떨어진)
'실유實有냐? / 아니냐?'를 가지고
니까야라는 경전을 고딩_경전이라고 모독하고
니까야를 인용하는 상대방을 깔보는 사람은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일까요?
그 언행의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보니
이제는
이 사람이
2,000년전
용수_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니까야를
고딩_경전으로 모독하고있는 그 사람은...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_까페에
'니까야는 고딩을 위한 경이라고 하는 까닭'
이라는 제목의 글도 작성하여
떡~하니 올려 놓았더군요.
이러한 그의
작금의 과격한 반응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아마도
제가 최근에 쓴
3419, 3435 두편의 글들이
그가 주장하는 심연생心緣生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제가 쓴 글의 본문에는
일부러
'심연생心緣生은 틀렸다!'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가修加는 심연생心緣生을 부정하고 있다!'를
그를 포함하여
이미 많은 분들이 눈치를 채고 계셨을 겁니다.)
그가 20 여년을,
불교 공부에 매진한 결과로 얻은 심연생心緣生을,
지난 몇년 동안
그 자신이
불퇴전의 의지로 주장해온 터라,
느닷없이
수가修加로부터 정면_공격을 받고 있다고 여겼다면,
엄청난 분노와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그에게 생겼을 거라고,
저는 짐작해봅니다.
그는 그동안
심연생心緣生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실유實有냐? / 아니냐?'를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토론의 상대방에게
마구마구 휘둘러댔지만,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고따마 부처님 가르침의 진정眞正은,
일체법이란
심연생心緣生이 아니라...
열반의_조건짓는_성질로 생生겨난 것임을...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연기 = 열반의_조건짓는_성질 이므로)
'일체법은 연기로 생生겨난 것'이며
이를 줄여서
(일체법은...)
'연이생緣而生'이라고 합니다.<조건경(S12:20)>
바라옵건데
그간의 그의 주장이 어찌되었든...
본인이나
그의 잘못된 견해를 믿고 따랐던 회원님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고따마 부처님의 정법正法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야 말로
최상의 선택이라는 말을
그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고따마 부처님께서
오늘날의
의학 또는 물리학을 연구하셨던 분이셨나요?
고따마 부처님의 법法들이
의학의 멘델_법칙
물리학의 뉴턴_법칙 등과 같은
의학 또는 물리학 법칙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라면
당신의 가르침을 총칭하는
'온처계근제연'의 법法들은
당연히 인간의 내면에 관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특히
니까야를 고딩_경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동안 억척스럽게 물고 늘어진
근根 마저도
(이러한 고따마 부처님 가르침의 저변을
상식으로라도 알고 있다면)
근根이
니까야에 나오든
아함경에 등장하든
인간_내면의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설혹,
경을 번역한 번역자가
안근眼根을
눈眼으로 번역을 했다한들...
부처님의 법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부처님의 말씀 속에 등장하는
눈眼은 생물학적, 의학적인 눈이 아님을
알아 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6입入의 안眼이든
6근根의 안眼이든
부처님의 법法 안에서는
그들 모두가
명색nama_rupa로 만들어져 있답니다.
그러므로
무상無常하여 변變할 수 있으며
해탈열반의 성취로
과거의 잘못된 그것을
멸滅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무상無常과 해탈열반의
이치를...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계신
PC의 프로그램들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이치로 바꾸어서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훨씬 쉽습니다.
해탈열반은
과거의
(낡은 명색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이랍니다.
만일 심연생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왜 아닌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근거의 글을 올려 보아요.
당신이 좋아하는 니까야를 보여주면서.//효진
이에 대한 답글을 겸하여
니까야를 인용하여
'심연생心緣生을 부정하는'
위의 본문_글을 올렸지만....
니까야는 고딩을 위한 경이고,
아함경은 대학원생을 위한 경이다.
어떻게 아냐고?..
맛을 보면 안다//효진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요청한 내용의 글로 답을 해 주어도
'쇠귀에 경읽기'일 뿐인 것 같습니다.
일체법이 연이생이든 심연생이든
연기가 열반을 조건짓는 성질이든 아니든
그전에 살펴볼 논리가 있군요.
[근根이
니까야에 나오든
아함경에 등장하든
인간_내면의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수가]
근은 마음이 아닙니다.
경에서 근은 인지활동으로 설명하지만
흔히 생물학적 감각기관으로 설명됩니다.
해서 근은 인간 내면이 아니죠
한편
12처(6입)이 심연생이라는 것은
육내외입처가 외부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근경이 아니라
중생의 마음이란 뜻이지요
해서
[당신의 가르침을 총칭하는
'온처계근제연'의 법法들은
당연히 인간의 내면에 관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 수가]
@노랑 라고 '처'도 인간의 내면세계로
이해하고 있다면
[니까야를 인용하여
'심연생心緣生을 부정하는'
위의 본문_글을 올렸지만 /수가]
12처 심연생(마음)이 부정된다는
위의 말은 본인의 두 말이
상충되는 말입니다.
왜냐면 '처' 가 내면(마음) 문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 수가님 글에서
니까야에 나오는 용어를 벗어나면
안된다는 경직된 사고가
느껴 집니다.
어떨땐 내내 같은 이야기를
상대가 자기식으로 표현하는데
문제를 삼는구나
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부처님에 말씀은 어느것도 부정할수도 부정해서도 안되겠지요? 어떤것도 부처님의 경전은 부처님의 눈높이를 이해 할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께서 중생의 눈높이로 설법을 하셨다고 해도 우리는 헤아리기가 어려 울것같습니다.
저는 위의 댓글이나 본문의 댓글이 아니라 제가 생각 하는 글을 씀니다.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가를 비난 하기 보다는 이 경전의 뜻이 무엇을 전하시려고 하시는지의 참구가 더 우선일 것같습니다.
예를 들어 연기가 있고 연생법이 있고 ,연이생이 있고 니까야는 이렇게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한자로는 심연생 이라는 뜻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심연생은 어떤 마음에 의해서 일어 난다. 그것을 심연생으로 이야기 했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일어 일어 나는 것이 마음이다. 하는 것을 심연생이라고 했나요?
연기는 범어로 빠띠짜 사무빠다는 의지해서 함께 일어난다고, 연이생법은 빠띠짜 사무판나 로 되어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심연생은 수지 연기라고 해서 앞에 것을 인연해서 뒤에 것이 생하는 이짜파타야짜를 번역한 것으로 압니다. 판나는 영어로는 잘은 모르지만 과거 분사 인데 우리 말은 그런 표현을 못찾았습니다.
결과 적으로는 과거를 설명 하는 것인데 과거는 아닙니다. 과거는 이루어 졌다, 연하여 일어 났었다 일어 났다 하는 결과 물을 이야기 하지만 연기는 과정을 뜻하는 것으로서 상당히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기와 심연생은 잘못이해 하면 같은 뜻으로 생각 할수 있지만 너무도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는 참으로 중요 한 것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뿐이 없습니다. 결과가 있다면 이세상은 더이상 존재 할수가 없겠지요?
빠띠짜님
여러가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3419, 3435 두편의 글에서 자세한 설명을 드렀습니다.
특히 심의식을 함께 그림 그림을 잘 살펴보세요.
'다른 것으로 부터 생겨난 것이 아님'
또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
이라는
열반이 없다면
마음 조차도 있을 수 없답니다.
열반은 그림에서 보듯이
마음_밖에 있으므로
언설로 표현할 수 없으나
다행이
고따마 부처님께서
'다른 것으로 부터 생겨난 것이 아님'
또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
라고 표현해 주신 것이
경에 있으므로
저도 그것에 의지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마음을 포함한 일체법이
'다른 것으로 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 열빈'의
조건paccaya짓는 성질로 생겨난 것입니다.
요약하면
연기 = 열반의 조건paccaya 짓는 성질
연이생 = 열반의 조건paccaya 짓는 성질로 생겨남 = 연기로 생겨남
연이생의 법 들 =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등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