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 여행기] 하늘이 허락한 백두산 천지를 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후니는 애국가가 나오면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두드린다. 애국가에 오른손을 올려 경의를 표시한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운 것 같다. 가슴을 두드리는 행동은 아마도 자기를 봐달라거나, 자기를 따라 하라는 표현인 것 같다. 후니가 애국가에 나오는 백두산을 아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백두산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마침 올해 친구들과 백두산 가는 일정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친구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친구들이 흔쾌히 동의해 주어 후니와 동행하게 됐다. 예약이 확정되면서부터 잔잔한 울림에 가슴이 설레었다. 여행을 준비할 때 설렘이 여행에 설렘보다 큰 것 같다.
"후니가 백두산에 오를 수 있을까?", "보행장애인이 백두산에 올라가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백두산은 백 번 와서 두 번 정도 오를 수 있고, 삼대가 복을 쌓아야만 천지를 볼 수 있다는데 가능할까?"
백두산을 오른다는 기대보다 불가능한 요소에 걱정이 앞선다.
장애인이 백두산을 가려면 여행사 패키지여행 상품은 불가능하다. 패키지는 장애인 예약을 받지 않는다. 이유는 안전상 문제와 함께하는 여행자 불편함 때문이라 한다. 장애인이 백두산을 갈 방법은 가족 단독 여행밖에 없다. 장애 가족들이 안고 있는 현실의 벽이다. 이번 여행은 친구들만 가는 단독 여행이라 후니가 참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후니를 데리고 백두산에 함께 오르겠다는 공감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백두산 서파 가는 길 ⓒ임상묵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백두산이라 하고, 중국은 장백산이라 한다. 중국이 2000년대 이후 '백두산 중국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어 명칭에 아주 민감하다.
한반도 민족에 영산 백두산을 중국을 거쳐 가야 하는 현실도 서글픈데 홍길동처럼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특히 백두산 이름이 들어간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중국 공안 당국에 조사받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한다.
장애인 후니 민족의 영산 백두산 서파를 오르다!
첫날 백두산 등산 코스는 서파다. 베이스캠프인 이도백하에서 서파까지는 관광버스로 한 시간 반이 소요됐다. 서파 가는 길은 일 차선 도로로 협소했다. 도로 주변은 대부분 옥수수밭이다. 여름 햇살에 충분한 양분을 흡수한 옥수수가 튼튼해 보인다. 8월 말 아침 기온이 27도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긴 여름이다. 티끌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 쾌청함을 더한다. "제발 이런 좋은 날씨로 백두산에 올라가자!" 마음속 바람이다. 어쩌다 한순간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나도 모르게 불안감이 밀려온다. 백두산 천지 날씨는 여기와 달리 변화무쌍해서 올라가 봐야 안다고 한다.
백두산 서파 풍경구에 하차해 공원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성수기에는 1~2시간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는 기다림 없이 승차해 백두산으로 향했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스는 원시림으로 들어간다. 하늘을 덮은 짙은 녹음 사이로 도로가 선을 그어 놓았다.
그 선 위를 셔틀버스가 달리고 있다. 수종을 전부 알 수 없지만, 하얀색을 띠고 있는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는 알 것 같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경쟁하듯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다. 피아노 연주하듯 흰색과 회녹색 나무가 반복해서 스쳐 간다. 숲속 오케스트라 합주다. 백두산 원시림을 50분 정도 달려 해발 1,000M 부근에서 23인승 소형버스로 다시 갈아탄다.
서파 오르는 길과 1,442개 계단 ⓒ임상묵
여기서부터는 서서히 하늘이 보인다. 하늘 높이 치솟던 큰 나무들이 작은 나무로 바뀌었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런 날씨를 청명이라 하나? 조금 더 올라가니 나무가 사라지고 회색빛 민둥산이 나타난다. 직감적으로 저 산이 백두산임을 알았다.
하늘이 열리고 눈앞에 백두산 풍경이 펼쳐지니 가슴에서 울컥함이 있다. 차 안에 탄성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감격에 흥분을 가눌 시간도 없이 버스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갈아타서 약 20분 정도 올라왔다.
차에서 내리니 적당한 기온이 온몸을 휘감는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 좋은 청량감이다. 출발할 때 온도가 29도 이곳 온도가 16도다. 추위에 대비해서 긴소매를 준비했으나 바람이 없어서 반소매도 가능할 것 같다. 등산에 앞서 주의사항을 듣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천국에 올라가는 계단처럼 하늘을 향해 길게 늘어선 계단에 많은 여행자가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1,442개 계단을 올라야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 감사하게도 여기 서파는 몸이 불편한 여행자를 위한 가마가 있다. 후니도 가마를 이용해 올라가려고 예약을 해 두었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대나무 가마를 두 명에 가마꾼이 메고 오른다. 이런 가마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장애인 후니 가마 타고 서파 오르는 광경 ⓒ임상묵
드디어 백두산 천지를 오른다. 계단은 우측 올라가는 방향, 좌측 내려오는 방향으로 나누어졌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니 계단 턱에 100단위로 숫자가 새겨져 있다. 백두산은 화산 분출로 하얀 부석토가 쌓여 있어 멀리서 보면 흰머리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단 주변 산은 풀들이 벌써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푸른 풀은 노랗게 물들어가고, 시들은 야생화가 초라한 느낌이 든다. 가마꾼에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땀을 닦으려고 쉴 때마다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무서워하거나 거부 의사 없이 가마에 잘 앉아 있는 후니가 대견하다. 가마꾼의 속도가 여행자 속도를 앞선다. 가마꾼 속도에 맞추어 오르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2,470M 서파 정상에 도착했다. 대략 30분이 소요됐다. 백두산은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설렘이 있는 민족의 산이다.
우리 민족의 영혼이 서려 있는 곳에 후니와 함께 있다는 현실이 꿈만 같다. 하느님께서 후니를 위해 적절한 맑은 날씨를 허락하신 것 같다.
청명한 백두산 천지에 가슴에 담다!
"한 장의 그림처럼 눈부시게 청명한 백두산 천지가 눈앞에 있다. 이 감격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느님 감사합니다!" 형용할 수 없는 감격에 나도 모르게 후니 볼에 입맞춤했다.
열여섯 개 봉우리 호위를 받으며 하늘 품은 천지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에메랄드빛 물 위에 반사되는 햇살이 영롱함을 연출하고, 파란 도화지에 흰 구름을 그려 놓은 듯한 하늘은 티끌 하나 없다. 탁 트인 시야로 천지 건너편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2,774M)에 속살이 들여다보인다.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처럼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는 신비로운 천지는 고요하고 평화롭다.
백두산 천지에 선 후니 ⓒ임상묵
"언제 이런 멋진 풍경을 가슴에 담겠는가? 오랫동안 천지를 바라며 있고 싶다!"
하늘이 허락해 주신 백두산 천지를 마음껏 만끽했다. 천지 관리인 허락을 받아 천지를 배경으로 친구들이 준비한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물론 ‘백두산’이 새겨진 부분은 가렸다.
후니가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안 관리인이 의자까지 제공해 주며 사진을 찍도록 도와준다. 무뚝뚝한 중국인에 비해 참 고마운 관리인이었다. 백두산을 더 오래 즐기고 싶었으나 가마꾼이 자꾸 재촉한다. 예정된 시간보다 지체되었다고 한다.
이분들도 비즈니스인데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백두산 등정 성공! 내가 최고 짱!" 2,740M 조형물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하산길 가마꾼은 날다람쥐처럼 달려 내려온다. 갑자기 힘이 어디서 솟아났나 신기하다. 맨몸으로 내려오는 내가 속도를 맞추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청명한 백두산 천지 ⓒ임상묵
안전하게 내려와 후니를 휠체어에 옮겨 태운 것으로 첫날 백두산 서파 등정을 마무리했다. 하늘이 이 벅찬 감격을 허락해 주셔서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감동이 식지 않는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달리 표현할 어휘가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가능할까?"
"연길까지 와서 못 올라가면 어떻게 하나?"
"장애인이 백두산을 간다고요? 불가능합니다."
"친구들 여행에 민폐가 되니 포기합시다."
출발 전 걱정과 불안이 기쁨과 성취로 바뀌었다.
후니가 살아가면서 애국가를 들을 때마다 오늘 올랐던 백두산 천지에 좋은 기억을 추억해 주면 좋겠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백두산 여행 팁
◇ 여행 코스
- 북파 : 봉고차 천지 바로 밑까지 감
오른쪽 비포장 언덕 약 15분 걸어서 천지 전망대(2,620M)에 오름(휠체어 불가능)
왼쪽 테크 길 5분 거리에서 천지를 볼 수 있음
(작은 계단이 몇 개 있어 휠체어 이동에 도움이 필요)
봉우리(돌벽)가 가려져 천지 전체 조망은 제한적
- 서파 : 23인승 미니버스로 1,442개 계단 밑까지 이동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가마가 있음(2인 1조 가마꾼)
상행 80위안, 하행 70위안, 왕복 150위안(가마꾼이 팁을 요구함)
천지를 가까운 거리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음(2,470M)
장애인은 가마를 이용해서 서파에 오르는 것을 추천
◇ 패키지여행은 불가능하나 개별여행을 통해서 갈 수 있음
◇ 인천공항에서 연길공항 통해 가는 것이 근거리(버스 이동 시간이 짧음)
◇ 비행시간 2시간, 연길에서 이도백하(백두산 베이스캠프) 차량 2시간 30분
◇ 날씨 변화가 많고 온도 차가 심해서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가 적기
(강수일수 : 270일, 눈 존재일 250일)
▷ 천지를 볼 확률 : 6월 55%, 7월 40%, 8∼9월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