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우울증이라는 말은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오늘날 현상은 명백히 존재한다.
특정 상황에서 집단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이나 정서적 영향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경제적 위기가 오거나 전쟁과 재난
사회적 사건이나 코로나 팬데믹 같은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사건에서 그 현상을 느꼈다.
집단적 우울증은 시간이라는 명약에 의해 치료된다.
기억을 부추겨 더듬으려는 자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가 있어 그렇지
시간은 더디지만 집단 우울증을 치료해 준다.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 있을 것 같다.
우리 국민들은 겪지 않아도 될 우울증을
겪고 있으니 정치적 원인에 의한 우울증이다.
어느 쪽으로 결과가 되든 과열된 열기는 국민의 절반을 우울하게 만든다.
끝 모를 늪 같지만 분명 시간은 이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영원히 해결 될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환경 속에 체념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결코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높은 청년 실업률, 급격한 이혼의 증가, 저조한 출산율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공직자 부패지수
중산층마저 위협하는 노후 불안 등을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사회과학자들이 각 나라의 행복지수를 해마다 발표하고 있는데
역시 우리나라는 OECD 국가군에서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객관적인 잣대로 측정할 수 없다.
행복은 객관화할 수 있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양적인 계산이 불가능한 주관적 만족감을 포함한다.
행복은 사회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개인적인 문제다.
공적인 행복이 있기 전에 사적인 행복이 있다.
사적인 행복과 공적인 행복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린 까닭에
동일한 객관적 조건에서 개인이 느끼는 만족감은
문화권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나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같은 표어에서도 충분히 암시되고 있다.
어떤 불행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그저 무상으로 주어질 때보다
혼란의 원천에 있던 요인이 해소되거나
우리를 제약하던 한계가 극복되면서 주어질 때 훨씬 더 크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우울한 분위기는
수직적 구도에서 일어나는 절대적 박탈감과 이어져 있다.
반면 유교적 전통의 도덕적 주체에게 보편자는
세상 저편의 이상 세계에 놓인 초역사적 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공동체 안에서 탄생하고 유지되는 구체적 보편자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호주관적 질서 안에서
서로 다르게 계승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보편자는 계승권을 다투는 구성원들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과 경쟁을 유도하는 어떤 위험한 대상으로 부상한다.
유가 철학은 역사적이었던 보편자를 과거의 신화적 인물과 함께
다시 절대화하여 구성원들 간의 경쟁의 소지를 줄이려 했다.
특히 과거제를 중심으로 하는 관학 전통에서
신화적 절대화는 더욱 위세를 더했다.
그러나 구성원들 간의 상호주관적 질서는
여전히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심급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자신의 척도를 재는 거울은 타인의 시선에 있고
불행한 의식은 상호주관적 관계에 놓인 구성원들 사이에서 성립한다.
또한 수평적 구도에서 일어나는 상대적 박탈감과 이어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 한국인이 우울한 의식에
빠져 들어가는 이유는 많겠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가
드라마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이 집단적인 행복감에 빠져들었던 사례로
2002년 월드컵 축구 대회 때의 흥분을 들 수 있다.
그때는 과연 온 국민이 행복했는데
당시 붉은 악마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꿈은 이루어진 다였다.
반면 오늘의 한국인, 특히 청년들이
꿈은 이루어졌다는 문장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의 폐허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며 이룩한 신화들
고도성장기를 장식하던 기적 같은 이야기들
산업화나 민주화 과정에서 기록된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들은 더 이상 일어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인이 빠져든 불행하고 우울한 의식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이던 신화들
가령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가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하리라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리 사회를 그토록 역동적으로 만들어주었던
그 풍부한 반전의 가능성이 점차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
한국인의 집단적 우울증의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첫댓글 잘읽고 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월이 약이랍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장문의 글
수고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반전의 반전 드라마가 일어나지 않을것같은
우울감?!
좋은일이 일어나길 바라면서~(기원함)
쨍하고 해뜰날 반드시 옵니다.
감사합니다.
@경인선 그렇겠지요~
그래야 하구요ㅎ
@리 릭 다함께 파이팅 합시다.
@경인선 네~~엡👍
@리 릭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