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1: 17 팔이 마르고 눈이 멀어버릴 것이라 ( 2 )
(3) 가련한 것
'가련하다'는 것은 곧 불쌍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오늘 이 시대의 믿음이 불쌍하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주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사회의 부요가 교회로 들어와서 신앙을 식게 하고, 부요에 젖어 식어진 신앙을 부여잡고 괴로움을 겪는 모습은 가련할 뿐이다.
* 슥 11: 5 -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도다.
* 눅 18: 11-12 –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 롬 11: 20 –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 고전 4: 8-10 –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 고전 15: 19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4) 가난한 것 - 영적 가난 함.
'가난'은 라오디게아 인들이 금융업이 발달할 정도로 물질적인 부를 축척한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상태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2:9).
여기서 '가난'은 육적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가난이다.
이 교회는 미지근한 신앙으로 인해 영적인 요소를 다 잃어 버렸다.
즉, 주님 말씀처럼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아무 쓸모가 없는 상태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도 믿음이 가난하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교회들은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가난한 것'이 섬기는 교회와 자신에게는 없는지 회개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홍수 속에 식수가 갈급하듯이, 교회의 홍수 속에 진리를 외치는 말씀의 선포는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보자.
* 잠 30: 9 -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눅 1: 53 -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 고후 8: 9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5) 눈 먼 것 - 영적 소경
'눈먼 것'은 라오디게아에 특수한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영적 시각 장애자로 분별력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라오디게아는 안질의 안약을 발명함은 물론이고 의학교를 세워 의술이 발달된 이곳에서 눈먼 것을 모른다는 책망은 역설이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 상태가 감겼다는 것이다.
시대를 보지 못한다는 것으로 징조와 시대, 진리를 보지 못하였다는 의미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시대의 징조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성경을 통해 역사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소경)이 시각장애인(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
* 사 42: 19 -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
* 요 9: 40-41 –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벧후 1: 9 -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 사 29: 9-12 –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 사 56: 9-12 – 9 들의 모든 짐승들아. 숲 가운데의 모든 짐승들아. 와서 먹으라.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6) 벌거벗은 것 - 믿음의 수치
라오디게아는 직조업이 발달했다. 그런 도시에서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볼 때 너희가 벌거벗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벌거벗으면 부끄러운 것이 다 드러난다.
하나님 앞에 믿음의 행위가 다 벌거벗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라오디게아 시대를 말하는 것이지만, 예언적으로 오늘 이 시대를 말한다. 여러분은 이런 말씀을 듣고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란다.
라오디게아에는 칭찬이 하나도 없다.
중세 암흑시대가 타락했다고 하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지금이 훨씬 타락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철통같이 믿어야 한다.
* 창 3: 7,10-11 –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 사 20: 4 -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 사 47: 3 -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나 3: 5 –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벌거벗은 것'은 라오디게아의 검정색 양모가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이 영적으로 벗은 모습임을 시사한다(Mounce).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여 전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Johnson).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고,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해지는
그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