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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부쳐
김영수
지난 2018년 연말에 별세하신 아버지께서는 음악, 문학, 미술 등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으셨다. 이론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하신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당신께서 직접 많은 작품을 남기셨다. 음악 부분을 예를 든다면 생전에 교향곡 1편, 현악 4중주 2편, 가곡 350여 편을 남기셨다. 지난 1962년에는 아버지께서 작사, 작곡하신 <광부(鑛夫)의 노래>(대한광업회 제정)가 KBS 라디오 ‘이 주일의 노래’ 시간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집에 계실 때는 고전 음악을 자주 들으셨고 그 영향으로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바흐, 베토벤, 말러, 멘델스존 등 서양 음악가들의 이름과 작품 이름을 뜻도 모른 채 어깨너머로 아버지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께서는 바이올린을 전공자 이상으로 연주를 잘하셨다. 아버지가 애지중지 아끼셨던 바이올린이 있었는데 아놀드 보이트(Arnold Woit)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 수제(手製)로 만든 것이었다. 그 바이올린으로 당신이 작곡하신 가곡을 연주하시든지 아니면 유명한 바이올린 곡을 연주하셨다. 얼마나 많이 연주하셨는지 바이올린을 고정시키는 왼쪽 하악(下顎)이 오른쪽과 비교하여 비대칭이셨다. 아버지 말씀 따라 가끔 나는 흰색 말총으로 만든 바이올린 활에다 송진을 먹이는 심부름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활의 장력을 높이는 일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송진을 갖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아버지의 예술에 대한 여러 재능을 물려받지를 못했다. 특히 음악에 대한 부분이 그러했다. 그 예로서 악보를 보는 독보법(讀譜法)을 아버지로부터 배우질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학교 음악 시간에 딴 짓 하느라 이론 배우는 것을 등한시한 결과가 더해져서 나는 악보를 볼 줄 모른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뜻밖에도 친구는 내게 가요를 위한 작사를 의뢰한다는 것이었다. 작사를 부탁하는 친구는 7, 80년대 당시 젊은이들 마음을 휘어잡았던 그룹 사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던 친구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외손녀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한 노년 남성의 애틋한 마음과 같이 나이 먹어 가면서 황혼기에 접어든 사나이들의 우정을 담은 노래 가사, 두 곡을 친구는 부탁하는 것이었다. 작사가 끝나면 자기가 직접 작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노래 가사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몰랐고 한편으로는 쑥스러움도 있어 처음에는 주저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 사이로 한 명은 작사를 하고 또 한 명은 작곡을 하는 일이 재미뿐만 아니라 기억에 오래 남을 작업인 것 같아 기꺼이 작사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고쳐 잡았다. 물론 우리나라 가요사에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이 작사, 작곡한 노래가 없다는 사실도 작사를 하기로 마음먹게 된 동기가 되었다. 며칠을 생각하다가 ‘딸을 닮은 아가에게’와 ‘황혼 친구’를 작사하게 되었다. <딸을 닮은 아가에게> 날개 접은 천사로 내게 다가와 맑은 눈동자, 작은 손으로
희망을 말해 주는 너 사월의 푸르름은 아름답구나
딸을 닮은 아가로 내게 걸어와 슬픈 마음, 아픈 기억 모두 다 잊게 하는 너 오월의 꽃향기는 향기롭구나
시간은 쉼 없이 흘러, 언젠가 어미라는 이름으로 삶의 강을 건너며 날개 꺾인 겨울 천사가 되어가겠지만 딸 닮은 아가야, 유월 같은 아가야 살아낸다는 것이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오후 세 시 고양이처럼 조용히 왔다 가는 거란다 날개 잃은 천사가 되어, 날개 잃은 천사가 되어
<황혼 친구>
살아내다 사내라고 차마 말 못하고 가슴 깊이 잊어둔 설운 사연을 이젠 내게 슬며시 말해 주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긴 세월에 기억 깊이 새겨둔 아린 아픔을 이젠 내게 아닌듯 넘겨주게나
내가 아니길 바랬던 그 순간순간들을 백발의 깊은 주름으로 흘려보내고 슬픔 너머 타오르는 석양을 향해 우리 함께 가슴으로 걸어 가보자 친구야, 내 친구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긴 세월에 마음 깊이 새겨둔 설운 아픔을 이젠 우리 함께 하얗게 잊어가며
나를 잊고 지낸 그 세월 한 고비 고비들을 상념의 깊은 망각으로 하냥 묻고서 석양 너머 기다리는 희망을 향해 우리 함께 마음으로 걸어 가보자 친구야, 내 친구야
<딸을 닮은 아가에게>는 어린 외손녀를 날개 접고 지상에 내려온 예쁜 천사로 비유를 해 보았고 <황혼 친구>는 노년에 접어든 친구 간의 황혼 녘 우정을 그려보려 했다. 하지만 실력과 경험 부족으로 노래 가사에서 엉성한 부분이 보이는 것을 끝내 피할 수 없었다. 현재 작곡은 최종 수정 중에 있다고 한다. <딸을 닮은 아가에게>는 작곡한 친구가 직접 부르고 싶어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오는 봄, 벚꽃 활짝 피는 4월 초에 두 노래가 완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작곡에 있어 완성도 높게 수정되어 가는 과정과 발을 맞춰 노래 가사도 손을 볼 생각이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글 줄이나 써오는 처지에서 가요에 대한 가사는 처음 만들어 보았다. 시(詩)가 노래로 되는 과정이 신기하면서 재미있었다. 시가 곧 노래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 두 곡의 노래, <딸을 닮은 아가에게>와 <황혼 친구>가 언제 완성되어 공개될지 아직 모르고 혹여 공개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아비가 작사를 한 노래 두 곡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다. 끝으로 이 노래를 작곡한 친구는 록밴드였던 히식스(He6)에서 베이스 기타를 멋지게 연주하던 서울, 청운초등학교 39회 동창인 다정한 내 친구, 작곡가, 최득현임을 밝힌다.
정리 : 속초에서 (2020년 2월 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