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연 기자 입력 2021.07.20 20:26 20일 오후 충북의 한 생활치료센터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집단감염으로 귀국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의 장병들을 태운 버스가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400t급) 승조원 301명 중 무려 82.1%(247명)가 코로나에 확진되는 사상 초유의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15일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지 단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전문가들은 함선 구조상 함내에 단 한명이라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함선 전체가 ‘바이러스 배양소’가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지적한다. 함선 자체의 중앙공조시스템과 극악의 3밀(밀접·밀집·밀폐) 환경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국방부는 함선 승조원에 대한 백신 공급을 소홀히했고, 군 당국은 함내 코로나 의심 신고에 단순 감기 처방으로 대응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군 당국에 대한 책임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묵은 공기가 계속 도는 통풍관…”저녁 메뉴까지 다 안다” 전문가들은 문무대왕함 내 급격한 바이러스 확산 배경으로 함 내 ‘환기 시설'에 주목한다. 함정은 중앙 공조(空調) 시스템에 의해 내부 공기가 공유된다. 문무대왕함은 400여개 격실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모든 격실이 공기를 공유하는 구조다. ‘통풍관’이라 부르는 하나의 긴 관이 400여개의 모든 격실 천장을 지나면서 공기를 내보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통풍관에는 필터가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나 황사 정도를 거를 수 있을 뿐, 감염병 바이러스를 차단할 정도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외부 공기의 대규모 유입도 어려운 구조다. 함정 공조시스템에는 외부 공기 유입을 아예 전면 차단하는 기능까지 있다. 전시(戰時) 화생방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집단 감염 당시 함정에서 이 기능이 작동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같은 공기 흐름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음식 냄새다. 군 관계자는 “조리실에서 만드는 음식 냄새가 통풍관을 통해 다른 격실로 퍼져나가기도 한다. 조리실 안에 냄새를 빼내는 통풍구가 있지만 대부분 함 내 통풍관을 통해 돈다”며 “그날 취사병이 준비하는 저녁 메뉴를 냄새만으로 미리 아는 경우도 있다. 만약 누군가 흡연을 한다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그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여기에 에어컨이 바이러스 확산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문무대왕함은 아프리카 인근에 주둔했다. 24시간 에어컨 가동이 불가피했다. 군 관계자는 “함정 에어컨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닌 장비를 위한 것”이라며 “장비 발열로 망가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춥게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을 튼다. 심하게는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에어컨을 24시간 켜두는 건 바이러스 전파를 가속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라며 “기침이나 재채기를 했을 때 보통 비말이 1~2m를 날아가는데, 에어컨 바람이 이를 7~8m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달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데, 개별 환기는 불가능하다. 일반 병사의 선실은 수면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창문은 당연히 없다. 내부에 외부 공기를 들일 수 있는 건 승조원들이 갑판을 오갈 때 문을 여닫는 순간뿐인 셈이다. ◇ 극악의 ‘3밀’ 환경…70~80명 한 데 모여 식사 함정은 400여개의 격실로 구성돼 있다. 계단과 복도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하나의 ‘방’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크게 침실, 식사, 휴게 공간으로 나뉘는데 수용 가능 인원은 최대 수십명에 달한다. 일반 병사 침실의 경우 20~30명이 한 방을 사용한다. 3층 침대가 8~10개 설치된 식이다. 함장 및 장교들은 단독 혹은 2~4인이 같은 방을 쓴다. 함장 등은 승조원들과 다른 층을 쓰며 주로 수면 위에 있는 침실에 머문다. 비상시를 대비해 전투지휘실 가까이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는 함장과 부장이 별도의 층, 단독 방을 사용하고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휴게 공간은 다른 곳과 비교해 넉넉하지 않지만 5~10명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 문무대왕함에는 체력단련실이 마련돼 있는데, 런닝머신 2~3대와 그 외 두세 가지 운동기구가 구비된 정도다. 헬스장을 연상케 하는 이 공간 역시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전원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출국한 특수임무단이 19일(현지시간) 문무대왕함에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뉴시스 김 교수는 함 내 구조가 최악의 3밀(密) 구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이 몇 명을 감염시킬 수 있느냐를 계산했을 때 보통 2.5~3.5명으로 본다”며 “그러나 3밀 환경에서는 7~10명까지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수 있으며 이번 사례 역시 한 명이 대여섯명 이상을 전염시켰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모든 상황을 바탕으로 봤을 때 ‘비말 감염’ ‘접촉 감염’ ‘환경 오염에 의한 감염’ 등 모든 형태의 감염이 단시간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환경 오염에 의한 감염이란 바이러스 보유자가 기침 등을 했을 때 손잡이 등 주변 물건에 침이 묻고, 그걸 타인이 접촉하며 감염되는 형태다. 김 교수는 “그렇게 주변 여기저기 묻은 바이러스는 또 며칠간 성장했을 것”이라며 “이 경우 거즈 등을 이용해 힘주어 닦아내는 방식으로 소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정 자체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소였다는 것이다. ◇ “최악 환경서 열 40도 호소, 그런데 타이레놀 2알” 이런 상황에서도 군은 코로나 집단 감염에 둔감하게 대응했고, 심지어 코로나 의심증상 신고에 감기약을 처방했다. 함정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한 장병의 아버지는 “독감에 걸린 병사들이 맛이나 후각을 잘 못 느껴 일반적인 독감일 리가 없다. 코로나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했으나 묵살됐다”라고 주장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청해부대는 초기 유증상자가 나왔음에도 감별 능력이 떨어지는 ‘신속항체검사’를 실시했다. 이후 음성 판정이 나오자 병사들에게 단순 감기약을 처방했고, 추가 방역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확진자가 크게 늘었다. 아버지는 “병사들이 일반적인 감기와는 다르다고 수차례 보고했는데 간부들은 코로나 의심도 안 했다고 한다”라며 “병사들 체온이 39~40도까지 오르는데 타이레놀 2알씩 주면서 버티라고 했다”고 군의 부실대응을 질타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브리핑룸에서 청해부대 34진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서 장관은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을 보다 세심하게 챙기지 못해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한 데 대해 국방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내부에서는 오히려 이미 함정 내 감염 취약성은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바 있는데, 이를 당국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탓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앞서 지난해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즈벨트함에서 1000명 이상이 확진돼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했었고, 올해 4월 국내 해군 상륙함 고준봉함에서 38명의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바 있다. 결국 백신 공급 실패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선상 부대가 집단 감염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군 당국자들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군은 백신을 제때에 공급하지도, 첫 환자에 민감하게 대응하지도 못했다. 집단 감염은 인재(人災)”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