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란
어린 시절 이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미국을 믿지 말라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은 다시 일어난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그냥 따라서 부르곤 했다.
아우라님이 장문의 글을 올렸다.
내가 광복절을 맞아 짧은 글을 올렸더니
그에 대한 화답이었던 거다.
일본에 대한 시각이 크게 확 열렸다.
나의 부친은 한양공고를 나오시고
(당시는 한양중)
당시는 일제강점기였으므로
일본의 조병창(造兵廠)에 다니셨다.
좌파들의 시각으로 친일파가 되었던 셈이다.
광복이 되자 미군이 진주하고
나의 부친은 미군의 병기창에 근무하게 되었다.
좌파들의 시각으로 친미파가 되었던 셈이다.
미당 서정주는 아비를 저주하는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저주하진 않았다.
내가 저주의 노래나 부르는 위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만나 우리는 시골로 낙향했다.
농사일을 하시다가 어려우셨던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모습이었는데
그때 부친은 일본의 어느 인사와 서신을 교환하시더라.
할 일 없으면 일본으로 나오라는 거였다.
조병창에서 같이 근무하던 사람이라는데
아마 기술팀장이거나 선임이었던 모양이었다.
일본 월간잡지도 받아보시던데
나는 그걸 찢어서 화장지로나 썼을 뿐이었다.
일본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런 틈에서 자리 잡았다.
사범학교를 나와 첫 교직에 몸담았다.
걸어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벽지의 초등학교였다.
아침이슬을 헤치며 가며 오며 일본어를 공부했다.
야마도 하나~
고레와 와다구시노 데스~
그러나 이것도 시들해져 중단하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정기관에 들어가
이것저것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관세청에 들어가 이것저것 알아볼 때였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반도체기업이
그 제조기계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었다.
한 대에 수백억 원짜리 들이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국수틀을 사다가 국수를 빼어 팔아먹는 형국이었다.
나는 일본이 그런 기계를 팔지 않으면 어쩌나...?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그들인들 팔아먹어야 돈을 버는데, 왜 안 팔겠는가.
허나 정치인들이 훼방을 놓으면 서로 망하는 거다.
일본의 온천지대에 가본 일이 있었다.
뜨거운 물이 흐르다 담기고
거기에 몸담고 좋아라들 하더라.
나는 온천가에서 한가하게 대금이나 연주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 가슴속엔 평온이 담겨있는 건 아니었다.
화산지대에 올라앉은 일본~
태풍의 길목에 들어선 일본~
한시도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지진이 일어났다는데
일본 특유의 질서의식이 무너졌다고도 한다.
참 불쌍하기도 하다.
간첩 깐슈로 더 잘 알려진 정수일 교수는
<교류>란 책을 썼다.
인류사는 서로 교류의 여정이라는 거다.
그런데 가다 오다 울타리를 치거나 금을 그어놓고
내 것, 내 나라라 한다는 거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남들이 선점한 건 그것대로 인정해야 하거늘
일본이 우리를 탐하는 건 신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다.
하긴 죠용한 아침의 나라, 우리를 탐할만도 하다.
그렇지만 아니하고 공생의 길을 걸으면 좋으련만~
허나, 한 이불 덮어쓰고 자던 부부도
갑자기 원수가 되지 않던가~
최근 세기의 이혼사건도 그런 것이리라.
성경에서도 카인과 아벨의 갈등이 그려지고
에서와 야곱의 갈등이 그려지고
요셉과 그 아들들의 갈등이 그려지는데
가만히 보면, 가까울수록 갈등으로 번지는 걸 느끼게 된다.
우린 멀리 떨어져 사는 트루키에를 형제의 나라라 하는데
가까운 이웃과의 평화는 요원한 것이던가...?
카페에서도 가깝게 어울린다면서
어느날부터 날선 시비를 걸어오는 걸 보면
인간의 본성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우라 님의 긴 글을 읽고
구시렁거려 보지만
삶의 방 회원들이시여!
이웃이 없으면 쓸쓸하더이다.~
첫댓글 선배님 반갑습니다~!!
젊은이들이 참전세대와 그 윗 세대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왜인들이
한국인들을 卑下하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明成皇后를 민비閔妃라고
하고 朝鮮朝를 이씨조선이라고
하고 또 韓國畵를 동양화
東洋畵라고 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데 이유는 日政時代
신민지사관으로 확실하게 배운 분들로부터
다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頭緖없이 글 달아봅니다
선배님 여여하시죠?
단 결~!!
맞아요.
수긍이 갑니다.
사실 아직도 일본문화의 잔재가 남아 흐르고 있지요.
당대를 살이온 분들이나 그 직후의 세대들이 암암리에 그런 잔재를 표출하는 것 같아요.
그게 생소한 젊은이들이야 식상할 테고요.
외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일본에 가셔서 돌아가실 때 되서야
고향에 돌아와 묻히셨죠.
자연히 일본을 알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선조들이 겪은 전쟁의 폐해와 고통을
우리는 몇 만분의 일도 못 느끼죠.
그저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만.
가끔은 생각합니다.
일본을 철천지 원수로 증오하먼서도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남북한이 갈라지고
수십년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의 위험과
불안 속에 살면서도 중국을 크게 미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언지 아리송합니다.
우리를 약소민족이라 하던데
지정학적으로 외세에 억눌리다보니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심성의 디엔에이가 생성된게아닌가, 하는생각도 해보게됩니다.
중국은 대국이라하지만 어서 쪼개져야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와요.
아우라 님과 도반 님이 나누는
품격있는 담론을 보며
또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네요~
우리나라에선 동네 서점은 물론
학교 앞이나 대형 서점도 점점 쪼그라드는 추세이니
일본은 다시 일어난다..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점이 걱정미기도 하지요.
문자보다 이미지에 너무 경도되어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잘살고 일본도 잘살아야지요.
일본에 대하여 무지 하지만
아들이 일본어교사라서인지
일본에 대하여 항상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친정엄마는 일본이라면 치가 떨린다며 일본여행도 안가십니다.
식민지 시절 벼농사 지으면 수확기에
일본놈들이 낫알까지 세며 가족들 일년 양식도 남기지도 않고 전부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치가 떨린다니
그럴만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