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화 탐구’-서브컬처 4편(비틀즈 팁)
# 비틀즈에 얽힌 이야기들
- ‘2세 비틀스’ 결성과 사도스
세계 곳곳에서 비틀스 탄생 50주년과 관련해 각종 헌정밴드(tribute band) 공연이 열리고 있다. 세상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은 비틀스의 재결성 공연이다. 네 명 중 두 명이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헌정밴드라기에는 오리지널에 가깝고, 그렇다고 오리지널 밴드는 아닌 이상한 밴드 결성이 추진되고 있어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비틀스 2세들에 의해 ‘2세 비틀스’ 결성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을 두고 비틀스 노래 ‘Here comes the sun’을 빗대어 ‘Here comes the sons’라고 사람들은 빈정댄다. 존 레넌의 막내아들 숀(36), 폴 매카트니의 아들 제임스(34), 링고 스타의 막내 제이슨(44), 조지 해리슨의 아들 다니(33)가 그 결성 시도의 주역들이다. 사진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닮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긴 하지만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 특히 존 레넌의 아들 숀은 아버지 존을 대표 상징하는 동그란 안경까지 쓰고 있어 젊은 존 레넌이 다시 살아온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유명인사의 못난 아들딸을 부르는 ‘사도스(SADOS·Sons And Daughters Of Stars)’도 있다. 언론들은 비틀스 2세들을 ‘사도스’라 일컬으며 놀린다. 이렇게 비틀스 아들들의 시도를 보는 세간의 눈길은 차갑다. 특히 폴 매카트니는 아들 제임스의 음악계 진입을 옆에서 열심히 돕고 있으나 별로 성공적이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들 ‘사도스’ 중 나름 성공한 경우는 폴 매카트니의 딸인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존 레넌의 맏아들인 싱어송라이터 줄리안, 링고 스타의 맏아들로 영국 최고의 밴드 ‘오아시스’와 ‘더 후’의 드러머로 활동 중인 잭 정도다.
- 비틀스는 적기적소의 행운아
비틀스를 찬양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세계 현대 대중음악은 비틀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최고가 아닐까 한다. 비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틀스가 그렇게 성공한 것은 적기적소(right time right place)에 비틀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틀스 노래는 그냥 조금 즐겁고 로맨틱한 리듬일 뿐이어서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그냥 괜찮은 밴드로 끝났을 텐데 몇 가지 행운이 따랐다는 말이다. 당시는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 주머니에 돈이 돌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베이비붐 시대의 아이들이 청년이 된 시기였다. 당시 미국 인구의 35%가 베이비 부머였다. 동시에 세계적으로, 특히 미국에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온 깔끔한 복장의 미남 청년들이 미국인들에게 어필한 것은 당연했다.
-관광코스로 남은 비틀스
비틀스가 유명해지기 전 연주했던 ‘케번 클럽’. 비틀스는 50년 만에 전설이 되어 그들의 발자취는 모두 관광 코스가 됐다. 리버풀에는 ‘비틀스 차일드후드 투어(Beetles Childhood Tour)’라는 관광코스가 있다.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어릴 때 살던 집을 방문해 둘러보는 관광이다. 두 집 다 영국의 문화재 보호단체 ‘내셔널 트러스트’에 이미 기증돼 관리되고 있다. 비틀스가 유명해지기 전 연주했던 매튜 스트리트(Mathew Street)에 있는 케번 클럽(Cavern Club)도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다행히 펍이라 아직은 입장료가 없다. 이름처럼 동굴 같은 지하로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 벽에는 비틀스의 부조가 조각돼 있고, 무대에는 비틀스가 공연하던 당시 모습이 보존돼 있다.
<세번째 맨발이 만우절에 죽었다는 폴 메카트니>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에비로드’ 재킷 사진의 배경이 된 횡단보도도 인기다. 최근 에비로드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유명한 에비로드 근처 지하철역은 세인트 존스우드(St. John’s Wood)역이다. 그런데 지난해 런던 동쪽 웨스트햄에 에비로드역이 생겨 관광객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온 관광객들은 엉뚱한 동명의 역 근처에 가서 헤맨다. 덕분에 근처 구멍가게는 무려 30%나 매상이 올라서 싱글벙글이지만 인근 주민들은 안타까워한다. 또 진짜 에비로드 횡단보도 근처의 가게들은 런던시에 항의를 하고 난리가 났다. 에비로드 횡단보도는 영국 정부에 의해 2010년에 이미 2급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 에비로드 횡단보도는 최근 관광지 안내 웹사이트에 리버풀의 케번 클럽이나 앨버트 독의 비틀스스토리박물관을 제치고 비틀스와 관련돼 반드시 가봐야 할 명소 중 1등으로 선정됐다.
<이상 주간조선 2228호/2012.10.22 ‘비틀스와 007 탄생 50년“ 재정리>
- 비틀즈보다 더 나은 가수-윤복희
‘써니“라는 노래 기억합니까?
1970년대에 보니 엠이 리메이크, 세계적으로 힛트한 노래인데, 이미 1960년대에 윤복희가 부른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케네디대통령을 기리는 노래였다고 합니다(미확인)
“웃는 얼굴 다정해도”로 가수로 데뷔했지만, 본인은 가수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피터 팬 등)로 불리우기를 원하지요
1963년 세계적인 가수 루이 암스트롱이 출연한 워커힐 극장 개관무대는 윤복희의 데뷔 무대가 되었다.
암스트롱이 자신의 노래를 잘 흉내내는 한국의 꼬마 여가수를 찾았고
윤복희는 세계적인 대스타 앞에서 기가 막히게 모창을 불렀다. 그녀는 1963년 필리핀으로 첫 해외 공연에 올랐으며
암스트롱의 초청으로 미국 라스베가스까지 진출한다.
윤복희와 무용수 서미선, 김미자, 이정자 이들이 훗날 <코리언 키튼즈>의 오리지널 멤버가 된다.
새롭게 팀을 구성한 이들은 동남아 순회공연을 벌였다. 그녀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바로 이때다.
1964년 10월 싱가포르 공연을 본 영국인 쇼 프로모터 찰스 오우 마더가 4인조 여성보컬그룹 결성을 제의했던 것고,
팬이었던 싱가폴 호텔 사장 후레디 유는 팀명을 <코리언 키튼즈>로 지어주었다.
그 해 11월 <코리언 키튼즈>는 영국 런던으로 가 한복을 입고 BBC 방송 투나잇 쇼에 출연해 갈채를 이끌어 냈다.
이때 비틀즈가 유명해지던 시기인데 영국 런던 타임즈에 '코리안 키튼즈'와 '비틀즈'가 나란히 실렸다.(최근 한 방송에서 공개)
기사의 결론은 “영국인 남자 4명과 한국인 여자 네명, 한국애들이 더 낫다”
1966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호텔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후 유명 코미디언 봅 호프의 주선으로 CBS TV 특별 쇼에도 출연했다.
당시 활약상은 외신을 타고 국내에도 잠시 소개되었으나 5.16 쿠데타이후 당시 사회분위기는
소위 ‘딴따라’들이 대접받지 못하고 문화적으로도 핍박받던 시절이기에 묻혀 버렸다.
윤복희가 최초의 한류 스타였던 셈이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 세계 음악 천재 3B : 베토벤, 바하, 비틀즈 (농담아닌 농담입니다)
첫댓글 그렇군요
콜 선생님 중요한 서브컬쳐의 한 꼭지의 재발견입니다
윤복희님 오늘의 싸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네요
어떤 하위문화도 시대와 환경의 선택적 친화력이란게 있나봅니다
전 써니 영화를 통해서 우리의 암울햇던 카운트컬쳐를 떠올리곤 햇는데 그 속에서 암울햇던 사회의 희망을 찾고 그리하기위해 인내를 배우기도 햇어요
오늘의 비틀즈와 어게인비틀즈, 윤복희 어게인 윤복희를 기대해봅니다
써니님을 위해 '써니' 가사를 내일 올리겠습니다.
세익스피어가 현대에서는 대문호로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지만'
세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서는 세익스피어는 시장 장돌뱅이, 천한 글쟁이로 그야말로 하위문화권을 돌던 작가였지요. 말씀대로 시대에 친화력을 가진 문화예술은 훗날 고전, 클라식으로 승격(?)합니다.
에궁...^^
행복한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휴강을 예고햇는데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저는 두 강의를 한 번에 독파하는 행운을 얻었는데 내일까지 연일 행복합니다
편안한 밤 되시고 내일 뵈어요♥*♥*♥
서니 가사는 가졌는데, 참에 영화 원제목을 알고 싶습니다.
작년 이때쯤 어떤 기회가 되어 '보키'누나와 담소를 나눈적 있는데, 또한번 저를 놀래케 했습니다.
그는 한류,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것을 세계화하고 컨텐츠를 내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의 것을 한국화도 하여야 한다"고 하며 즉석에서 예를 들며 노래를 들려 주었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창' 창법으로 부르더군요.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창을 세계화하려면 세계의 노래를 창으로 불러 들려주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겠다는 답을 주더군요.
맞아요
모든 소통이 그렇듯이 쌍방관계가 좋은거죠
우리도 그런 노력을 해야죠
제 아이가 가야금을 하면서 서양음악 특히 작곡하는 친구들과 교류를 하는것도 그런 시도의 틈새를 발견하려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화 상대성으로 접근하면 어떤 문화도 우월이 있는것은 아니니 교류속에서 친화력이 나온다면 또 다른 장르의 탄생이 되겟죠?
김진희씨(거억이 아물)가 미국에서 전자 가야금을 만들어 연주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더군요.
국내에서는 강은일씨가 전자 아쟁을 개발하고 있지요.
강은일 연주는 눈물로 들어야 합니다. 정말 훌륭한 연주자입니다.
강은일의 연주를 전주소리문화의전당 에서 전주시립국악단과 협연하는걸 봤습니다
그녀의 끼가 얼마큼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해금소리는 한의소리 깽깽이가 아니고 희망을. 기쁨을. 설레임을 연주하더군요
예술인들의 끼는 어떤 시도를 해도 예술로 승화될 것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