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석
김학성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이제 추석이 며칠 안 남았으니 가을은 가을
인가보다.
추석 명절이 코앞에 닦아 왔는데도 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 어린 시절 추석이 돌아오면 애 어른 없이 분주했었다.
아이들은 여름 방학이 끝나기 무섭게 가을 운동회 연습으로 정신없이 운
동장으로 내 몰렸었다.
벌초하러 가셨던 아버지의 지개위에 빨갛게 익은 보릿동 나무 가지와
붉은 고추잠자리가 동무하여 실려 오면. 어머니는 여름내 찌든 온 집안의
방문을 모두 떼어 문살마다 거미줄처럼 엉킨 지난여름의 묵은 때를 깨끗
이 닦아내고 누에고치 빛 같은 한지를 바르고 맨드라미 백일홍 서광 코
스모스로 예쁜 꽃수를 놓아 해맑은 가을빛을 문마다 가득 가득 담아놓았
었다.
여름내 누지고 허물어진 구들장과 아궁이를 다시 쌓고 정갈하고 고은
조대 흙을 파다 부뚜막과 뜰을 물 맥질하고 차례상에 올릴 햇벼를 수수
깡이나 홀태. 탈곡기로 초련하여 양달 멍석위에 널고 송편 고물[소]를 할
동부나 팥은 둥근 맥반석 위에서 말렸었다.
으슥한 곳에 꼭꼭 숨겨 논 술 단지에서 술 익는 냄새가 슬슬 나무 울타
리를 빠져나가는 밤이면 다듬이 소리가 달을 옥양목처럼 하얗게 바래어
둥글고 크게 펴 나갔었다.
남자 어른들이 여름 장마에 떠나려간 섶 다리를 다시 놓고 메인 도랑과
고샅길을 다듬으며 막걸리에 취해 온 동래가 한바탕 시끄러워지는 것도
이맘때의 연례 행사였었다.
추석막바지 대목장이면 재를 넘고 섶 다리를 건너 제물과 추석빔을 장
만하려 지개에 고추, 쌀 등을 지고 온 아저씨들 왕골자리를 걸러 멘 노
인. 토끼새끼나 닭이 들은 다래끼를 메고 온 아주머니, 가을걷이에 쓸 물
푸레나무 도리깨 노리나 땔 나무를 지고 온 산골 총각 손자 놈들 양말이
라도 사주고 싶어 잡곡 몇 되박을 이고 온 안노인등 삼사십리인근 온 장
꾼과 장사꾼들이 해가 설핏하도록 장마당이 차고 넘치게 북적댔었다.
추석 하루 이틀 전쯤이 되면 돼지의 멱따는 소리가 액막이처럼 시골의
고요를 찧고 순대 냄새가 골목으로 펴져 갔었다.
그때 우리들은 객지에 나갔던 누나가 오고 추석빔을 얻어 입을 수 있고
송편과 햇과일 그리고 돼지고기 몇 첨을 먹을 수 있는 추석을 날마다 손
꼽아 기다렸었다.
그때는 명절이 추석 당일만이 아니었었다.
추석 다음 날 하던 가을운동회 날은 차례지낸 음식과 햇고구마. 삶은 밤
을 먹을 수 있고 오징어나 사이다. 눈깔사탕. 비가 등을 살 돈을 얻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였었다.
시골 운동회 날은 인근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이 모두 함
께하였고.
프로그램에 졸업생 경기가 빠지지 않아 객지에 나가 공장 다니던 고모.
누나. 자동차 조수를 하던 삼촌 이발소에 취직한 형들도 함께하는 만남의
장이었었다.
그 시절 어른들은 먹고 사는 것이 하 어려워 명절 돌아오는 것이 호랑
이처럼 무서워도 햇곡을 먹이고 싶어 타지에서 고생하는 자식들을 애타게
기다렸었다고 하였다.
지금처럼 전화도 없고 쉬 오고 갈 수도 없었으니…
언제부터인가 나도 지출해야 할 돈이 더 많은 명절이 두려워지더니 이-8
제는 장성한 아이들이 있어 두렵지만은 않다.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요즘 아이들은 무슨 기대로 추석을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늘 많은 것을 준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의 소박한 꿈을 빼앗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올 추석엔 굶어 죽어가는 세상의 모든 어린 생명들의 허기가 송편 속처
럼 채워졌으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이 들의 소원과 기다림이 한가위 보름달처럼 밝게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전쟁과 재앙이 모두 걷히고 이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2005/22집
첫댓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소원과 기다림이 한가위 보름달처럼 밝게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전쟁과 재앙이 모두 걷히고 이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