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새벽 6시 기상이 일상화된 산골 생활.
12월 초순의 6시는 한밤중처럼 어둡다.
뜨끈한 구들방의 따스한 이불 속에서 기어나와 두터운 옷 걸쳐입고 마당에 내려서면
차디 찬 산골의 공기가 볼에 닿는다.
그리곤 온 몸을 휘감아 돌아 구들 온기 머금고 있는 내 몸뚱이의 열기를 낼름거리며 앗아 간다.
그러면 나는 찬 숨을 후욱 들이켜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어떤 땐 쏟아질 듯한 별빛이 온 밤 지새우고서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반달이 된 달은 긴 밤 지새우고 졸리운채 떠 있기도 한다.
동, 남, 서 하늘을 휘이 올려다보고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 언제나 고요한 무등산이
고요한 채 밤을 지새고 있다.
그러면 나는 하늘과의 눈맞춤을 끝내고 밤새 닫혀져 있던 대문을 연다.
새벽녘 어둠 속에 열리는 우리집 대문.
아마 우리 동네에서 제일 먼저 열리는 대문일 것이다.
화는 들어오지 말고 복은 많이 많이 들어오라는 내 마음 속 바램을 주기도문처럼 외우며
나는 대문을 연다.
대문을 열고 나면 나는 문간채 기둥에 걸려 있는 온도계를 본다.
어둠 속에 라이터 불 켜고 보는 온도계.
요즘은 노안이 와서 안경마저 벗어야 보인다.
눈으로 확인하는 온도계는 어느새 그날의 온도를 감지하고 있는 발바닥의 감촉을
무언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 무언의 인정에 화답이라도 하듯 나는 안방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산골의 일상은 그렇게 열리고 그 일상 속에 사람들 발걸음 또한 여전하다.
그 여전한 발걸음 속엔 참 많은 재회가 있다.
1년 만의 재회, 2년 만의 재회,
3, 4, 5, 6, 7, 8, 9, 10.
텀이 긴 재회가 있는가 하면 1달에 한번 꼴인 재회도 있다.
헌데 오늘은 40년 만의 재회.
산적의 중학교 친구 두분의 발걸음이 문지방을 넘어 섰다.
안방에 둘러앉아 과거로의 타임머쉰에 나앉은 세사람.
그 때 그시절 겪었던 숱한 이야기.
보편적 가난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의 고달펐던 이야기.
아버지 돌아가시고 기운 가세로 인해 도시락도 싸 가지 못하던 학교 이야기.
그리고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의 이야기.
누구는 자살했다더라~
누구는 무슨 일에 연루되어 죽었다더라~
누구는 어찌 어찌 되었다더라~
40년 세월은 생과 사를 넘나들고 성공와 좌절을 건너 뛴다.
중학교 시절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친구들의 40년 후의 모습.
한 친구는 생뚱맞게 생물 선생님이 되어 있었고,
한 친구는 어울리지 않게 국어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이어지는 스승님과 친구들의 이야기는 현대사가 되기도 하고 질곡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중2 때 아버지 돌아가신 산적의 눈물 겨운 삶의 투쟁 이야기.
눈물 속에 피는 꽃들.
인고의 세월들.
그 세월 속에서 꺾여져야 했던 이야기들.
공부라면 자신만만했던 울 산적.
그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의 뜻으로 세워졌던 공업계 고등학교인 구미의 금오 공고.
전교 10등 이내의 중학생으로 학교장의 추천이 있어야 입교 할 수 있었던 초대의 금오공고.
자격은 충분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공학도의 꿈을 접어야했던 산적의 과거 이야기.
하지만 내가 보기엔 산적의 접혀지고 꺾여졌던 10대 때의 꿈은 40대 때 꽃을 피웠다고 여겨진다.
FA계의 유명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꽃으로.
찾아온 친구들 역시 꽃을 피우기는 마찬가지.
아프고 고달팠던 과거가 있기에 환하고 밝은 인생꽃을 피운 사람들.
초행길인 산길인지라 어두워지기 전에 떠나야했던 분들.
40년 만의 재회는 여기저기 훤히 밝혀진 형광등 불빛 못지않은 환한 기쁨을 안겨주고
떠나 갔다.
또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선 산골의 일상은 그렇게 저렇게 소소한 기쁨을 안겨 준다.
곁에 두고서도 늘 그리워 꿈속에서마저 만나는 산적과 함께하는 생활을 늘 감사해하는 내 마음에
꽃다발을 안겨주기라도 하듯...
2011.12.07. 아낙네( http://산적소굴.kr )
첫댓글 눈몰이 있으면 반드시 꽃이 피는 걸까요?.. 인고가 있으면 밝은 날도 찾아 올까요?.. 저는 요즘 제 자신이 고목나무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런 기쁨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런 즐거움도, 희망도,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에요..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듯한 기분도 들고,, 남모르는 노력은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런 노래를 불러야만 할 것 같아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ㅎㅎ..
저의 인생 철학은 후회는 할 망정 미련은 남기지 말자~! 입니다.
일단 무엇이 되든 도전해보고 후회는 할 망정 '할까 말까 망설이는 나는 못난이~ '는 되기 싫걸랑요.
아.. 좋습니다~~ 인생철학! ㅎㅎ~ 사실 '미련'만큼 답답스런 것도 없지 싶습니다.. 저도 어찌됐건 하고싶은 만큼 하고나면 별 미련은 없어서 좋았습니다.. 이제 시원스럽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엔 시골에 갈까, 말까, 고민하고 망설인다기 보다는,,, 그냥 허무함 같은 감정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연말이라고 굳이 이랬던 적은 없었는데,,, 그냥 허무하고 별다른 감정이 업습니다.
외로움마저 이제 몸에 배겼나.. 특별히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ㅎㅎ~
과연 '다음'이란 것이 있을까... 무엇에 대한 기대도 희망도 생기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ㅡㅡ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