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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두려움, 무서움의 차이점
2024년 나해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오 8,23-27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풍랑에 죽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결국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라고 하시며 바람과 호수를 꾸짖어 고요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7)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하느님 아드님으로 대하고 있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믿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이 순서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살기 위해 무서운 것을 제거하려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불안이 가라앉아야 사라지지 무서운 것들이 사라진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불안은 오직 믿음만으로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먼저 ‘두려움’을 없애려면 두려움의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두려움이란 ‘무언가를 잃을 걱정’입니다. 그 무언가는 궁극적으로 생존과 관계됩니다. 나에게 있는 것을 잃을까 봐 이성이 만들어내는 감정입니다.
나를 두렵게 만드는 대상은 ‘무서운 것들’입니다. 무서움은 우리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무엇입니다. 오늘 제자들에게는 거센 파도와 바람입니다. 이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그 무서운 것들로 생명을 잃게 될까 하는 걱정입니다.
두려움은 이성적인 측면이고 무서움은 육체적인 측면입니다. 이성이 육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차원입니다. 더 높은 수준의 차원을 고쳐야 아래 것도 고쳐지는데 우리는 자칫 아래 것을 고치며 윗것도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어 두려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면 두려움이 사라질까요? 돈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교통사고나 강도를 만날까 두렵습니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세상 모든 것들은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제자들이 두려운 데 바람과 물과 싸우는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따라서 두려움을 없애려면 그것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이성적인 차원이기에 마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마음은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만약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불안’입니다. 불안은 믿음의 차원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무에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합니다. 불안합니다. 불안은 ‘환경’에 대한 믿음입니다. 내가 죽을 위협에 있는 환경에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를 놓으면 1미터 밑에 땅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불안한 것입니다. 불안하니까 생명을 잃을까 봐 두렵고 생명을 잃게 할 것들이 무섭습니다.
따라서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려면 무서운 것들을 치우는 일이 아니라 불안함을 없애면 됩니다. 아기들은 불안합니다. 그러나 어머니 품에 안겨있으면 평화롭습니다. 어머니가 모든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을 해결해 줄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평화를 가지면 아이는 착하게 자랍니다. 그러나 부모의 부모싸움과 같은 것으로 아이들이 불안해지면 아이들은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세상 것들에 집착하여 악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우리 불안을 없애주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한 하느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를 지으면 그분께서 함께 계심을 믿을 수 없어서 불안해집니다. 그러면 내 힘으로 두려운 것들과 맞서 싸웁니다. 믿음이 있다면 나의 창조자에게 청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청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하십니다.
믿음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대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직도 그들을 보호해주시고 그들과 함께 계심을 믿게 되자 두려움을 이깁니다. 그리고 세상의 위협은 더는 무섭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들처럼 믿음을 가집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아이들이 이성이 생기면 부모의 뜻을 따를 때만 부모로부터 보호받게 된다고 여깁니다. 아이들이 부모 돈을 훔치면 부모와 멀어집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무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하느님 마음이 기쁘다는 것을 느끼고 그분께서 함께 계심을 느낍니다. 그렇게 온 평화는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당당하게 세상에 나아가게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움츠러들지 맙시다.
- 전삼용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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