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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치하의 암담한 현실과
혼탁한 세상을 풍자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탁류,
채만식 선생의 고향 군산,
채만식 선생의 모든 작품들은
동시대의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탁류, 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공황 당시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인물의 이야기를 쓴
레디메이드 인생,
일제 강점기시대
서울을 배경으로
사회 진출 욕망을 가진 지식인들과
그 수요를 유보하는
그 당시 사회와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채만식 선생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빈곤상과 인텔리들의
실직과 소외를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식민지 시대을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구조적 병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농촌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개화 이후 한국 사회는
이상한 교육열이 휩싸여,
너도나도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으며
그 졸업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이른바 지식 청년의
과잉 생산 사태가 빚어졌다.
그것을
이 작품에서는 레디메이드
인생이라고 본 것이다.
주인공도
그와 같은 과잉 생산된 지식인
청년 가운데 한사람이다
상급학교를 나온 주인공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결국은
자기가 공부한 책을 팔아치워
술과 여자에 돈을 뿌리며
울분을 터트리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젊은이들의 아픔, 절망,
작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
괜한 서글픔을 느낀다
채만식 선생의 문학은
문학, 문학에서만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이시대의 현실에서도
뚜렷히 존재하는 것이다
.
.
.
내게는 군산하면,
웬지 모르게
학창시절부터 아스라히 그리움과
애잔함이 배어나는 곳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곳,
군산 비행장
가미카제와
군산 비행장,
일제 강점기시대
일본은
진주만 공격후에 전쟁 확전을 대비하여
조선의 청년들과 학생들을
강제로 총 동원하여 만든것이
군산 비행장이었다
후쿠오카 다치아라이 육군비행 학교
조선분교를 이곳 군산에 설립하여
6개월 속성으로
조종사들를 배출하기 시작하였으며
1년에 200여명이 배출 되었다고 하니
그 숫자도 놀라웠거니와
졸업생들 중에서
조선 청년들도 상당한 숫자이었으리라
태평양 전쟁 가까운 말기에는
이곳
조선분교에서
단기간내 간단한 조종술만 익힌 후,
꽃다운 청년들은
일본 후쿠오카로 건너가
그곳에서 필리핀, 오키나와 상공으로
돌아오는 연료없이 포탄만 가득싣고
전투기를 몰고 날아가
적의 군함에 충돌하는 자살특공대
가미카제가 되었다
우리의 관옥같은 청년들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을까
아무런 의미없는 죽음,
죽어서도 고국으로 돌아 오지도 못하고,
일본 전범들과 함께
야스쿠니에 합사된
이들의 서러움,
.
.
.
그럼에도 그 시대의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서정주의 시(詩)중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로 자폭한
조선인 소년을
미화하여 쓴 대표적인 일제 찬양의 시
마쓰이 오장 송가,
가미카제를 주제로 한
일본 영화 호타루,
.
.
.
.
군산은
채만식선생의
탁류, 뿐만 아니라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과
문순태 선생의 타오르는 강에서 느꼈던
질곡의 서글픔과 분노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그런
고장이기도 하였다
.
.
.
극단을 운영하고 있는
군산 친구에게
내려 가겠노 라고
지난 가을부터 큰소리 치던 것이
생각이 나서
일없이 쉬는동안에 날짜를 잡고,
가까이 사는 친구와 군산으로 향하였다
출발하기 전날,
친구들과
동동주 몇잔에 얼큰하게 취한것이 있어서
그런가,
만나는 친구가
아름다운 여인도 아니고,
설레이는 만남도 아닐터인데,
몇번의 잠을 설치다가
이내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말았다
겨울 날씨 답지 않게
차안에 비치는 햇살이
포근하고, 따사로왔던 군산 가는길,
한국 서남부. 전라도의 항구도시인
군산은
1899년에 개항된 이래,
배후의 너른 호남평야에서
수확된 쌀 뿐만이 아니라
곰소항과 더불어
우리의 모든 농수산물 강탈의
전진 기지로
무섭게 발전 되었지만,
1960년대부터 80년대를
거치는 동안
전라도는 역대 정권들과
정치적으로 대립을 해왔던
지역들이 많았다
군산 또한,
많이 외면받고, 소외된 도시중에
하나라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가는도중
군산 친구에게서
점심은 단골식당에서
녹두 삼계탕이 어떻겠냐고
네비주소를 보내왔다
군산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식당으로가서
예약된 좌석에 앉으니
괜한 배고픔에 마른 입맛을
먼저 다셔본다
녹두 삼계탕,
냉면 그릇만한 뚝배기 그릇에 나오는데
먼저 그런 양을 주는 인심에 놀랐고,
녹두가 풀어졌는데도 걸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국물이 맑을것도 아니면서도
죽 형태 인데도
이 두가지를 적절한 형태가
형용하기 쉽지않는
단박한 맛이었다
아직도 뚝배기의 삼계탕이
줄어들지 않는 내 그릇을 보고,
서울 올라갈때
싸줄거니까 천천히 드시라는
주인아주머니 말씀에 괜스레 먼저 웃었다
점심식사를 마친후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 마스
주 무대가 되었던
초원 사진관을 둘러보고
사진관 가까이에 있는
극단 사무실에 들려
커피한잔 하는동안
음반도 올리고 우리가 즐겨 불렀던
몇곡의 old pop를
반주와 함께 부르기도 하고,
여유롭게 감상도 하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 한후,
군산 근대문화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깨끗하고 반듯한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근대사 박물관에서는
일제 강점기시절에 건물들을
재현해 놓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근대사 박물관 근처에는
조선은행 건물 옆에
백년광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개항 100년을 기념하여
2005년도에
공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서해로 열린 100년, 세계로 뻗는
백년 개항 100년 광장 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는 있지만,
작은 규모로 오히려 초라한 느낌이다.
시골 분교장 같은 넓이 인데도
광장(廣場)이라니
백년광장을 옆에 두고
군산 세관 방향으로
구 나가사끼 18 은행
군산지점 건물이 있다.
하얗게 단정된 이 건물은
보수가 완료된 듯 한 느낌이다 .
일본 나가사끼에 본점을 둔
이 은행은
1907년 군산에 지점을
개설하였다고 한다
18 은행이라는 숫자는
일본에서 18 번째 문을 연 은행으로
일본으로 미곡(米穀)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하여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나가사끼 18 은행에서
군산 내항 방면으로 붉은 벽돌로
국내 유일한 네덜란드 건물 양식의
구 군산 세관이 있다
군산항을 통해 수없이 드나들던
물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던 곳이다
내항에 있는 진포 테마파크는
고려 말 화포를 발명해
함포로 해전을 벌인
최무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그래서인지 탱크며, 비행기,
경비정까지 군 관련 물품을
볼 수 있었으며,
위봉함이란 배를 개조해 만든
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함포 사용과
해전에 대한 설명,
그리고 함선을 탑승하여 함선내부를
직접 볼 수 있게 개조해 놓았다
내항 근처에 있는곳을 두루 돌아본 다음,
은파 공원내에 있는
야외 무대로 출발을 하였다
은파공원에서 받은 첫 느낌은
과천에 있는 백운호수나,
율동공원 호숫가 에서 느낄수 있는
그런 느낌의 호숫가
조성길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우리동네 석촌호숫가에
조성된 길보다는 훨씬 크다
은파는 호수를 따라 산책길을 만들었고
사이 사이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장소를 표시해놓아
쉬며 걷는 둘레길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은파의 산책길은 서울에있는
비슷한 형태의 산책길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다소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날이 너무 어둡기 시작하여
호수를 가로 지르는
물빛다리를 끝까지
건너지 못했다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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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일제 시대의 아픈 추억들과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타짜 에 나왔다던 히로쓰 가옥,
일본 신사의 모습을 가진
동국사,
그리고 동네 이름에서 보여지는
시대의 아픔들,
째보선창,
윌명동,
산북동 ...
군산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다는
근대 문화유산(?)인 이성당,
70여 년의 세월을 그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성당 빵집,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운영하던
빵집을 광복 후 인수하여
빵 만들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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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지 그립고,
애잔하게 느껴지기만 했었던 군산,
각 지역마다
특화거리라 하여 명칭은 거창 하지만,
내용인즉
대부분 먹거리일뿐이다
생경하기만 했던 김수미 생가,
예술가들이 모여서 작품들을
구상하고 판매도 한다는
예술가들의 동네,
말랭이 마을도
한적하다못해 을씨년스럽다
낮시간에도 시민들은 별로 많지 않고
관광하는 젊은 친구들만 보이더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관광객들 과
오고가는 시민들도 별로 많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침체된 지역 경제만큼 이나
더욱 을씨년 스럽고 스산한것 같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욱 무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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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까지 와서 섭섭하게
그냥 올라 갈거냐며
굳이, 친구가
회 한접시 하고 올라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근처의 조촐한
친구의 단골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쏘주 한잔씩을 나누었다
쏘줏잔을 앞에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다가
새만금 간척사업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불이(不二)농장 이야기가
툭 튀어 나왔다
군산의 한 지역 산북동,
그곳에 한때 불이농장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수탈의 흔적들이
지역 곳곳에 이름으로
혹은 가옥의 형태로 새겨져 있다.
불이(不二),
사전적 의미로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다.
애초에 하나였던 게 아니라
둘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 땅은 그들만의 나라였다.
다 가진 그들에겐
불이 (不二) 였겠지만
빼앗긴 조선인들에겐
절망의 굴레였으며 아픔 이었다.
불이농장은 1920년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간척의 땅이다.
그들만의 천국이었던 불이농장,
군산시에서 옥구 해안 쪽으로 달리면
갑자기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실제로 1920년부터 1922년까지
3년 사이에
갑자기 생긴 땅,
새만금 간척사업지의 절반인
그 넓은 땅의 간척을 당시의 기술력으로
3년 만에 끝낸다는 것은 기적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넓은 농토가 떨어졌거나
아니면 바다에서
쑥 솟아난 느낌이 드는
그 땅 전부가 불이농장이다.
그러나 불이농장은 현실이다.
불가능을 현실에서
실현한 기적의 힘은
모두 조선 노동자의 손에서 나왔다.
돈도 주고, 배불리 먹여 주고,
간척이 끝나고 나면
농토까지 보장해 준다는
일제의 선전 문구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지만,
간척이 완료된 후에
조선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머슴의 삶 뿐이었다.
우리 땅에서 일인들은
번듯한 가옥에 살았고,
조선인들은 바람조차 막지 못하는
움막에서
몸뚱아리만 가린채 그렇게 하루 하루를
짐승처럼 버티어 갔다
조정래선생의 소설 아리랑을 참조
.
.
.
소줏잔이 기울어질수록
우리의 대화는 한탄에서 탄식으로
급기야는
뜻모를 쉰 목소리가 난무하였다
그렇게 쏘주가 다 떨어진 다음에야
아쉬운듯 일어나 다음을 기약하며,
서울로 올라가야하는 시각,
나야 뭐,
서울까지 운전을 안해도 되니
거나하게 취한
이상태가
더 말 나위 없이 좋았지만,
그렇다고,
서울까지 운전하고
올라갈 친구의 노고에
미안할 마음도 가지지 않을터,
봄 향기 한껏 무르익으면,
다시 한번 내려와서
오늘 가보지 못한 월명산과
채만식선생 문학관도 들려보고,
새만금과 옥구도 가고싶고,
친구와 공연도 함께 하고
싶다고
술 취한 김에 공연한 허풍을 떨었다
.
.
.
고속도로 가로등 밑으로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서울로 올라오는 먹물같은 한밤중 길,
내가 그토록
그리워 했던
군산이 아니어서 그럴까,
군산도 나와 같이
하염없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서 일까,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라는
한줄의 시귀가
불현듯 생각나는
군산 다녀오는길,
.
.
.
아아~
구슬픈 뽕작이라도
한곡 부르고 싶다
글.그림.오.베

첫댓글 오베 님의 글을 따라서
학창 시절 배웠던 탁류, 레디메이드 인생 줄거리를 떠올리고
카미카제의 서글픈 역사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군산항 횟집에서 마주 대했던 거한 상차림..
이런 저런 한이 많은 전라도 땅이라서 그런가??
마치 한풀이하듯 갖가지 음식을 맛보게 해 주더군요~
근래에는 새만금도 가 봤는데
거기가 불이 농장인 줄은 몰랐네요~
여튼 오베 님의 기행문(?) 수필(?)
잘 감상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아래의 음악회에 초대합니다~
이미
수준 높은 여러 음악회에 다니고 계시겠지만
가까운 곳에서 이런 음악회도 열린다니
시간 되시면 다녀 오셔요~^^
군산하면
저는 김승옥 선생의
무진기행이 떠 오릅니다
화자가 말하는
항구 마을이
군산 어디쯤
바닷가 어귀에 조그마한 곳이
아닐까 하구요
늘,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두용님도
얼마전에 다녀가셨군요
저도 올 한 여름에 당일로 다녀왔어요
친구가 소극장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친구들과 부리나케 다녀 왔습니다
이 글을 쓸때가 군산을 처음 가봤어요
군산하면 늘 마음 속에 있다가도
막상 가기가 쉽질 않더라구요
마침, 친구가
군산으로 정착을 하게 되어
이제는 제법 발걸음을 합니다
군산에 황석영 선생이
여러 예술인들과 함께 군산 영화제를
기획한다고 들었어요
언제쯤인지는 모르겠지만
군산은 한번쯤
겸사겸사 다녀올법 하잖아요
@두용
음악에는
고하 장단 (高下長短)없습죠~
연주회
프로그램 구성이 알찹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것 같군요
여름밤에 모짜르트죠,
물론, 가보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지브리감성을 좋아 합니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기쿠지로의
여름 summer ost 등등
아마 ,이번 음악회에서도
이런 음악들이 연주 될것 같은데요,
참,
백윤학 지휘 서울 페스타 필 을
산꼴짝이 애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이번 가을에 목표 입니다 ~
이것 제가 참 좋아 합니다 헤헷!
https://youtu.be/47E2E95cON4?si=ixtza1sB-y_0G_Mc
PLAY
예전에 선운사와 고창을 거쳐
군산에서 배를 타고
선유도에서 신선처럼 일주일 유유자적 지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근데 외롭더군요.
전 혼자 잘 떠돌아다닙니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ㅎ
군산에는 우리 선조 김유신 사당도 있군요.
雪林祠.
神風特別攻撃隊의 꽃다운 청춘들은 火의
조각으로 흩어져 산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당시 미연합국에서는 무조건 돌진해오는
자살특공대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는군요.
정말 미친 짓이죠.
왜 일본 천황을 위해 조선의 젊은이들이 희생
당해야는지.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 합사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극우주의가 소멸되고
합리적 민주주의가 일본에 정착된 후에야
해결될 겁니다.
우선 한국이 강대국이 되고
右,左 이념를 초월한 용감한 지도자가
강력하게 항의하고 건설적인 주장을 내세워
구천에서 떠도는 조선의 영혼들을
고향의 품에서 잠들게 해야 합니다.
우리 대통령들 중 누가 강력하게 항의한 적 있나요?
미국도 세계 곳곳의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찾아 본국으로 안장하는데
한국은 북한에 유해발굴 말도 못 꺼냅니다.
바위에 계란치기지만 북한의 눈치만 보는
정부가 한심합니다.
아우라님,
생각에 저도
무조건 함께 합니다 !
지난번 아우라님 글에
답글을 올리려다 보니
너무 길것 같아서 못 올렸어요,
저도
우리 세대에서 마지막으로
제일 시급한것이
징용이든, 학병이든, 본의아니게 참전 했던
일본 에 있는 고인들을 모셔 오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에서는
이루어 지긴 어렵다고 보고요,
그 보상이 금전적인것을 떠나서
일본의 극우가
작금의 일본을 버티는 한 축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와
불편한 관계가 지속 되겠지요
문제는 지금 어린 세대들이
일본을 보는 시각이
우리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에 대한 냉철한 이성을 가지지 못하고
감정만을 내세운
우리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참, 무서운 나라 입니다
저보다 많이 아시겠지만,
개개인이 차분하게
자기의 분수를 지키는 나라라고
생각 합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
일본 교육 현장을 볼 기회를 가졌어요
그당시
너무충격적으로 많은것을 느껴서
일본이 결코 만만한 나라는 아니구나 하고
어딜 가든
떠들고 다녔지요
오늘은 이만 하죠~
9년전 처음 찾은 군산의 모습은 과거에 멈춰있는 도시,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시대를 만나 놀랍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7년후 다시 다녀온뒤, 제목을 외우기만했지 안 읽어본 '탁류'를 뒤늦게 읽었습니다. 군산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처럼 기폭제가 되어 군산이 또 다른 매력을 품은 항구도시로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군산에서 만난 서있는 소녀상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저도 처음 갔을때는
아직도 우리 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문화적으로
쫌, 충격이었지요
지난번에 갔을때는
많이 탈바꿈 하려고 노력들을 하는데,
구 도심은 여전히
힘들겠더라구요
동국사에 있는 소녀상은
여기에 쓰려다가
여러가지 생각에
그만 두고 말았지요
솔솔솔님께서
언급하셨으니
참,
잘 되었습니다
군산 (?)영화제는
여러분들이 애를 많이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모두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군산에 어린 설움이 짙게 느껴지네요.
석촌호수라는 글에 눈이 잠시 멈추기도 하고요.
군산을 한번 더 다녀와야 하겠습니다.
녭~
올리신 사진을 보니
정든 석촌 호수입니다
도반님
저는
석촌호수와 같이 살아 왔습죠
40여년동안 석촌 호수 주위만 빙빙 도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군산은
많이 변화 하였다 하나
아직도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음식도 남 다른것 들이 많고요
한번 다녀 오실만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