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탄 샤란스키는 <민주주의를 말한다>라는 책에서 ‘누구든 광장 한가운데로 나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체포, 구금, 물리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발표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자유사회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공포사회다’라고 썼다. 노무현의 탈권위는 말의 성찬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였다. 그는 광장에서 그를 향해 두려움 없이 비판할 수 있었던 대통령이었다. 광장이란 신문, 인터넷, 방송, 시민들이 모인 실제의 광장이었다. 그의 시대에는 그렇게 금기시되었던 모든 것의 족쇄가 풀렸었다. 대통령이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풍자와 코미디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닙니까?” 대통령 하나 바뀐 것뿐인데 그 자유롭던 인터넷 광장에서도 현 정부를 비판했다고 검찰이 나서고, 광장에 모여 현 정권과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고 전경을 동원한 경찰이 국민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이고 있다. 노무현이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준 검찰이나 경찰, 국세청이 정권의 친위대로 돌변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
지금 국민들이 주목하는 것은 통치자였던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이라기보다는 탈권위적인 정치리더로서의 인간 노무현과 인권과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통해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의 정책이라기보다는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로 대변되는 노무현적 가치와 정신이며, 더러 흠결이 있었더라도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노무현적 삶과 정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불완전성, 혹은 세상의 본질적인 부조리를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시지프스적인 악전고투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바보 노무현의 삶과 정치에서의 진정성에 국민들은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의 시대를 자세히 돌아보면 우리 국민 대다수가 놓쳐버리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노무현의 5년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탈이념의 시대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가 지향하고자 했던 국정과제를 보자. 권력의 민주화, 국가 균형발전, 선진통상국가, 인권을 포함한 사회민주화, 사회복지의 강화, 한반도 평화정착,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 선진화를 위한 선거제도와 정치자금 투명화 등이었다. 진보로부터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정권’이라고 극렬한 비판을 받은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 한-칠레 FTA협정, 한-미FTA협정과 한-유로FTA감행은 세계적인 협력의 질서와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전투부대가 아닌 전후 이라크 재건을 위한 공병부대의 파견이라는 결정으로 결행되었으며, 우리나라가 결국 외국과의 자유무역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지지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행했으며,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수도권의 반발(이는 수도권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부동산 가치의 하락이라는 이기적인 민심이 더 크게 작용했고, 이를 언론에서 증폭시켰지만)을 무릅쓰고 행정도시 이전과 공공기관의 혁신도시로의 이전, 지역적 경쟁력과 특색을 고려한 기업도시를 전국적으로 배치했으며, 인권과 민주주의의 향상을 위해 보수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악법이었던 국가보안법 철폐, 사학법 개정, 신문법 제정 등을 추진한 점이 단적인 사례들이다. 이렇게 노무현의 정책의 모델들은 이념의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했던 국민들과 정치권에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했다. 오죽했으면 탄핵집회를 제외하고는 청계천과 서울광장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보수와 진보세력이 서로 노무현의 정책을 비판하고 지지하는 집회를 개최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이러한 국가전략과 정책 모델은 그가 이념에 사로잡혀 있던 지도자가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책이 가져올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대한민국의 21세기를 설계하고, 추진하고자 했던 현실적 미래주의자였다. 그래서 자신의 정책의 이념적인 정체성은 그의 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이 나라 정치의 선진화가 국가 성장 동력의 원천임을 자각하고, 결과적으로 생뚱맞은 짝사랑으로 끝나버렸지만 자신을 지원하는 열린우리당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의 동의가 전제된다면 총리를 포함한 내각조각권은 반대당인 한나라당에 준다는 유럽식 대연정 제안은 이러한 노무현식 모델의 절정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안은 우리가 노무현의 개별정책에 대하여 실패든 절반의 성공이든 어떤 평가를 내리든지 그가 목표하고 제시하는 내용에서 내적인 진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노무현정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즉 그가 지향하였던 지점은 결국 국민과 국가였다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주권과 국가의 정체성을 위한 정치야말로 노무현 인식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인 것이다.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은 위에서 열거한 사례로 볼 때 이 나라의 정치적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개별적인 사안에 대하여 이념의 잣대를 같다 붙이는 습관은 우리들 모두의 오래된 병폐다. 따라서 그가 추진했던 정책들은 평소 그가 신념과 이상으로 삼았던 노무현식 가치의 현실적 구현이었다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무현 시대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진보주의자였으되 결국은 진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사람이었고, 보수주의적 색채마저도 뛰어넘는 새로운 국가발전, 새로운 이상적 국가라는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탈이념주의자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랬기에 그는 재임 기간 중에 진보와 보수의 양 진영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다. 유시민은 ‘사회자유주의’로 노무현시대를 규정했지만 굳이 이념으로 그의 시대를 구분한다면 그는 진보와 보수의 자유로운 경계인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목적지는 바로 헌법정신에의 충실한 복무였다고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는 노무현대통령을 피안의 세계로 떠나보냈다. 그는 떠났지만 그에 대한 기억이 일시에 완성되리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기억에 대한 완성은 물리적 시간과 감내할 만큼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만큼의 그에 대한 사랑에 대해 질문하고 응답해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과연 우리들에게 노무현이라는 인간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단촐해지는 기억의 나라에서만 살아있을 뿐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진심과 진정성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그였기에 외롭게 갈 수밖에 없었던 그에 대한 상실감과 안타까움은 더욱 크기만 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당신은 단 한 점의 부끄러움을, 자신의 온몸을 투신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자신의 존엄과 명예를 지켰고, 그리하여 자신이 일생을 걸고 추구한 가치와 신념을 지켰기에 당신은 오롯이 우리에게 소중하고 커다란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첫댓글 노무현적 가치와 정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단 한 줄의 문장은 '철저한 헙법정신에의 충실한 복무'였지 않을까?
보수와 진보가 아닌 진짜와 가짜의 분별, 노무현적 가치는 그렇게 다가옵니다. 이념과 권력으로 뭉쳐있던 것들을 현실적인 언어로 풀어내고자했던 대통령. 그의 진정성과 일관성을 그가 떠난 후에야 깨닫게 되 한 없이 마음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