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현재라는 이름은 엄마가 지었다
다른 사람의 미래를 점쳐 주는 엄마에겐
붙잡고 싶은 것이 현재였을까
사람들은 줄지어 앞날을 물어오는데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현재가 심약해질 때면
불쑥 훗날이 옮겨붙어
눈앞에 스쳤다고 한다
뒤꼍에 핀 달맞이꽃을 닮아가는 현재에게
그것은 무섭고도 당황스런 일이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다행인지
흔들리지 않을 만큼 심지가 자랐다
미래가 현재에게 말을 걸어오면
현재는 미래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설사 그것이 위협일지라도
내일을 내보이면 오늘이 감정을 버렸다
끝이 훤히 보이는 사랑
쉽게 져버릴 목숨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 꽃잎들
하지만 다른 것에 마음을 기대는 것은
억울한 누군가에게 꽃대를 맡기는 것이어서
유일하게 받아 적을 미래의 말이 있다면
엄마에겐 현재뿐이었다는 것
엄마는 현재가 나아질 거라고 점쳤고
어느 날 눈이 멀었다
눈사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눈밭에 세워둔 채
서로 돌아선다
밤새 발자국이 지워지는 동안
멀리 창밖에서 내다보는 눈빛이 있다
먼 훗날 자신들인 줄 모른다
눈사람,
거쳐 간 털장갑 자리 중 하나가 들뜬다
그곳이 먼저 잊힐 구석이라는 듯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밤은 여전히 다녀가는 과정이지만
눈사람에게는 누군가의 뒷모습이다
새벽에 서 있던 눈사람이
아침이 오면서 스르르 스러져간다
함께 만들어 놓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잊어버린 걸 함께 다시 만들자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내어줄 수 있는 만큼만
서로는 뭉쳐지는 것이라서
관계를 궁굴리어
소유했다고 믿을 수는 있어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눈사람은 사람을 가졌다
사람을 가져서 눈사람이 녹는다
멀리 창밖에서 내다보는 눈빛이 있다
*시인의 말
밤이 번지는 느낌은
어항이 놓아주는 물고기 같아요
궁리할 겨를도 없이
팔딱 스며드는
어디까지 번질까요
내가 아닌 물고기가
내가 되어버리는
이제 그만 보내줄 때가 되었어요
잘 가렴
시집 『슈뢰딩거의 이별』 시인동네 2024,7
첫댓글
한영미 시인님,
[슈뢰딩거의 이별 ], 출간을 축하드려요.
포스트잇을 많이많이 붙이며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