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나라가 되려면 국가경제가 발전해야 되고 경제가 발전하려면 건전한 기업이 육성되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실현하기 위해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공부를 시작했다. 60년대 초 민족경제에 대한 높은 인식과 경제부흥의 시대를 맞아 사명감에 불타는 경영학도 윤영연은 61년도 공인회계사 본시험에 합격했고 64년도에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촉망받는 경영학도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자세를 완벽하게 준비해 갔다.
70년도까지는 고려대학교 기업경영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고 67년도에는 대통령 특명감사단 감사인으로 선정되어 건전한 기업육성과 국가경제의 좌표를 찾는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79년 동덕여자대학교와 인연을 맺고 학자와 교육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동덕여대의 주요직을 거치며 대학발전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88년에는 동덕여대대학원장을 역임하는 등 동덕여대 발전의 산증인이자 표상으로 우뚝 서 있다. 경영학도로서의 윤박사의 연구와 식견은 신선하고 뛰어난 면모를 자랑해 오고 있다.
83년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회계 판단기준으로써의 중요성'은 회계인의 선택기준으로 적용된 기준이 그 적용의 과정이나 이유가 설명되지 않고 결과치만 을 일방적으로 정보이용자에게 전달되거나, 통일적 기준 없이 회계인의 단편적 사고에 의하여 또는 회계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만의 뜻에 따라 결정되므로 이해를 달리하는 회계정보이용자가 의구심을 갖는 등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결정계기를 마련하는 논문으로 평가받았음은 물론 회계평가 기준을 새롭게 정립한 획기적 연구 결과로 기록되어 있다. 87년도에는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 교환교수로 활동 세계적인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가 하면 88년부터 한국회계학회 이사를 맡아 현재까지 연임하고 있으며 90년도부터는 한국경영학회 감사로 활동하는 등 한국경영학계발전의 선봉적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그 동안의 연구논문도 '회계공시의 효율화 방안에 대한 연구(87)', '회계환경과 회계사고에 대한 연구(92)', '감사의견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94)' 등 20여편에 이르고 있으며 저서도 '회계원리', '관리회계' 등 2권에 이르고 있다. 한편 학자적 명석과 냉철한 연구모습과 달리 윤 박사의 고향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뜨겁고도 헌신적이다. 청남국교 동창들의 모임인 명덕회장직을 맡아 고향발전과 모교 발전을 직접 진주 지휘함은 물론 고향 후배들이 어려움을 살펴주고 이끌어주는 다정한 선배이자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자녀들이 혹시 고향을 잊을까 염려되어 매번 고향 땅을 밟게 하고 고향에 대한 중요성을 무엇보다 먼저 강조해 오고 있다. 더구나 윤 박사의 깨끗한 심성과 깊은 효심은 지역사회는 물론 현시대의 거룩한 사표가 되고 있다.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도움만을 주려는 고귀한 인품과 기상은 이름 그대로 청정한 선비의 기품으로 윤박사의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평생을 국가경제와 경영학 연구에 전력해 온 학자로서 "기업과 군민이 하나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믿고 협조하여 민족경제가 크게 융성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강조하는 윤 박사는 청양인의 슬기와 기상을 이어받아 국가경제발전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해 온 대학자이며 뜨거운 애향심에 불타는 향우이고 깨끗한 인물과 기품을 지켜 온 시대의 큰 스승이다. 한편 윤 박사의 가족으로는 부인 성영자(53)여사와 아들 윤선학(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재학), 딸 윤성아(미국 버클리 대학 재학)가 있다. <복영수 기자> |